책가도 冊架圖

비움으로 채우는 선반

by 미풍

전통 책가도(冊架圖)는 선비의 이상을 담는 그림이었습니다. 서책과 문방사우, 도자기와 골동품으로 채워진 선반에 지식과 품격, 출세에 대한 욕망을 한 화면에 담아냈습니다. 저는 그 선반을 그대로 빌려와 그 안에 욕망의 증거들과 비움의 지혜를, 선반 세 단에 나누어 배치해 보았습니다.




책가도 / 60.6x72.7cm / 한지에 채색 / 미풍 作


Vanitas vanitatum, et omnia vanitas

먼저 책장 오른쪽 아랫단 모서리에 작은 글씨가 새겨져 있습니다.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성경 전도서의 첫 구절이자, 이 연작 전체를 관통하는 문장입니다. 저는 이 문장을 그림 안에서 가장 눈에 띄지 않는 자리에 두었습니다. 진리란 때로 그런 것이니까요.



<책가도>


1단 — 탐욕의 선반: 화려한 것들의 민낯

맨 위 선반이 가장 화려합니다. 왼쪽에는 화려한 목걸이들이 걸려 있습니다. 그 옆에는 미키마우스가 앉아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쥐. 가장 많은 사람이 사랑하는 캐릭터이자, 동시에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지식재산권을 가진 기업의 얼굴. 저는 미키마우스를 보면서 그 귀여운 표정 뒤에 감춰진 욕망의 크기를 생각했습니다.

오른쪽에는 나누지 못해 부패해 가는 케이크가 놓여 있습니다. 그 옆에 빨간 모자의 독버섯이 두 송이 솟아 있습니다. 알광대버섯, 혹은 파리버섯이라고도 불리는 그것은 보기에는 아름답지만 치명적입니다. 탐욕을 먹고 자라는 독버섯입니다. 이 선반 위의 물건들은 그 욕망의 굴레가 얼마나 화려하고, 동시에 얼마나 공허한지를 보여주는 증거들입니다.


2단 — 회복의 선반: 나눌수록 풍요로워지는 것들

가운데 선반으로 내려오면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왼쪽에는 연꽃이 자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연꽃의 자리가 특별합니다. 선반 바닥의 흙에서 직접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연꽃은 진흙 속에서 피어납니다. 탁하고 어두운 곳에서 줄기를 올려 맑고 아름다운 꽃을 피웁니다. 불교에서 연꽃은 깨달음과 청정함의 상징입니다. 오염된 환경 속에서도 물들지 않고 피어나는 꽃, 더러움 속에서도 자신의 본질을 잃지 않는 존재. 이 그림에서 연꽃은 아직 봉오리입니다. 활짝 피지 않았습니다. 피어나는 중입니다. 깨달음이란 그런 것이겠죠. 완성된 것이 아니라, 매일 조금씩 향해 가는 것.


그리고 아래 선반에서 연꽃의 이야기는 이어집니다. 해골 위에서 연꽃이 피어나는 장면으로. 죽음이라는 가장 어두운 자리에서도 생명은 꽃을 피운다는 것 — 연꽃의 본성이 그대로 거기 있습니다.

그 옆에는 책 두 권이 나란히 꽂혀 있습니다. 펼치면 무언가 담겨있을 텐데, 덮혀 있어서 알 수 없습니다. 지식은 열기 전까지는 가능성입니다.


오른쪽에는 바구니에 빵과 물고기가 담겨 있습니다. 오병이어(五餠二魚) —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성경에서 예수님은 이것만으로 오천 명을 먹이는 기적을 보이셨죠. 기적의 핵심은 음식이 갑자기 늘어난 것이 아니라, 나누었다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누군가 먼저 자신의 것을 내놓자, 모두가 가진 것을 꺼내기 시작했고, 그것이 오천 명을 먹이기에 충분했다는, 나눌수록 풍요로워진다는 역설이 이 바구니 안에 담겨 있습니다.

損之又損(손지우손)
덜어내고 또 덜어내다

덜어내고 또 덜어내면, 어느 순간 오히려 넉넉해집니다. 노자의 역설 또한 오병이어의 기적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3단 — 비움의 선반: 가장 낮은 곳에 피어나는 것

맨 아래 선반 왼쪽에는 해골이 놓여 있습니다. 해골의 정수리에서는 연꽃이 피어나고 있습니다. 죽음이라는 가장 어두운 토양 위에서 가장 맑고 아름다운 꽃이 피어오릅니다. 연꽃의 본성 그대로입니다.

불교의 선(禪) 사상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生死事大(생사사대)
삶과 죽음은 가장 큰 일이다.

그 큰 일을 마주보는 것이 두려움이 아니라 해방이 될 수 있다는 것. 해골 위의 연꽃은 그 가능성을 꽃으로 보여줍니다. 죽음을 기억하는 것이 삶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삶을 가장 충만하게 살아내는 길임을 이 작은 꽃봉오리가 조용히 일러줍니다.


오른쪽에는 낡은 구두 한 켤레가 놓여 있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가 그린 〈농부의 구두〉를 떠올리며 배치한 것입니다. 투박하고 거친 이 구두는 한눈에 보아도 오래 걸어온 신발입니다. 끈이 풀려 있고, 가죽은 닳아있고, 형태가 발의 모양으로 길들여져 있습니다.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바로 이 고흐의 구두 그림을 분석하며, 예술이 존재의 진실을 드러내는 방식을 설명했습니다. 구두 한 켤레 안에 땀과 고단함과 정직한 노동이 담겨 있다고, 그것이 어떤 화려한 정물화보다 더 많은 진실을 말해준다고.

선반의 맨 아래, 가장 낮은 곳에 이 구두를 두었습니다. 우리의 시선이 머무는 곳은 결국 여기입니다. 화려한 보석과 달콤한 케이크가 줄 수 없는 것이 이 낡은 구두 한 켤레에 있습니다.


선반을 채우는 것과 비우는 것

전통 책가도는 채우는 예술이었습니다. 지식과 품격의 증거들로 선반을 가득 채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저의 책가도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올수록, 욕망을 비워내고 본질을 드러내고 싶었습니다. 반짝이는 구슬과 탐스러운 케이크에서 연꽃과 빵과 물고기로, 그리고 해골에서 피어난 꽃과 낡은 구두로... 이 여정이 삶의 진짜 풍요가 무엇인지를 가만히 묻고 있습니다.


삶의 진짜 고갱이는 결국 가장 소박하고 정직한 자리에서 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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