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슬비가 내리는 밤바다를 홀로 걸어다닌 날이 있었다. 일정한 파도의 움직임은 기억을 불러왔다. 밀려온 물은 다시 돌아간다. 파도는 바다의 것이고 내 발은 땅의 것. 기억은 과거의 것. 지금의 삶이 충만하다고 그 순간 처음으로 느꼈다.
고등학교 입학식에서 10년이 멀어졌다. 슬슬 '그때 그 시절' 감성의 타겟이 되었다. 그러나 나는 당췌 향수 자극에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 나의 10대는 성적표의 숫자가 전부였다. 숫자가 머리를 채우다 못해, 비죽비죽 흘러 주변까지 숨막히게 했다. 바닥난 자존감, 과발효된 자존심이 섞여 자기혐오를 이루던 시기. 그때의 나에게 따뜻한 말을 건넬 수 있으면 좋으련만 사랑해주기에는 너무나 모났다. 나도, 그쪽도. 그래서 철이 들자마자-사실 그 때도 철없었다-어린 날이라는 꼬리표를 붙여 빠르게 기억 저편에 묻었다. 10대부터 친분을 이어온 이들에게는 '아직까지도 친구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아끼지 않는다.
또 다른 향수의 아이콘, 20대 초반 대학시절 이야기를 해볼까. 작년 내내 이어진 괴로움의 원인은 학교가 없는 미래였다. 석사과정까지 무려 18년을 학생 신분으로 살아왔다. 사회인의 자격요건을 얻는 일도, 사회에 무사히 착지하는 일도 걱정이 태산이었다. 20대의 청춘을 보낸 대학은 분명 학위 그 이상의 의미를 품고 있다. 대학원 코스워크의 막바지, 패기롭게 신청한 철학 강의의 종강연에서는 난데없이 눈물을 쏟았다. 학문, 사회, 사람, 나 자신까지도. 대학이 아니었다면 얻지 못했을 앎과 인연이 선명한 궤적을 그리고 있다. 다시는 내게 이 사람들과 이 공간이 함께 주어질 수 없기에 이별의 눈물을 흘렸다.
방파제
그렇다 보니 대학을 떠난 뒤, 대학시절로의 회귀를 바라지 않는 자신에게 놀랐다. 돌이켜 보니 미화필터가 과했나? 그건 아니고. 회사생활에 행복이 흘러넘치는가? 여러모로 양호한 환경이지만 역시 아니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 사이에 침범할 수 없는 경계가 존재한다. 그때의 시간에 나를 전부 쏟아부었다고, 조심스레 결론낸다.
나를전부쏟아넣어도 따라가기 벅찼던 시간. 대학생의 현실과 환상 사이에는 괴리가 컸다. 학점, 알바, 교내외 활동까지 하루종일 무언가를 하는데도 뒤처진 것 같았다. 시도 때도 없이 신경성 위염에 시달렸지만 커피를 입에 달고 살았다. 스물 두 살에는 24시 카페에 앉아 동틀 때까지 노트북을 두드리는 생활을 반 년쯤 했다. 사람이 밤에 잠을 자지 않으면 쇠약해진다는 사실을 직접 증명하고서야 그만뒀다.과거를 떠올리면 향수보다 지긋지긋함이 앞서고 있다.
원망과 사랑, 혹은 두 가지 모두가 작용할 때 과거를 반추했다. 이제는 돌아가고 싶은 곳이 없다. 바꾸어야 할 선택도 없다. 최적의 길은 아닐지언정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무용담이 아니다. (이런 식으로 '라떼'로진화하고 싶지 않다)'최선이었다'는 일종의 불가침 조약이다. 더 이상 과거의 나, 그 옆의 누군가, 그 앞의 환경을 불러와 곱씹지 않겠노라는.
연말에는 으레 지난 1년을 반성하고 새로운 다짐을 한다. 각종 스피커에서는 2024년에 새로운 무엇이 되어라고 한다. 12월31일과 1월1일 사이에 '통행 불가' 경계를 세우라고. 하지만 경계는 현재에 세워질 수 없다. 아무리 방파제를 쌓아도 역류하던 흐름이 잔잔해질 때, 그제야 내게 하나의 '시절'을 매듭지을 권한이 주어진다. 이제나는 시간이 충분히 뒤섞이도록 두겠다.이 시간이 어떤 이름으로 언제 매듭지어질지 지금부터 내다볼필요는 없다.다만 매 순간에 진심을 다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