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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주만주 Jan 07. 2023

글 쓰는 나

글은 아무나 써야 했다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 새는 줄 모르고 살 때가 행복인 것 같다.

‘늦게’보다‘날 새는 줄 모른다’에 방점을 두고 음미해 본다면.


심란한 마음을 잠시라도 한 가지 행위 속에 녹여낼 수 있다면 그 순간이 충만한 인생이다.

“모든 사람이 글을 써야 한다 노동자·농민·상인·가정주부... 모두”   

『우리 글 바로 쓰기』저자 이오덕 씨의 말에 나는 날 새는 줄 모르는   도둑질을 배웠다. 모든 사람이 글을 쓸 수 있다가 아니라 ‘써야 한다’는 그의 말이‘나도 쓸 수 있을까’의 고민을 덜어 주었다.

글쓰기가 몇몇 사람들의 독차지라 생각했다. 재능, 자기 자랑, 회고, 돈벌이 등 필요에 따라. 창피하게도 내게  글쓰기는‘쓸 수도 있다’였다.

내게 그런 글쓰기는 뭔지도 모르고 씨를 뿌린 것들로부터 시작한다.      


- 여행을 만나다.

코로나 시국이 본격적으로 시작하던 해 육아휴직을 시작했다. 당시   아이들은 학교를 안 갔다. 1년 365일 방학이 시작한 것이다. 휴직은 결과적으로 인생에서 잘한 결정이었지만, 그 과정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것보다 해야 할 일을 해내야 하는 굴레였다.  

거리 두기로 활동 반경이 집으로 제한된 아이들을 위해 애써 생각해 내어 그들과 복작복작 뭔가를 하면 머지않아 “아빠, 그다음은 뭐 해?”하는 허무한 답변이 기다렸다.

나를 돌보는 시간도 함께 바닥이 나고 있었다. 내 베프 핸드폰을 아이들이 뺏어가 유튜브를 보았기 때문이다. 정말 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그때부터 책을 보기 시작했다. 교도소에서 죄수가 더디 가는 시간에 어쩔 수 없이 책을 보게 되는 것처럼 상황은 다르지만 심정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책이나 봐야겠다’는 생각은‘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점점 바뀌어 갔다. 인생에 가장 큰 선물을 예비하고 있었다.  

그때 만난 책 중 스테디셀러 유홍준 씨의『나의 문화유산답사기』와  백두산에서 독도까지, 백령도에서 이어도까지 국토의 지질 명소를 소개해준 이우평 작가의 『한국지형산책』은 우리 가족 여행지 목록이 되었다.  틈만 나면 여행 계획을 세우고 아내가 쉬는 날이면 우리는(아니 나는) ‘이야기가 맺힌 곳’으로 여행을 떠났다.      


- 책을 감각하다.

가족 여행은 현장체험 교육을 가장한 사심여행이었다. 나는 국토 명승지, 유적지, 박물관, 기념관을 직접 돌아보며 자연, 역사, 문화 이야기를  현장에서 느껴보고 싶었다. 관심 없는 아이들과는 유튜브와 먹을거리로 적당히 타협하며 지방 민원(?)을 최소화하였다.

어쩔 수 없이 시작한 책은 여행을 통해 점점 더 지적 호기심의 강화물로 작용하였다. 낮에 아이들 돌봄으로 시간 내기가 아쉬워지니 밤 시간에 장르 구분 없이 책을 읽었다.

어느새 나는 인생의 이야깃거리가 켜켜이 쌓인 40대에 접어들었다고 공감 능력이 결코 가볍지는 않고 있었다. 책을 더 이상 남 말이 아닌 인간의 이야기임을 느낄 정도로. 마치 박연준 시인이 시를 ‘감각’해보라고 하듯이 나는 책을 감각하고 싶었다.     


- 글쓰기의 시작

책을 즐기게 되며 자연히 유튜브 알고리즘은 도서 영상들이 차지했다. 새로 알게 된 작가들을 통해 글쓰기 책들도 만났다. ‘나도 남들에게 들려주고픈 이야기가 있는데, 보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뽐’ 내기 위함 아닌 나를‘봄’ 하기 위한 글쓰기가 필요할 때였다.

그러나 글쓰기는 읽기와는 달랐다. 시간과 노력이 더 필요했다. 휴직이 끝나고 직장을 다니며 읽기와 쓰기는 더욱 쉽지 않았다. 보고 싶은 책도 못 보고 있는 마당에 글쓰기라니. 회사에서, 집에서 쓸모를 강요하는 일상은 쓸모없는 글쓰기를 후순위로 가볍게 밀어 저쳤다. 그에 따른 스트레스는 반비례하며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 새벽시간에 글쓰기

내 주특기인 자기 합리화가 필요했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생각하며 ‘글쓰기만 신명 나게 사는 방법이냐!’,‘이방인’을 떠올리며 ‘원래 세상은 부조리한 거다. 시간 못 내는 이 현실이 내 잘못이 아니라고!’그까짓 글쓰기가 뭐라고 하며.

그러나 인생은 절망의 연속이 아닌 궁 한대로 통하는 것인가.

난 새벽 시간을‘선택’했다. 지금껏 새벽에 일어나 무엇을 한다는 것은  내겐 기괴한 일이었다. 한 번도 가보지 않는 길에 망설임은 있었지만  가끔 의구심보다 절실함으로 자신에게 용기를 구걸하지 않아도 될 때가 있다.

출근할 때 듣는 기상 알람 소리에 맞춰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켜 세우고 있었다. 글쓰기에 대한 의지가 이 정도였구나! 새삼 놀라웠다. 힘겹게 일어나 글을 써야 하는 게 아니라 글을 쓰고 싶어 일어나고 있었다.


아이들 방학이면 새벽 글쓰기도 아이 돌봄 이유로 내 의지와 상관없이 하지 못할 때가 있다. 하지만 글쓰기는 이미 늦게 배운 도둑질이 되어 버렸다. 내가 뭔지도 모르고 뿌린 이 나무 씨앗은 글쓰기라는 함박꽃으로 보답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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