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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샤 pacha Mar 15. 2022

18세기 말 파리의 밤 풍속도

레티프, [파리의 밤]

 통금 상태의 구체제에서 매일 밤 파리의 거리를 쏘다니며 관찰하고 곧바로 낮에 글로 옮긴 레티프 드라 부르톤(Rétif de la Bretonne)이라는 작가가 있다. 레티프는 식자공이면서 인쇄업자이며 작가인 아주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이다. 그러니까 레티프는 작품의 착상에서 조판과 인쇄 및 배포까지 모든 과정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경우였다. 그는 총 207권에 57000 인쇄 페이지를 펴낸 다작가로도 유명하다. 사드 후작은 레티프가 "머리맡에 인쇄기가 필요한 사람"으로 "장점이라고는 다작밖에 없다."라고 비꼬았다. 한편 레티프는 사드 후작의 가학적이고 변태적인 풍기 문란을 [파리의 밤]에서 신랄하게 비판한다 « 155와 274번째 밤 ». 


 그의 모든 작품들은 자서전적인 글쓰기로 자신이 체험한 것과 생각한 것을 중심으로 자신한테 일어나는 모든 것을 글로 옮기는(전사하다가 꼭 맞다.) 작가이다. 당시로는 아주 드물게 메세나도 없이 1767년부터 오직 자신의 글로만 먹고 살 결심을 한다. 엄청난 양의 작품을 발표하지만 수입은 보잘것없어 가족을 제대로 부양할 처지가 되지 못한다. 급기야 말년에 그는 국가에 몇 차례(1796, 1803, 1805) 구조금을 신청하는 지경까지 간다. 당시 가난했던 문인은 레티프만이 아니다. 사실 18세기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는 루소였다. 그의 연애소설 [누벨 엘로이즈](1761)와 교육소설 [에밀](1762)은 대단한 성공을 거두지만 작가는 가난했다. « 369 번째 밤 »에서 레티프는 저작권이 보호되지 않고 표절과 위작이 판을 쳐서 그렇다고 지적한다. 결국 저작권은 프랑스 대혁명 때 인정받는다.


레티프, [파리의 밤], Gallimard, 1986.

 레티프의 작품 가운데 널리 알려진 [파리의 밤 Les Nuits de Paris](1788)[1]은 파리[2]의 밤거리에서 일어나는 "어느 누구도 보지 못한" 별난 사건들을 20년에 걸쳐 관찰하고 20일에 한 번 꼴로 취재 노트처럼 스케치하듯 이야기한다. 실제로는 366회가 아니라 다작가답게 이를 넘겨 385회에 « 추신 »까지 단다. 레티프가 보도한 사실은 역사학자들이 풍속사를 연구할 때 그 정확성이 입증되었다[3]. 해가 떨어져서 동이 틀 때까지 "부엉이 관찰자"로서 길 모퉁이나 후미진 곳에서 밀정처럼 어둠에 몸을 숨기고 눈앞에 벌어지는 특이한 사건을 몰래카메라로 현장 중계하듯 보도한다. 부엉이 관찰자의 발길을 잡아끄는 것은 어둠 속에 비치는 한 줄기 빛이거나 어둠 속을 가르고 울려 퍼지는 수상쩍은 소리이다. 


 "나는 홀로 어둠 속에서 거대한 수도를 떠돌아다녔다. 가로등 불빛은 어둠과 대조를 이루면서 어둠을 지우지 않고 두드러지게 한다" « 첫 번째 밤 ». 


 레티프 시절 이미 파리 시내에는 가로등이 적잖이 설치되어 있었다. 글을 쓰려고 카바레에 들어가면 그는 "맥주 한잔, 에쇼데(과자의 일종) 여섯 개 그리고 불 하나"를 주문한다 « 6번째 밤 ». 생미셸 광장에서 "나는 야경꾼처럼 집 그림자를 따라 사푼사푼 걸어가고 있었다. 둔탁한 소리가 귀청을 울린다. 가까이 다가간다. 세 남자가 어떤 주택의 대문 옆쪽 벽에다 구멍을 내는 중이었다". « 17 번째 밤 »에서 호통을 쳐서 세 사람을 퇴치하고 문지기한테 알리는 이야기에 나오는 장면 묘사이다.

 

 늦은 밤 귀족 청년이 몰래 사다리 줄을 타고 아파트 3층으로 타고 올라가 서민층 유부녀 애인과 밀회하는 현장을 살피다가 부엉이 관찰자는 야간 순찰대(이 시절 파리에는 2-3백 명의 보병 야경이 있었다.)에 걸리기도 한다. "지나가던 야경이 나를 적발하였다. "거기서 뭐 하는 거요?"하고 분대장이 아주 거칠고 세게 말했다. "누구를 기다리는데 곧 도착합니다."하고 대답했다. "분대원이 나를 훑어보고는 그냥 내버려 두었다" « 49 번째 밤 ». 이 시절 통금 위반 통제가 느슨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레티프는 기존 체제 유지에 절대적 가치를 두는 가부장적 도덕군자이지만 자신이 목격한 부당한 사건에 대한 논평을 통해 혁신자의 면모를 드러내기도 한다[4]. 그는 사형 장면을 목격하거나 아니면 들은 이야기를 전달하면서 처형의 가혹함을 부각하고 위고([어느 사형수의 마지막 날], 1829)에 앞서 사형제 폐지를 주장한다. 시청 광장에서 교수형을 집행하는 장면을 직접 보면서 그는 "그 사람들이 사형시킬 권리가 있나?... 비열하고 잔인하게 목숨을 앗아간 살인자일지라도?"라고 자문하면서 "아니."라고 답한다 « 10번째 밤 ». « 158째 밤 »에서는 시청 광장에서 야간 사형 집행 때 보초들이 구경꾼을 접근하지 못하게 단속하고 형을 집행(시늉)하는 동안 보초들은 사형대를 향해 등 돌린 상태에서 집행인은 사형수를 처형하지 않은 일화를 예로 든다. 횃불 밝힌 상태에서 진행되는 사형 집행은 멀리서 본다면 어떻게 집행되는지 확실하게 분간할 수 없었으리라. 밤과 횃불은 명암의 대조로 드러내기도 하지만 감추기도 하니까. 그뿐 아니다. 사형 집행인의 실수로 참수형이나 교수형 집행 뒤에도 살아남는 경우가 더러 생긴다.


 « 174번째 밤 »은 교수형에서 살아남은 사형수가 다시 잡혀 차형을 당하는 일화를 들려준다. 루앙의 마필 매매상 아들 르페브르는 난폭하게 폭력을 휘둘러 살인한 죄로 교수형에 처해진다. 횃불이 밝혀진 처형장에서 서민층 소년들은 "르페브르 네가 교수형에서 살아 돌아오면 그다음엔 차형을 당할 거야."하고 소리를 지른다. 늦은 밤 처형 한 뒤 확인 절차 없이 시체는 곧바로 외과의사한테 넘겨진다. 

 의사는 난로를 피운 해부실에 시체를 둔 채 밤참을 먹으면서 동료와 토론을 벌인다. 그러다가 의사는 자신의 이론을 뒷받침하는 책을 찾아오라고 하인한테 심부름을 시킨다. 하인은 시체가 난롯가로 움직이는 광경을 보고 그 자리에 얼어붙는다. 책 가지러 간 하인이 돌아오지 않자 두 번째 하인을 보낸다. 두 번째 하인은 시체가 첫 번째 하인을 죽인 걸로 여긴다. 두 번째 하인도 돌아오지 않자 의사가 해부실로 간다. 시체에 숨이 붙어 있는 것을 확인한 의사는 최선을 다해 살려낸다. 의사의 보살핌을 받고 르페브르는 3주 뒤 건강을 회복한다. 의사는 르페브르한테 저지른 죄 때문에 이렇게 된 거니까 외국으로 떠나 앞으로는 자제하면서 살라면서 자리 잡을 때까지 필요한 돈을 쥐어 보낸다. 이 장면에서 작가는 범죄의 사슬을 벗어나지 못하는 연결 고리에 대해 촌평한다. 르페브르 같은 죄인이 수감 동안 흉악범이 되어 나오는데 그것은 이런 흉악범이 행인을 약탈하듯 죄수를 야만적으로 심하게 다루는 간수와 죄인을 비인간적으로 취급하는 재판관의 태도와 무관하지 않다. 

 르페브르는 은인의 집을 나서자마자 칼을 하나 구입한다. 고향인 르아브르에 거의 도착한 지점에서 소장수를 만난다. 그는 돈이 많다고 여긴 소장수를 칼로 공격하다 잘못되어 오히려 자신의 칼에 다친다. 그는 바로 체포되어 다시 감옥에 갇히고 이튿날 심문을 받는다. 낯익은 피고인을 대한 재판관은 어디선가 본 듯하다고 말하자 르페브르는 3주 전에 교수형에 처해진 사람이라고 자초지종을 말한다. 참고인으로 외과의사를 출석시킨다. 의사는 판사한테 "저는 제 의무를 다했으니 판사님의 의무를 이행하십시오."라고 감탄할 변호를 한다. 그리고 의사는 몇 마디 덧붙인다. "해부를 통하여 인류한테 도움 줄 양으로 시체를 구입했는데 (…) 시체를 소생시키면서 또 다른 유익한 방법을 발견했습니다. (…) 교수형으로 질식된 사람한테 외과 치료할 기회를 잡은 것이었습니다 (…)". 르페브르는 이튿날 산 채로 차형을 당한다.

 

 « 326번째 밤 »에서 레티프는 다시 한번 사형제의 끔찍함을 언급한다. 

"범죄에 비추어 형벌이 너무 가혹하면 사람들은 견딜 수가 없어 효과도 없다. 사람들은 무서워하지 않고 분개한다". 

 그는 횃불을 밝힌 시청 광장의 차형 현장에서 너무 잔인한 처형 장면을 차마 볼 수 없어서 자리를 피한다. 대신 그는 구경꾼들을 관찰한다. 그들은 시장 무대의 통속극을 구경하는 것처럼 수다를 떨고 웃음을 터뜨린다. 그 가운데 애인과 함께 나온 아리따운 처녀가 불행한 사형수들의 얼굴 표정이며 신음 소리를 두고 농담하면서 깔깔거리자 그는 도저히 참지 못하고 끼어든다. 

 "아가씨, 이 무슨 괴물 심보입니까? 오늘 저녁 보아하니 아가씨는 무슨 범죄라도 다 저지를 사람이군요. 불행히도 내가 당신 애인이라면 영원히 그대를 피하리다". 

 그러자 아가씨는 말을 뚝 끊었고 불쾌한 반응이 나오지 않을까 했는데 애인은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야밤에 의대생 넷이 공동묘지에서 몰래 시체를 훔쳐가는 이야기도 몇 차례 나온다. 뷔쉬리길에 사는 부엉이 관찰자와 같은 동네인 아르프길 작은 주택 4층에 해부실을 둔 이들은 바로 옆에 있는 생세브랭 묘지 도굴이 전문이다. 그들이 어린아이의 시체를 해부한 다음 몰래 길모퉁이에 버린 팔다리 부분을 발견하고 또 훔친 시체를 해부하는 현장을 목격한 부엉이 관찰자는 범죄인의 시체를 그들한테 주면 좋을 텐데라고 제안한다 « 31, 32번째 밤 ». 한 번은 그가 생세브랭 성당 주변에서 도망치는 발자국 소리를 듣고 현장으로 접근한다. 성당의 층계참에서 피칠갑이 된 시체를 발견한다. 어찌할 바를 몰라 어리둥절해 있는데 의대생들이 출현하여 싸늘해진 시체를 들고 사라진다. 해부실로 가져간 그들은 시체에 숨이 붙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소생시키고 보살핀다 « 57번째 밤 ». 또 한 번은 의대생들이 그날 저녁에 매장한 18세 처녀의 관을 파헤쳐 뚜껑을 열었는데 되살아난 소녀를 발견하고 해부실로 옮겨 정성을 다해 소생시켜 이튿날 부모 집으로 데려다주는 일화를 보도한다 « 72번째 밤 ».


 레티프는 서민들이 대거 참가하는 밤 축제, 특히 불꽃놀이 축제 때 불량아들이 조직적이고 계획적으로 저지르는 소매치기나 비행도 생생하게 보도한다. 불꽃놀이가 소매치기한테는 일 년 농사요 방탕아한테는 음탕한 짓거리를 실컷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행사는 전부 금지할 것을 강력하게 주장한다. 불량배들은 시계 직공과 금은세공 직공, 서기 등 하층에 속하는 혈기왕성한 청소년 무리들이다. 하늘 높이 불꽃이 펑펑 터지며 불똥이 떨어지는 순간이나 익살극의 우스꽝스럽고 외설적인 장면에 정신 팔린 틈을 이용해 지갑이며 회중시계, 구두끈 매듭, 스타킹 고정 고무 밴드 등을 슬쩍한다. 소매치기 수법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먼저 한 무리의 불량배들이 먹잇감을 정하고 빙 둘러싼다. 때가 되면 울렁울렁 움직이다가 한 사람이 밀치고 빨리 지나가면서 호주머니를 슬쩍한다. 훔친 자를 잡아보아야 소용없다! 그 옆에 지키고 있던 한패거리한테 이미 전달해서 사라진 후니까. 축제판에서 도둑질만 벌어지는 게 아니다. 불량배들은 많은 사람들이 뒤죽박죽 한데 뒤섞여 어수선하고 어지러운 분위기를 틈타 구경 나온 어린 아가씨를 에워싸고는 강제로 잡아 들어올려 헹가래를 치며 골탕 먹이고 추행을 하며 더 나아가 넘어뜨려 짓밟고 깔아뭉개는 위험한 짓거리도 서슴지 않는다[5].


 "얼마 전부터 나는 줄타기 곡예를 꼭 다시 보고 싶어졌다. 이날 밤이 안성맞춤이었다. 불바르의 스펙터클은 생로랑 축제장에 있었다. 멋진 불바르를 죽 돌아다니다가 생마르탱 관문까지 내쳐갔다. 그리고 성라자로 수도회 안뜰에서 열리는 축제장으로 갔다." 


 폐장 시간이 새벽 두 시였던 생 로랑 축제는 원래 8월 10일 생 로랑 축일에 열렸지만 18세기에는 여름 내내 열린다. 레티프는 장삿속만 판치는 쓸모없는 축제라고 부른다. 야시장 최고의 볼거리는 통속극이다. 관객을 열거하면 이렇다. 주로 불량배, 수습공, 가정집 아이들이고 여기에 일을 많이 하지 않는 노동자들, 외국인들, 신참 여자 장돌뱅이, 여자 재단사, 초칠하는 여자, 가스불 켜는 여자, 수공업자 딸들… 부엉이 관찰자가 참가한 날 어떤 지방 출신 청년은 지갑, 시계, 코 담뱃갑, 손수건을 다 털린다. 어머니와 함께 나온 어떤 소녀는 익살극을 구경하던 중 불량아한테 공격당해 6주간 몸져눕는다. (하지 전날 시청 광장의 불꽃놀이 축제 « 72번째 밤 », 루이 15세 광장(콩코드 광장)의 불꽃놀이 « 111번째 밤 », 생로랑 야시장(동역 앞 생로랑 길 있는 곳) 축제 « 121번째 밤 »)


 그는 속임수가 판치는 도박 현장을 방문하고 나서 "오 관료들이여! 카드 도박장과 당구 도박장(…)을 당장 폐지하시오. 미풍양속에 신경을 쓰게 되면 나라가 번성할 것이오." 하고 주장한다 « 219 번째 밤 ». 실제 그는 현장에서 정의의 사도처럼 몸소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고 구하기도 한다. 자신의 능력 밖일 때는 페이엔길에 거처를 둔 정체가 드러나지 않은 신비로운 의인 "후작 부인"[6]한테 도움을 청하거나 공권력에 신고하여 해결한다. 책의 부제이기도 하지만 자신을 "밤 관찰자"로 소개하는 일인칭 관찰자 화자이면서 때때로 주인공 화자가 되기도 한다.


 레티프의 독창성이라면 파리의 밤거리에서 마주칠 수 있는 다양한 계층을 등장시키지만 지금까지 그 존재가 작품 속에 본격적으로 드러난 적이 없는 최하층 사람들의 민낯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는 데 있다. 무위를 경계하고 노동을 중시(축제날은 반드시 일요일로 정하고 종교 축제는 오전에 민속축제는 오후에 조직해야 한다고 제안한다.)하는 그는 노동자 계층에 대한 관심이 각별하다. 루소의 [에밀]과 [고백록]에서 적잖이 영향을 받은 레티프를 당대 사람들은 "개천의 루소"라고 불렀다. 불꽃놀이 축제와 야시장 민속 축제, 당구 도박장, 레알, 팔레 루아얄을 비롯 그가 쏘다니는 파리 곳곳에서 마주치는 다양한 최하층민들을 소개한다. 위에 열거한 부류 이외에도 야바위꾼, 숯쟁이, 요리사, 웨이트리스, 창녀, 맹인 거지, 식자공, 거리 청소부, 실업자, 노숙자, 넝마주이… 그리고 밑바닥 인생의 열악한 여건을 폭로한다. 예를 들어 레알과 루브르 사이 동네에서 우연히 마주친 몸 파는 길로 들어선 전직 재단사 소녀의 입을 통해 "입에 풀칠할 정도도 못 버는 이 일이 싫어요." 하고 밝힌다 « 90 번째 밤 ».


 눈앞에서 사건이 펼쳐지듯 보도하지만 레티프의 이야기는 짤막해도[7] 줄거리를 짜서 먼저 호기심을 유발하고 나중에 결말을 보여주는 기법을 자주 쓴다. 이렇게 한 번 등장시킨 인물을 다시 불러들여 후일담을 들려준다. 예를 들어 « 126번째 밤 »에서 개와 의지하며 노숙 생활을 하는 "돈 한 푼도 쓰지 않는 남자"는 반려견이 죽은 뒤 « 325번째 밤 »에서 다시 나오는데 금속 중독된 음식을 주워 먹은 뒤 막 죽은 시체로 등장한다.

 

 얼핏 보면 사드 후작의 비야냥처럼 "늘 불량아들한테 끌어낸 모험담"을 "비천하고 굽신거리는 문체"로 써서 "후추 장사꾼이나 좋아할" 글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플레이아드 총서(collection Bibliothèque de la Pléiade : 갈리마르 출판사의 문학총서. 수준 높은 비평과 풍부한 자료를 동원한 전집 출판으로 문학 연구의 기준으로 알려져 있다.)에 들어간 나름의 이유가 다 있었다. 레티프의 글쓰기는 과거보다는 현재, 아니 미래로 향한다. 기록으로서 새기는 행위(생루이섬 동쪽 끝에 있는 돌에 자신이 관계한 여인들의 이름과 연도와 날짜를 기록한다 « 295번째 밤. 생루이섬의 내 연대기 », « 307번째 밤. 지워진 연대기 »)로서 과거를 기념하여 현재로 되살리고 현재의 문제점에 대한 개선안을 그려보면서 미래로 향한다 « 233-237번째 밤. 1888년 ». 


 레티프의 글을 읽다 보면 끊임없이 지나가버리는 시간을 붙잡아 매려고 꾸미지 않은 날 것 같은 느낌이 들게 싱싱하고 파닥파닥 한 글쓰기 행위가 손에 잡힐 듯하다. 어쩌면 바로 여기에 레티프 글쓰기의 묘한 매력이 있는지 모른다. 인삼 뿌리를 씹을 때처럼 처음 쓴맛이 돌다가 자꾸 씹다 보면 단맛이 도는 몽테뉴의 글처럼 레티프의 글도 입안에 바로 퍼지는 천연 사이다 같지만 금방 맛이 없어지지 않고 오래 남는다. 진정한 야행성 선구자 레티프는 감추어진 파리의 밤 풍경을 명암법으로 다양하게 그려내어 18세기 후반 통금제 하의 파리의 하층 밤 풍속사를 짧은 이야기로 인상 깊게 파헤친다. 이후로 파리의 밤을 주제로 한 수많은 후속작을 배출한 모델이 된다.


          

[1] 레티프의 [파리의 밤]은 이미 출판되어 주목을 끈 파리의 낮 풍속을 그린 메르시에(Louis-Sébastien Mercier)의 [파리의 그림 Le Tableau de Paris](1781-1788)에 상응하는 파리의 밤 풍속을 보도한 작품이다. 메르시에는 레티프에 앞서 모랄리스트 또 관찰자로서 파리의 거리에서 벌어지는 서민들의 풍습이며 일상생활에서 벌어지는 남용, 과도함, 악습을 그려낸다.

[2] 당시의 파리는 오늘날의 여섯 개의 중심 구역(arrondissements)에 해당하며 전부 스무 개 지구(quartiers)로 나뉘어 있었다.

[3] 19세기 파리의 밤 풍속사를 체계적으로 연구한 시몬 드라트르(Simone Delattre)의 역작, Les douze heures noires. La nuit à Paris au XIXe siècle, (Albin Michel, 2000)을 참조하라.

[4] 가혹한 사형제(참수형, 교수형, 차형), 야간 소음, 거리에 내다 버리는 오물, 해부할 시체가 없는 의대생 문제 등…

[5] 후일의 루이 16세와 마리 앙트와네트의 결혼을 기념하는 축제가 베르사유(5월 16일)에 이어 파리에서 1770년 5월 30일 루이 15세 광장에서 열린다. 약 3-4십만 인파가 모여들었다. 메르시에는 파리 시민의 삼분의 일만 집에 남아 있었다고 쓴다. 가건물로 설치한 결혼 신전이 불꽃놀이 중 화재가 일어난다. 겁에 질린 군중들이 달아나기 시작하는데 유일한 출구인 루아얄길에 마차들이 가로막고 있었다. 출구가 좁혀져 빠져나갈 수 없게 되자 많은 사람들이 넘어지고 쓰러진다. 바닥에 깔린 사람들을 짓밟고 지나가면서 압사자가 속출한다. 132명 사망.

[6] [천일야화]의 이야기꾼 세헤라자드처럼 부엉이 관찰자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우울증에 빠진 후작 부인을 살려낸다. 부엉이 관찰자는 암행어사처럼 야간 산책에서 목격한 특별난 사건을 후작 부인한테 보고한다. 후작 부인은 어려운 처지에 놓인 여인들을 자신이 운영하는 기관에 맡겨 보호하고 또 일자리를 배당하기도 한다.

[7] 메르시에의 글처럼 그림(tableau)이나 초상(portrait)에 속하는 단편적인 글쓰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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