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제가 몇기인가요?”
“……4기입니다.”
‘4’라는 숫자를 듣자마자 나는 또 눈물을 터뜨렸다. 인터넷에 ‘흉선암’이라고 검색을 하고, 4기 생존률이라고 검색했을 때 그 수치는 당연히 절반이 되지 않았다.
“저는 그럼 죽을 확률이 높은가요?”
“아닙니다, 아닙니다. 누가 그래요? 수술이 아주 잘 됐습니다.”
의사 선생님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확신이 넘친다.
“수술이 굉장히 깔끔하게 잘 됐어요. 이제부터는 종양내과에 가서 향후 치료가 어떻게 되는지 알아보시면 돼요. 몸에 있는 암은, 수술로 깨끗하게 제거했으니, 죽는 걱정은 마시고, 일상생활 잘하세요. 우리는 정기검진 때 봅시다.”
평소 차갑고 냉정해보이던 선생님이었는데, 오늘은 어쩐지 좀 다정하게 느껴진다. 표정도 밝다.
잠시후, 새로운 의사 선생님을 만났다. 종양내과 선생님이다.
“음~. 수술 결과를 보니까, 방사선 치료는 할 필요가 없겠고.”
우리 커플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근데, 항암 치료는 하셔야 돼. 아무리 수술을 했다고 해도, 미세암세포가 남아있을 수 있거든.”
항암으로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가지 부작용에 대해서 쭉 설명해주신다. 귀가 먹먹하다. 꼭 드라마를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아직도 내 불행이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남자친구의 표정도 어두워졌다.
“6차까지만 맞읍시다. 완전히 안심하고 일상으로 복귀하셔야지.”
솔직히 도망가고 싶었다. 하지만 해보지도 않고 도망가려는 나를 남자친구가 꽉 붙든다. 미세암세포가 어딘가에서 다시 자리 잡을 수도 있다는 말은, 내게도 공포였다. 이 경우 어디로 가서 자리를 잡을지 알 수 없기 때문에 항암을 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는 말을, 어떻게 반박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가족들도 당연히 항암을 해야 한다는 쪽이었다. 뭐 어쩔 수 없지. 다들 원한다면야.
그렇다면 지금부터는 생각의 전환이 필요했다. 모든 일에는 그래도 그나마 좋은 것이 하나쯤은 있게 마련이다. 항암에는 과연 어떤 좋은 점이 있을까? 암세포가 사라지고 따위의 당연한 것 말고, 다른 좋은 점이 하나 더 필요했다. 그럼 나는 그 좋은 점 하나를 붙들고 이 울적한 기분에서 벗어날 수 있을테니까.
- (카톡) 항암하면 힘들텐데, 겁 안 나냐?
- (카톡) 겁 나지. 그래도 뭐 어쩌겠어. 치료 과정이라는데 해야지.
- (카톡) 그래. 컨디션 좋아지자마자 다시 항암해야 해서 좀 안됐긴 하지만, 그래도 기운내봐.
- (카톡) 어, 그래도 나 항암하면 살은 좀 빠질 듯. 초등학교 이후로 한번도 40킬로그램대가 돼 본적 없는데, 이번에 48kg되는 거 아니냐? ㅋㅋㅋ 168cm에 48kg! 쩔지?
- (카톡) 그러게~. 그건 좀 부럽네.
‘헐~. 동생아. 아무리 그래도, 부럽네는 좀 아니잖아?’
동생의 철없는 반응에 살짝 짜증이 치밀었다. 나야 애써 정신 승리하는 중이지만,‘부럽네.’라니……. 제 정신인가? 하지만 나 역시 내 인생 최초로 가녀려진 모습의 나를 상상하자, 씁씁한 중에도 왠지 모르게 기대되었다.
‘병약한 나는 어떤 모습일까? 예쁘겠지? 꿈의 몸매잖아? 정말 다 나쁜 일은 없다더니 그렇네. 항암하는 동안 힘들겠지만, 미모가 갱신될지도 몰라. 아니야. 안 예쁠지도 모르지. 하지만 어쨌거나 새로워지잖아? 그래, 그걸로 위안삼자.’
그렇게 나의 항암은 ‘이상한 기대’로 시작되었다. 그 덕에 나는 암 병동에서 제일 밝은 환자였다.
첫 항암은, 일단 호기심이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다들 그렇게나 힘들어 하던데 진짜로 힘든가? 항암제를 맞자마자 힘들까? 며칠이 지나야 힘들까? 구역질은 몇 분만에 날까? 아니 며칠 뒤에 나려나?
가슴쪽에 심어야 하는 케모포트며, 희귀암이라 딱히 맞는 항암제가 없어서 이것저것 섞어 맞는 항암제며, 내게는 다 생소했다. 케모포트 시술 때문에 끙끙거리면서도 나는 앞으로 살이 빠질테니 잘 먹어야 한다며 그동안 다이어트 때문에 참고 못먹었던 음식들을 대령시켰다. 애써 직접 나가 사올 필요도 없이 말만 하면 가족들이나 남자친구가 알아서 사다주었다. 그들이 내게 원하는 것은 딱 하나였다. 그저 기쁜 표정으로 맛있게 먹어주는 것. 나는 그동안 나를 눌러왔던 다이어트에서 벗어나, 정말이지 마음껏 먹어댔다. 이후 닥쳐올 고통은 고통이고, 당장은 행복하니 좋다. 항암제를 맞는 동안 덜 힘들라는 목적에서 놔주는 스테로이드가 나의 항문을 마구 간지럽혔다. 평생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다. 너무 웃겨서 살짝 웃으며 간호사 선생님한테 이건 뭐냐고 했다. 이게 제대로 된 느낌이 맞냐고 묻자 아마도 그럴 거라고 한다.
“이상해요!!”
나의 암투병기는 대체로 이렇게 이상하다. 필사적으로 기쁜 것과 좋은 것들을 찾으며 나는 하루하루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