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몇 년 전 일이다. 지갑을 잃어버려 체류증을 다시 신청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재발급 받는 절차는 신규 발급이나 갱신보다는 절차가 간단하다. 하지만 현장에 출두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 체류증 사무실에 볼일을 보려면 이른 아침에 가서 줄을 서면 된다. 코로나 이후로는 약속을 잡아야만 사무실에 들어가는 식으로 바뀌었다. 그전에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일찍 가서 기다리면 현장에서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런데 모든 업무를 디지털화한다는 이름으로 인터넷으로 약속을 잡게 바꾸었다. 이것은 현장 사무실 인력을 줄이자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대신 공공 서류를 해결해야 하는 사람은 그전보다 훨씬 힘들게 된 셈이다.
도청 사무실에 있던 자동차 관련이나 여권 관련 창구 자체가 사라지고 말았다. 그래도 유일하게 남아 있는 사무실은 외국인 상대하는 체류증 관련이다.
그때 10년짜리 체류증 재발급 받으려고 도청 사무실 줄에 서면서 느낀 것을 한 편의 시로 적어보았다.
비브 라 프랑스 비브 라 레퓌블리크
침댓가에 새벽 잠을 미련처럼 남겨두고
제삼세계 떨거지들 도청 앞에 줄을 선다.
아라브 아프리캥 아지아티크...
가무잡잡 희끄무레 노리딩딩 원단까망...
아무도 출근 않은 사무실 앞
프랑스 깃발아래
새시민 후보자들 길게 길게 줄을 선다.
종주국 프랑스 말로 전화를 하고 그 글로 씌어진 무가지 신문도 보고 책도 읽는다.
이 줄에서 그 어려운 레세피세라는 말도 배운다.
일찍 와 앞에 서지 않으면 번호표가 없다.
새벽잠도 반납하고 하루를 공치면서 필사코 줄을 선다.
피부와 머릿결이 반짝이는 십대 후반에서 얼굴은 쭈글쭈글 머리는 파뿌리 된 된 칠십대까지
새시민 후보들 참으로 다양하다.
지루함을 달래려 스트레칭을 하고 담배를 배어물고 명상에 잠긴다.
잠은 덜깨도 배는 고파오고 오줌도 마려워온다.
추운날이나 비 내리는 날은 시간이 이렇게 굼뜰 수 없다.
슬로우 모션으로 돌아가는 달팽이 시계다.
번호표를 받고도 창구까지 가려면 또 다시 전광판을 쳐다보며 하염없이 기다린다.
번호표와 화면을 연신 번갈아 맞춰본다.
내 차례는 언제 오나 혹 내 번호가 지나가지 않았나.
창구 앞에 서면 저도 몰래 긴장한다. 잘못한 게 하나도 없는데.
마침내 레세피세를 받아들면
지금까지 고생한 시간들이 한꺼번에 날아가고
평상시로 되돌아가 다시 일 년을 살아간다.
오늘 아침도 제삼세계 신민들이
분티 바나나를 꿈꾸며 프랑스 깃발 아래 길게길게 늘어 선다.
비브 라 프랑스! 비브 라 레퓌블리크!!
(Vive la France! Vive la Républiq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