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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 이사도씨 Mar 30. 2022

진취적인 돌아이 (3)

열린 가슴

“PET CT 결과 암으로 보입니다. 아무래도 애초에 계획했던 흉강경 수술이 아니라, 개흉 수술이 될 것 같아요.”

수술 당일 아침에, 그것도 수술실에 들어가기 직전이 되어서야 들은 말이다. 표정이며 말투며 뭐가 이렇게 자연스러울까? 내 가슴 한복판을 열겠다는 말을, 너무 아무렇지 않게 해서, 나는 하마터면 웃으며 그 말을 들을뻔 했다. 그동안 다른 사람 앞에서 우는 것은 수치스럽다 생각하던 사람이었는데, 지금 이 순간엔 부끄러움이나 수치따위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누가 말릴 새도 없이 눈물부터 터져나왔다. 나는 수술실로 옮겨져가는 내내 아이처럼 울어댔고, 마취하기 직전까지도 서러워했다.


내가 다시 눈을 뜬 곳은 중환자실이었다. 누군가 나를 흔들어 깨웠을 때, 나는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하나도 기쁘지가 않았다. 이렇게 엄청난 고통을 느끼며 살아있어야 한다면, 차라리 죽이지 그랬냐며, 애썼을 의료진을 오히려 원망했다. 온갖 진통제도 소용이 없어서 나는 계속 얕은 비명을 질렀다. 산모들이 아이를 낳을 때 달아준다는 무통 주사 역시 나를 어지럽게 할 뿐, 통증에는 하등 쓸모가 없었다.

“아파요! 너무 아파요! 진통제 좀 주세요.”

“환자분, 드릴만큼 드렸어요. 더는 드릴 수가 없어요.”

“제가 어지간한 통증은 다 잘 참거든요. 근데 지금 너무 아파요. 진통제 좀 더 주세요.”

“환자분!! 개흉 수술을 했으면 그 정도는 아픈 거예요. 좀 참아보세요.”

간호사는 눈까지 부라리며, 나에게 다소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뭐라고? 뚫린 입이라고, 진짜…… 썅!!!!!!!’

입밖으로 내뱉지는 못했지만, 욕이 절로 떠올랐다. 나처럼 개흉 수술이라도 해본 건지, 이 정도 아픈 건 당연하니 그저 참으라는 차가운 간호사의 말 한마디에 나는 더 이상 진통제를 구걸하지 않았다. 다만 통증을 잊도록, 어떻게든 잠들려고 애썼다. 그러나 내게 참으라던 간호사가 후배 간호사들에게 소리를 지르는 통에 그조차도 어려웠다. 잠들만 하면 고함을 빽빽 내지르는 통에 잠들 수가 없었다. 알람도 아니면서 5분에 한번씩 소리를 질러대니 당연한 일이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그저 이 중환자실만 벗어나길 바랐다.


약 24시간 후, 나는 드디어 일반 병실에 가게 되었다. 통증은 여전했지만 그래도 조용한 곳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으니 좋았다. 남자친구는 자기가 나를 간병하겠다며 부모님과 동생을 집으로 다 돌려보내더니, 홀로 남아 나를 극진히 간병한다. 내가 너무 아파할 때마다, 그는 같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어느 때는 나를 쳐다보는 눈에 눈물마저 맺혀있다. 참 공감 능력이 좋은 사람이다.


내가 몸을 비틀며 괴로워하면 그때마다 지겨워하지도 않고 반복해서 그렇게 말해주었다.

“코니야. 많이 아프지? 우짜노? 그래도 다 지나간다. 조금만 견디자. 다 지나간다.”

그럼 나도 따라말했다.

“어, 다 지나갈거야.”

속으로도 몇 번이나 되뇌였다.

‘다 지나간다. 다 지나간다.’

그 시간들은 통증이 심한만큼 매우 더디게 느껴졌지만, 그의 말대로 분명히 지나갔다. 하루하루 나의 통증이 약해지고 있음이 느껴졌다. 혼자서는 몸도 일으킬 수도 없었던 내가 몸을 굴려 혼자 일어나고, 밤이면 유독 끙끙 소리를 내며 더 앓던 내가, 어느 순간부터는 깨는 시간 없이 통으로 잠들기 시작했다. 정확히 한달이 지나자, 내 입에서 ‘살 것 같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비록 내 가슴 한복판에는 보기 싫은 수술 자국이 길게 났지만, 내가 얻은 것들에 비하면 아주 사소하다 느껴졌다.


이 수술이 있기 전까지, 나는 걸핏하면 쉽게 죽음을 떠올리는 사람이었다. 삶이 참 재미없었다. 어느날, 교통사고라도 나서 갑자기 세상을 떠나도, 억울할 게 없다고 생각했었다. 아니 어쩌면 ‘죽음’을 행운으로 여기기도 하였다. 그러던 내가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 그리고 또 나와서 고통을 견디며 한 생각은, 그래도 뭐 하나라도 해보고 죽자는 생각이었다. 어릴 때부터 막연하게, 글 한 편은 써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한 편도 완결하지 못한 것이 생각났다. 또 유튜버도 해보고 싶었는데, 그걸 해보지 못한 것도 아쉬웠다. 세상에 먹어보지 못한 음식은 또 왜 그리 많은지, 다 도전해보고 싶었다. 나를 사랑한다면, 무조건 헌신만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남자친구에게도 미안했다. 정작 나 자신은 그를 사랑해주지 못한 것도 못내 아쉬웠다. 그래서 나는 더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더 살고 싶었다.


건강한 사람이라 생각할 때는, 삶이 그렇게도 하찮더니, 막상 암환자가 되고나자 그동안 평범하다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새삼, 다 소중해졌다. 가슴만 열린 게 아니라, 생각도 열리게 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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