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파멸을 향해 달려가다
"포탄이 떨어지는 소리 속에서 나는 깨달았다. 우리가 죽이고 있는 것은 적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미래라는 것을." (소설 <서부 전선 이상 없다> 중에서)
이 그림은 드라마 〈폭군의 셰프〉를 보며 영감을 받아 그리게 되었습니다. 드라마는 연산군을 결핍으로 광기에 휩싸인 다소 매력적이고 가여운 인물로 그려내 역사왜곡 논란이 있었지만, 저는 그 화려함의 이면에 주목했습니다. 어머니를 잃은 상실감이 분노로, 분노가 폭력으로, 폭력이 결국 자신과 백성 모두를 갉아먹는 독이 되어버린 한 인간의 비극적인 궤적이었습니다.
그림의 중심에는 풍성한 잔치상이 펼쳐져 있습니다. 은빛 주전자와 탐스러운 음식들, 청화백자 위에 올라앉은 처용무의 탈은 한때 권력을 과시하며 끝없는 쾌락을 좇던 화려한 순간을 보여줍니다. 처용무는 본래 액귀를 쫓는 의식이었지만, 연산군에게는 쾌락과 과시의 도구로 전락했습니다. 크게 벌린 입으로 웃고 있는 탈의 표정이 오히려 서늘합니다. 저 웃음이 진짜 기쁨인지, 공허함을 가리는 가면인지 알 수 없으니까요.
잔치상 한가운데에는 사약을 받고 죽은 어머니의 피 묻은 적삼과 복수의 칼이 놓여 있습니다. 연산군은 자신의 폭력성을 어머니에 대한 상실감 탓으로 돌렸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복수의 칼날은 결국 타인뿐 아니라 자기 자신까지 베어버렸습니다. 그 곁에 놓인 해골은 죽은 자의 뼈를 다시 꺼내 욕보이며 상실을 채우려 했던 집착의 증거입니다.
배경에는 어두운 먹구름 아래 황폐해진 들판과 고통받는 백성들의 모습이 펼쳐집니다. 궁궐의 실루엣 앞에서 칼부림이 벌어지고, 저 멀리 쓰러진 사람의 형상이 보입니다. 자신의 상실을 채우기 위해 벌인 화려한 잔치가 타인에게는 이토록 참혹한 풍경이 된다는 것, 그 극명한 대비를 기록하고 싶었습니다.
잔치상 아래 호랑이를 탄 꼭두가 등장합니다. 우리 전통 장례 문화에서 꼭두는 망자의 마지막 길을 지키고 안내하는 존재입니다. 호랑이를 탄 꼭두는 그중에서도 저승길을 호위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화려한 잔치상 바로 아래, 이미 저승으로 향하는 길이 열려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장치입니다. 권력의 절정과 죽음의 문턱이 이토록 가까이 맞닿아 있다는 것을, 꼭두는 무표정하게 보여줍니다.
잔치상 오른편에는 봉황 꼭두가 자리합니다. 봉황은 민화에서 왕의 권위와 태평성대를 상징하는 신성한 새입니다. 하지만 이 그림 속 봉황 꼭두는 화려한 잔치상 곁에서 묵묵히 서 있을 뿐, 그 신성함은 이미 빛을 잃었습니다. 진정한 태평성대를 만들지 못한 권력자의 잔치 옆에 선 봉황은, 권위의 상징이 아니라 공허한 허식의 장식으로 전락해 있습니다.
권력에 집착할수록 죽음에 더 빠르게 가까워지는 아이러니 — 스스로 파멸을 향해 달려간 한 인간의 뒷모습이 가여우면서도, 어쩐지 낯설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도 상실을 분노로, 분노를 집착으로 키워가는 어리석음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 슬픈 잔치상을 그리며 저 자신에게 조용히 물었습니다.
Sonnet 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