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의 로빠힌은 현대-자본-이성을 대변한다. 로빠힌은 무형의 가치를 모르고, 알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그 성질이 송씨일가-류보비가 겪은 몰락을 피하게 해줄 것이다. 하지만 <벚꽃동산>이라는 연극은 그 자체로 무형의 유산이 아닌가. <벚꽃동산>의 관객이라면 로빠힌을 비판할 언어를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다. 명예 로빠힌/방구석 로빠힌이 판치는 세상에서 좀처럼 정이 가지 않는 캐릭터였는데 이번에는 유독 그에게 연민이 들었다.
2024년 한국 배경으로 각색한 이번 시즌에서 새삼스러운 연민이 든다는 것은, 그만큼 로빠힌이 현대인의 표상을 입체적으로 구현하기 때문이다. 자본과 '팩트'를 맹신하는 남성집단의 대표값을 넘어, 내 옆에-혹은 내 안에 살아있는 인물로 팽창했다. 연민과 사랑을 가지고 있지만 끝내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공허도 이해하지 못하며, 앞만 보고 달려가는 사람.
로빠힌의 공허는 머물 수 있는 과거가 없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그에게 과거는 넘어서야 할 대상에 불과하다. 달동네에 있던 그의 옛집이 철거될 때 그는 후련함을 느꼈으리라. 재벌가가 보이는 과거에 대한 애착은 그의 눈에 가진 자의 사치로 비친다. 관객은어렵지 않게 그의 시선에 동화될 수 있다. 불도저로부터 지키고 싶은 정든 옛집도, 가족의 생일선물도 내게는 없다. 더 좋은 것으로 '갈아탈' 수 있게 되면 과거는 의미를 잃었다. 기업을 인수하고 수천명을 해고한 뒤 합리성을 운운하는 그에게 동의할 수는 없다만, 무형의 가치를 말하며 로빠힌을 온전히 미워하기에는 영 찝찝하다. 한마디로, 나도 찌들었다.
이 건물을 전부 내버릴 수 있을 만큼의 사랑. 바랴는 로빠힌에게 그런 사랑을 하라고 말하며 떠난다. 나-너-우리에게 그런 사랑이 가능할까. 사랑을 좇는 류보비는 어른의 기준에 상당히 부적격하다. 전도연이 연기하는 류보비는 너무나 사랑스럽지만 그녀를 닮고자 하는 사람은 희소할 것이다. 사랑에 '제대로' 빠지기는 두렵다. 로빠힌이 올리는 고급 호텔의 층층이 우리가 있으니까. 이 망설임이 공허를 품고 돌진하는 로빠힌의 시선 위에 겹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