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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샤 pacha May 08. 2022

생상스, [춤추는 죽음]

 유튜브를 통해 생상스(Camille Saint-Saëns : 1835-1921)의 교향시 [춤추는 죽음 la Danse macabre]을 들어보았다. 여러 버전을 들었다. 그 가운데 라디오 프랑스 오케스트라 연주는 설명을 곁들어서 아주 좋았다. 19세기 말에 유행한 고전음악이 그렇듯이 묘사적인 면이 두드러지는 생상스의 교향시는 죽음과 삶의 이중주이다. 생상스는 1872년 카잘리스(Henri Cazalis)의 시 « 평등 박애 »에 곡을 부친 샹송을 1874년 관현악곡으로 바꾼다. 리스트와 호로비츠(Vladimir Horowitz)가 편곡한 피아노 독주곡도 있고, 생상스 자신도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해 편곡도 한다. 유튜브에는 해골들의 춤을 음악과 함께 만화 영화로 보여주는 영상도 있다. 교향시 [춤추는 죽음]은 할로윈 축제와 연결시켜 어린아이를 위한 음악으로 많이 알려져 있기도 하다. 그렇지만 카잘리스의 시는 중세의 전설보다는 당대 사회를 아이러니하게 드러내는 측면이 강하다. 


카잘리스의 시 전문을 보자.


타악 타악 탁, 박자를 맞추어 

뒤축으로 무덤을 두드리며

타악 타악 탁, 바이올린에 맞추어

자정에 죽음은 춤곡을 연주한다.


삭풍이 불어오는 캄캄한 밤에

피나무들이 신음소리를 낸다.

하얀 해골들이 긴 수의를 걸치고

그림자를 밟으며 내달아 뛴다.


타악 타악 탁, 격렬하게 몸을 비틀자

춤꾼들의 뼈 부딪는 소리 들린다.

옛사랑을 되살리려는 듯

선정적인 한 쌍이 이끼 위에 앉는다.


타악 타악 탁, 연신 죽음은

쉴 새 없이 새된 소리를 긁어낸다.

겉옷이 벗겨지니 여인은 나체다!

파트너가 그녀를 꼭 끌어안는다.


여인은 후작이나 남작 부인이라는데,

호색한은 가난뱅이 목공이다.

참 저런! 상놈이 후작 인양

여인이 몸을 내맡기네!


타악 타악 탁, 외설적인 춤판일세!

손에 손잡은 해골들의 원무일세!

타악 타악 탁, 춤패를 보면 왕이 

평민과 어울려 깡충깡충 춤추네!


오오라! 수탉이 울고 나자 

갑자기 원무판을 다 떠나네,

서로 밀치며 달아나네!

아! 비참한 세계를 위한 멋진 밤!

죽음이여 만세, 평등이여! 



 중세 유럽의 전설에 나오는 장면처럼 밤 열두 시를 알리면 죽음(해골)이 등장한다.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는 하프가 울리며 뒤이어 호른이 종소리의 울림으로 퍼진다. 바람 불어 피나무 가지가 울음 우는 음산한 분위기는 들릴 듯 말 듯한 바이올린의 떨리는 선율로 묘사한다. 그러자 해골은 마귀 들린 악기라고 하는 바이올린을 조율한다. 첼로와 바이올린의 현악 파트가 나지막이 무덤 속을 들쑤시며 해골을 불러 깨운다. 그리고 원무가 시작된다. 무덤에서 나온 해골과 사람이 어울려 한 판 춤이 벌어진다.


 생상스는 샹송에서 사용한 두 개의 주제를 교향시에서 재활용한다. 산 사람의 주제와 해골(죽음)의 주제이다. 그런데 산 사람의 주제는 느린 템포로 무겁고 장중하다. 반면 해골의 주제는 빠른 템포로 경쾌하고 발랄하다. 먼저 해골의 주제가 흥겹게 흘러나오고 이어 마지못해 춤판에 끌려가듯 산 사람의 주제가 뒤뚱뒤뚱 뒤따라 나온다. 바이올린 솔로가 주제를 연주하면 플루트와 오브에가 화답하며 나온다. 그리고 실로폰도 등장한다. 바이올린, 목관, 실로폰이 대화를 나눈다. 특히 뼈와 뼈가 맞부딪히며 나는 소리를 실로폰이 생동감 넘치게 흉내 낸다. 하프와 함께 반주로 등장하는 현악 파트도 피치카토(pizzicato : 현을 손으로 뜯는 연주법)로써 3박자 왈츠의 리듬을 재현한다. 또한 콜 레뇨(col legno : 활로 현을 두르려 내는 연주법)의 낮게 깔리는 리듬으로 신비하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여기에 팀파니를 비롯한 타악기도 3박자의 왈츠 리듬에 가세한다. 목관과 금관, 타악기가 합세하여 점점 볼륨이 높아간다.


 그다음 중세의 디에 시레(Dies irae (노여움의 날), 11세기 초에 나타나 13세기에 완성된 기독교 장례식 때 « 온 세상이 잿더미가 되는 / 그날, 노여움의 날 / »로 시작되는 시에 맞추어 부르는 노래)라고 하는 아포칼립스 왈츠가 나온다. 생상스는 2박자의 장중한 디에 시레를 경쾌한 3박자 장조의 경쾌한 죽음의 춤곡으로 바꾼다. 산 사람과 죽음의 춤판은 더욱 흥을 더해간다. 샹송과 달리 교향시에서는 두 주제가 서로 합쳐진다. 다시 현악의 죽음의 주제에 뒤이어 산 사람의 주제는 장중한 트롬본으로 연주된다. 삶과 죽음이 어우러져 광란의 춤을 춘다.


 점점 춤사위는 절정으로 치달아간다. 오케스트라의 전 악기가 등장하여 한층 소리가 드세지고 높아진다. 꼬꼬리 꼬꼬! 다섯 박자로 오브에가 우렁차게 장닭 울음을 울면 갑자기 파장이다. 어느새 성대한 춤판의 불꽃이 사위어 식은 재만 남는다. 해골들이 무덤 속으로 꼬리를 감추며 사라진다. 덩달아 소리도 희미해지다 멈춰진다. 고요하게 시작된 죽음의 춤판은 두 박자의 피치카토로 멜랑콜리하게 끝난다.


 생상스는 프랑스 작곡가로서는 처음 교향시를 작곡하고 또 실로폰이라는 악기를 처음 교향악에 쓴다.

 인간과 죽음의 두 주제가 어우러져 음산한 분위기와 경쾌한 분위기가 뒤섞인 한편 삐걱대며 거슬리는 듯한 소리가 묘하게 배경처럼 깔린다.

 생상스는 전통적인 죽음의 춤이라는 주제에 자신이 국민 민병대원으로 참전한 1870년 보불전쟁의 패배[1], 제3공화국 선포(1870년 9월 4일), 이어 1871년 피비린내 나는 내전 파리코뮌(Paris-Commune)[2]이 일어나는 역사적 배경을 은연중에 내비친다. 기존 질서가 무너져 혼란스러운 시대 분위기를 반영하면서 어수선한 사회상을 비꼬는 듯한 묘한 아이러니가 담겨 있다. 생상스의 교향시 [춤추는 죽음]은 죽음과 삶의 희비극이다.



[1] 보불전쟁에 패배하여 프랑스는 알자스로렌 지방을 프로이센한테 빼앗긴다.

[2] 1871년 3월 18일 - 5월 28일, 72일간에 걸쳐 보불전쟁 패배와 파리 포위전 이후 파리에서 국민 민병대의 무장 해제에 반대해서 일어선 노동자, 수공업자, 자영업자들이 중심이 되어 시민 자치를 주장한 민중 봉기로 정부군한테 총살된 사상자를 2만 정도로 추산한다. 2016년 11월 29일에야 프랑스 국회는 무력 진압으로 희생된 파리코뮌 희생자들의 명예 회복을 선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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