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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샤 pacha Feb 23. 2022

호프만, 미치광이 괴짜 작곡가, [기사 글룩]


호프만, [환상 콩트집], Gallimard, 1969.


 라모의 조카와 영적인 동료라면 호프만(E.T.A. Hoffmann)의 환상적인 콩트 [기사 글룩](1808)에 나오는 유명한 오페라 작곡가 기사 글룩(Ritter von Gluck)의 작품에 푹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50대의 미치광이 괴짜 작곡가(크라이슬러)를 떠올릴 수 있다. 

 그는 베를린의 베버 카페의 창가에서 [토리드의 이피제니](1779년 파리에서 작곡한 4막 비극)에 나오는 무녀들의 합창곡을 나지막히 독창적으로 멋지게 부른다. 이 괴짜한테는 자질구레한 현실에서 난데없이 신비한 꿈의 세계가 펼쳐진다. 그는 꿈의 세계에 빠지고 최면에 걸리면 정령이나 사물 또는 식물과도 교감한다. 그는 ‘나’한테서 갑자기 사라졌다가 불현듯 다시 나타난다. 그가 사라진지 몇 달 뒤 ‘나’는 티어가튼의 오페라 극장 바깥에서 홀로 오페라의 무대 연기와 오케스트라 연주 지시도 번갈아 하는 그를 다시 마주친다. ‘내’가 그를 잡아끌고 가면서 오페라 극장에서 글룩의 [아르미드](1777년 파리에서 작곡한 5막의 영웅적인 드라마)를 듣고 싶다고 하자 그는 ‘나’를 데리고 허름한 건물의 위층에 자리한 자신의 골방으로 이끈다. 그는 ‘나’한테 아무 음표도 없는 글룩의 오페라의 빈 악보를 템포에 맞추어 넘기라고 시킨다. 그는 글룩의 오리지널을 변주하고 조바꿈하여 피아노로 화려하고 웅장하게 연주해낸다. 서곡 연주를 마친 다음 그 곡을 "꿈의 왕국에서 돌아오면서 작곡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아르미드]의 피날레를 노래한다. 어찌나 호소력있게 부르는지 ‘내’ 존재의 뿌리까지 흔들어놓는다. 잘 울리지 않는 저음부에서 날카로운 고음부까지 에너지 넘치는 젊은이의 열정적인 목소리로 나의 전 신경을 전율시킨다. 노래가 끝났을 때 ‘나’는 감동에 겨워 그의 팔에 안기면서 "도대체 당신은 누구십니까 ?"하고 묻자 그는 얼마간 사라진다. 잠시 뒤 그는 화려한 연회복에 칼을 차고 나타나서는 ‘내’ 손을 잡고 야릇한 웃음을 흘리며 "내가 기사 글룩이오."하고 말한다. 호프만의 환상적인 콩트집에 나오는 화자 ‘나’는 현실과 꿈의 세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광기에 사로잡힌 인물들과 공감대를 가진 작가의 분신으로 아이러니 섞인 목소리로 느닷없이 이야기에 끼어든다.


 다재다능한 작가 호프만은 미술, 음악, 문학 분야에 모두 뛰어난 역량을 발휘한다. 그가 가장 존경한 음악가는 모차르트로 자신의 세 번째 이름 빌헬름(Ernst Theodor Wilhelm)을 1812년 아마데우스(Amadeus)로 바꾸기까지 한다. 그는 시간이 지나면서 생업이던 프로이센 궁정법원의 배석판사직은 그만두고 가난에 찌들리면서도 주로 음악과 미술, 문학 활동에 치중한다. 1807년 나폴레옹 군대가 바르샤바를 점령했을 때 점령자한테 협력하지 않아 일자리를 잃고 베를린으로 돌아온 그 해는 한 동안 며칠을 굶는 신세가 된다. 이 때 유태 여인과 맺은 정사의 결과 훈장으로 남은 매독으로 죽게 된다. 


 1928년에 페니실린이 발명되어 1940년대에 상용화되기 전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전염병으로 죽었나[1]. 1860년 한 해 동안만 프랑스에서 매독으로 12만명이 죽었다. 매독에 걸린 유명한 예술가만 꼽더라도 끝이 없을 정도다. 매독에 걸려 고생했거나 죽은 독일어권 유명인사만 예를 들어보자. 모차르트, 베토벤, 호프만, 쇼펜하우어, 슈베르트, 하이네, 슈만, 니체, 카프카… 


 지금까지 잘못 생각해서 요절한 천재들이 꼭 천재라서 요절한 게 아니었다는 사실을 새로 알게 되었다 ! 

호프만은 슈만과 보들레르와 마찬가지로 마흔여섯 젊은 나이에 매독으로 죽는다. 슈만은 마지막에 광기에 빠진다. 보들레르와 호프만은 전신 마비가 생겼다. 마지막에 보들레르는 실어증이 왔지만 호프만은 정신은 멀쩡하였다. 죽기 바로 전까지도 호프만은 다음 작품 계획에 골몰한 흔적을 남기고 있다. 마지막에 가서 그는 손놀림이 자유롭지 못하자 순종적이고 헌신적인 부인과 몇몇 비서한테 대필을 맡긴다.


 1808년(이때부터 문학활동이 시작된다.) 호프만은 음악 감독 자리를 얻어간 밤베르크에서는 사정이 여의치 않아 처음에는 아이들한테 음악 레슨으로 생계를 꾸린다. 사정이 호전되면서 무대장식 그림도 그리고 오케스트라 지휘도 하고 오페라 작곡도 하며 음악 비평에다 콩트 작가로도 활약한다. 라모의 조카처럼 여러 분야에 훌륭한 재주를 보일 경우 어느 한 분야에서 남달리 탁월한 재능을 펼치기는 또한 쉽지 않다. 호프만도 마찬가지다.


 그가 만들어낸 괴짜 미치광이 음악가 요하네스 크라이슬러([베르간차 개의 최근 불운에 대한 정보]와 [고양이 무르]의 인물로 등장한다.)는 바로 자신의 분신이다. 기분 변덕이 심하고 비사교적인 크라이슬러 성가대장은 천재적인 음악 재능을 타고났지만 신경이 지나치게 예민해서 정신병 환자로 취급된 작곡가이다. 1838년 크라이슬러라는 인물에 영감을 받아 슈만은 피아노를 위한 여덟 개의 소품 [크라이슬레리아나](op. 16)를 작곡한다.

 

 호프만은 환상적 콩트 분야의 대가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쉽게 빨리 작품을 써서(3백 페이지에 달하는 [악마의 묘약]이란 소설을 한 달만에 써냈다!) 깊이가 없는 작가로 폄하된 면이 없잖아 있다. "훌륭한 공무원, 훌륭한 시인, 훌륭한 음악가, 훌륭한 화가"라는 묘비명이 가리키듯 다재다능한 그는 어느 분야에서도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오페라를 지휘하듯 삶을 꾸리고 싶어했지만 호프만은 가난에 쪼달리어 골방에서 매독으로 고생하며 죽는다.


 그래도 그의 명성은 15년간 활동했을 뿐인 문학 분야이다. 죽고 난 다음이기는 해도 호프만은 파리에 독일 낭만주의를 전파한 사도로서의 특권을 누린다. 유명한 의사 메스메르(Mesmer)류의 동물 최면술과 정신 의학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꿈의 세계를 현실 세계보다 한 단계 높은 상위 세계처럼 보고 인간의 삶에서 초현실(신 또는 악마)의 개입을 암시하는 심리 현상을 정치하게 분석한 호프만은 노디에, 발자크, 상드, 네르발, 고티에, 보들레르 등 프랑스 작가들한테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호프만의 작품은 꿈의 세계를 본격적으로 연구한 정신 분석학의 창시자 프로이드와 집단 무의식이나 원형, 콤플렉스 같은 개념을 도입한 융한테도 많은 영감을 제공한다.


          

[1] 항생제가 나오기 전 1910년 처음 매독에 실질적 효과가 있는 살바르산 치료약이 시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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