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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인 Sep 22. 2022

높은 곳에 바라건대

소원을 너에게

나를 위한 소원이 새삼스럽다. 타력에 간절히 빌어야 하는 일은 안 되는 일에 가깝기 때문이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이미 준비가 충분하지 못하다는 방증이다.
만월을 보며, (근절하고 싶은) 차례상에 절하며, 원래는 이럴 때 뭘 빌었는지 고민했다. 희망고문을 하듯이 크게 부푼 소원을 빌었던 것도 같다.

진인사대천명. 이제는 진인사를 다하지 못하면 천(天)에 무엇을 바라기가 머쓱해진다. 행운은 안 바랍니다, 액운이 끼지 않게 해주세요, 정도로 널널한 소원을 빌었다.

추석의 만월


그러나 소원의 대상이 타인이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좋은 일이 생기게 해주세요. 행복하게 해주세요. 양손으로 깍지를 꽉 끼는 것도 모자라, 혹시 빼먹은 마음이 있을까 끝까지 쥐어짜서 소원을 내놓았다. 간절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뿐이라. 나와 너라는 개별성이 슬퍼지는 순간이 있다. 아무리 애써도 넘을 수 없는 경계가 있다. 마음만이 아주 미약한 가능성으로 경계를 드나든다.

신을 믿지 않지만 불가해한 힘의 존재는 믿는다. 천(天), 기(氣), 도(道), 혹은 섭리, 혹은 인연.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힘. 인격이 없고 인간이 어찌할 수 없지만 가끔은 인간의 지극함에 감응하는, 보이지 않는 흐름.

그러니 나는 바람 뒤에 덧붙인다. 이 간절함이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기를. 또다른 당신의 인연도 당신의 행복을 빌어주기를. 그 바람이 쌓여 끝내 당신에게 가닿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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