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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샤 pacha Feb 26. 2022

검열을 피해 쓰는 연재소설, [소금 밀매꾼들]

Œuvres Complètes II, Gallimard, 1984.

 검열을 피해 태어난 작품은 정통파가 아니고 잡종파이다. 네르발의 [소금 밀매꾼들]은 작가가 연재소설을 쓰는 자기 자신을 등장시킨다. 작가가 당장 신문에 연재해야 하는 연재소설의 바탕 자료를 찾아 헤매는 이야기다. 현재 작가는 언론 출판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률 때문에 허구적인 소설을 쓸 수 없는 처지다. 사실 자료에 바탕을 둔 역사적인 이야기라야 신문에 연재할 수 있다. 만일 허구적인 요소가 들어가면 벌금을 물 위험이 도사린다. 벌금을 피하고 역사적인 내용의 연재물을 쓰기 위해 루이 14세 때 괴짜 실존 인물인 뷔쿠아(Bucquoy) 신부의 '희귀한 이야기' 책을 찾아야 한다. 이 자료를 구하지 못하면 예고한 연재소설을 제때 발표할 수가 없게 되고 작가는 독자한테 약속을 어기게 된다. 더욱이 연재소설은 작가한테 가장 큰 밥벌이이니!


 예상과 달리 자료를 쉽게 손에 넣을 수 없자 하는 수 없이 작가는 연재 소설가의 작업 과정을 마치 연극무대 뒤의 메커니즘을 보여주듯 작가의 이동 아틀리에를 보도하기로 한다. 파리의 고문서 보관소에서 자료를 뒤지다가 뷔쿠아 신부의 왕고모 안젤리크가 쓴 "종이가 누리끼리해진" 사랑 이야기의 육필 원고를 우연히 발견한다. 존재 자체가 수상쩍기 짝이 없는 인물 뷔쿠아 백작 이야기 대신 실재감이 확인된 피카르디 지방 귀족의 딸 안젤리크가 자기 아버지 군대의 하급 병사 라코르비니에르(돼지고기 장수 집 아들이다.)와 벌이는 금지된 애정행각(신분의 차이는 물론이고 안젤리크를 유괴한다. 유괴범은 잡히면 당시 법률로는 사형이다.)을 우선 "원고 그대로" 연재하기로 한다.


 문제는 사실에 바탕을 둔 체험담이지만 연애 이야기는 검열에 걸릴 수 있다. 검열을 빠져나가기 위해 작가는 안젤리크의 무대를 발로 뛰어 취재하면서 자신의 글쓰기 방식이 역사적이라고 우긴다. 소설(roman: 중세 때 라틴어가 아닌 프랑스 북쪽의 말 로망(roman)어로 써진 텍스트에서 유래한다.)의 기원이 남녀 간의 애정 사건을 주로 다룬 통속 소설 로맨스(romans)에서 왔다는 검사의 아전인수격 유권 해석에 따르면 감정을 다루면 소설이 되기 때문에 신문사는 어마어마한 벌금을 물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 작가는 감정이나 사랑을 피할 양으로 동물의 인간에 대한 애착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여자 조련사가 시집을 가자 물개가 슬퍼서 굶어 죽은 이야기와 가족처럼 지내던 물개를 자식들도 굶겨야 할 판인 어부가 양식을 던다고 바다에 서너 번 내다 버렸는데 그때마다 용케 집을 되찾아와서 결국 거두면서 고기가 잘 잡히는 이야기를 끼워 넣는다.


 역사적인 이야기와 허구적인 소설의 경계는 무엇인가? 장르의 구분은 칼로 무 자르듯 명확한 게 아닌데 당국에서는 이런 애매성을 고려하지 않고 정권에 유리하게 자의적인 법해석을 일삼는다. 또 이런 식으로 꼬투리 잡아 권력을 휘두른다. 파리 북쪽 발루아 지방의 시골에서 어떤 고고학자가 고딕 성당을 한참 뚫어져라 바라보았다고 수상쩍은 인물로 지목되어 체포당한다. 작가 자신도 사소한 부주의로 신분증을 호텔에 놓고 챙기지 않았다가 발루아의 어느 카페에서 불심 검문 당해 체포된다. 작가는 시골의 감방에 하룻밤 갇혔다가 그 지방의 큰 도시로 이송된다. 작가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고장에서 가까스로 신원이 확인된 다음에야 풀려난다. 불심 검문은 예나 지금이나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대표적인 예이다. 그리하여 개인의 정체성은 한낱 화석화된 신분증으로 쪼그라든다. 코로나 위기에 이동 증명서를 챙겨 외출할 때면 참 기분이 묘하다. 뭔지 모르게 감시당한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다.


 작가는 뷔쿠아를 추적하다가 국립 도서관에서 루이 14세 때의 끔찍한 범죄 기록부를 발견한다. 그 서류 한 모퉁이에 뷔쿠아란 인물의 수사 노트가 스쳐 지나가듯 적혀 있다. 그 시절의 분위기를 묘사할 양으로 뷔쿠아 이야기의 전주곡처럼 그 사건을 보도한다. 물론 이것 또한 뷔쿠아 이야기를 뒤로 미루겠다는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루이 14세 때 명문 세도 가문에서 부모가 죽은 이튿날 상속 문제로 재산을 분류하다가 처남 매부 간에 언쟁이 벌어진다. 말다툼은 곧장 칼부림으로 치닫는다. 가족, 서기, 공증인, 검사, 하인들이 보는 앞에서 처남과 매부가 칼을 뽑는다. 처음에 매부가 수세에 몰리며 수모를 당한다. 그렇지만 처남은 매부를 살해하진 않는다. 방에 갇힌 매부는 창밖으로 하인을 불러 자신의 건장한 두 조카를 데려오라고 시킨다. 이번엔 두 조카가 처남을 칼날로 위협하며 궁지에 몰아넣는다. 이 와중에 누가 처남을 찔렀는지 증인마다 의견이 엇갈리는[1] 끔찍한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경찰의 수사망에 오르지만 워낙 권세 있는 집안의 일이라 별다른 처벌 없이 그냥 덮고 지나간다. 이렇듯 법은 언제 어디서나 절대로 공평하게 적용되지 않는다.

 

 이번 코로나 사태를 맞아 프랑스의 사회적 불평등 해결책을 제시한 뱅상 랭동이라는 배우가 있다. 당면한 경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재산이 130억 이상의 최상위 부자들한테 가장 못 사는 사람들을 위해 "장 발장"이라는 예외적인 세금을 거두자는 제안을 하였다. 이외에 사회 정의를 위해 선출된 공인의 잘못이 드러났을 때 과반수 이상 시민들의 요구를 통해 임기 중이라도 대통령까지 포함해 누구든 해임시킬 수 있어야 하며 부패가 확인되었을 경우 엄하게 장기 징역형에 처하자는 제안을 하였다. 또한 송장을 꺼내 판결을 내려야 한다는 말이 걸맞을 정도로 지나치게 오래 끄는 프랑스의 재판 관례를 고쳐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모든 소송은 일 년 안에 판결까지 내리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2].


 뷔쿠아 신부의 경우는 고고학자나 작가에 비해 훨씬 심각하다. 감옥 탈출의 달인 뷔쿠아는 우연히 부르고뉴 지방에서 소금 밀매꾼들과 같은 카페에 있다가 주동으로 몰려 억울하게 체포된다. [숙명론자 자크]에서 이야기의 마지막에 살인은 주인이 저지르는데 자크가 대신 감옥 가는 꼴이다. 당국은 재판 과정에서 뷔쿠아 신부를 다른 요주의 인물과 혼동하여 투옥한다. 뷔쿠아 신부는 첫 번째 감옥에 들어가면서부터 탈출을 꿈꾼다. 이 감옥에서 탈출하다 붙잡히자 감시가 더 확실한 파리의 감옥으로 이감된다. 두 번째 감옥에서 탈출에 성공한다. 신분을 위장하고 변장을 하여 파리 북쪽으로 도망치던 중 우연히 다른 사건의 현장에 있다가 재수 없게 다시 잡혀 들어간다. 세 번째 감옥은 그 악명 높은 정치범 수용소인 바스티유다. 바스티유는 죽어서만 나올 수 있다는 탈출 불능의 요새 감옥이다. 탈출 준비를 하다가 몇 차례 발각되지만 그때마다 용하게 모면한다. 쇠톱으로 창살을 자르고 꼬아 감추어둔 검댕이 바른 밧줄을 타고 안뜰로 내려온다. 뷔쿠아는 새벽의 어둠을 방패 삼아 천신만고 끝에 바스티유를 빠져나온다. 동료 둘은 바스티유 마당에서 탈출 방향을 잘못 잡아 탈출에 실패한다. 한 사람은 등치가 뚱뚱해서 아예 감방의 창살 밖으로 나오지도 못한다.


 어떤 권위나 압제 앞에서도 절대 꺾이지 않는 뷔쿠아는 파리의 은둔처에서 서면으로 루이 14세한테 근거 없는 죄값의 사면과 귀족 신분의 복권을 진정하지만 아무 대답도 없다. 안젤리크가 아버지의 권위를 피해 십 년(1632-1642) 동안 온 유럽을 헤매듯이 뷔쿠아도 프랑스를 등지고 네덜란드로 망명하여 거기서 생을 마감한다. 망명 생활 동안 많은 저술을 남기는데 그 가운데 루이 14세의 독재를 막고 공화정을 만드는 내용의 책자도 있다. 영원한 반골 자유인 뷔쿠아는 영영 기존 체제에 편입되지 못하고 떠도는 망명객으로 남는다. 


 그의 왕고모 안젤리크도 아버지의 권위에 의연히 맞서 금지된 사랑을 하다 갖은 고초를 다 겪는다. 더구나 안젤리크는 귀족 집안의 족보에서도 지워진다. 안젤리크가 아버지의 반대를 피해 야반도주하기가 무섭게 참된 신사라고 믿었던 애인은 폭력적이고 권위적인 남자로 돌변한다. 이런 점에서 라코르비니에르는 데프랑의 기질과 닮았다. 그리고 실비를 정복하기 위해 갈루앵이 실비와 자신의 피를 묻힌 마법 목걸이를 이용하듯이 라코르비니에르도 정력제로 알려진 가뢰가 들어간 잼과 익힌 마르멜루를 안젤리크한테 먹여 사랑을 얻는다. 

 안젤리크는 프랑스를 떠나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의 이곳저곳을 떠돌면서 금전적으로 쪼들리고 남편의 폭력과 의처증에 끊임없이 시달린다. 안젤리크는 자신의 어머니와 서신 교환을 하면서 용서할 테니 프랑스로 되돌아오라는 말에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남편의 반대(라코르비니에르는 프랑스로 되돌아오면 체포되어 처형될까 두려워하였다.)에 부딪혀 연기하다가 결국 부모가 죽은 다음에서야 귀국길에 오른다. 

 그렇지만 순종의 화신 안젤리크는 이탈리아 베로나를 떠나 프랑스로 돌아오던 도중 남편이 병(페라라에서부터 둘 다 병에 걸려 계속 아픈 상태인데 무슨 병인지는 밝히지 않지만 1630-1650에 이탈리아를 자주 습격한 페스트일 수도 있다.)으로 아비뇽(교황령이어서 치외 법권 지대였다.)에서 죽는 날까지 부모와 조국을 버리고 사랑을 위해 떠날 때처럼 남편한테 한결같은 애정을 쏟는다. 프랑스로 돌아온 지 4년 지나 고향 지방의 니빌리에에 은거할 때 안젤리크는 등에 걸칠 셔츠도 없을 만큼 곤궁하게 지낸다.


 네르발의 안젤리크는 샬의 소설에서 정조의 화신 안젤리크와 모험적인 실비를 합쳐놓은 듯하다. 뷔쿠아와 안젤리크 둘 다 이런 기구한 자신의 삶을 글로 남긴다. 이 두 사람의 일생을 보도하는 작가는 마치 자신의 자서전 쓰듯 주인공의 삶에 공감하고 깊이 빠져들어간다. 가공의 주인공들을 마치 살아 있는 인물인 양 여긴다. 두 주인공한테 삶을 완성하는 방편이 책을 남기는 길이었 듯이 작가도 타인의 삶을 보도하는 사이사이에 자신의 삶을 이야기한다. 타인의 전기를 쓰면서 자서전을 시도하기에 이른다.


발루아 지방의 지도

 작가는 자료를 찾아 나섰다가 역설적으로 자신의 과거를 되찾는다. 파리 북쪽 발루아 지방은 작가의 외가쪽 조상의 터전이자 자신이 어린 시절 몇 년을 보낸 곳이다. 신교와 구교 간의 종교전쟁이 벌어진 현장이고 이탈리아 르네상스가 일찍 수입된 곳이며 더 올라가면 프랑크 왕국이 터전을 잡은 지역이다. 이 고장을 다시 찾으면서 자신과 얽힌 가까운 과거로부터 이 지방이 간직한 18세기와 17세기, 르네상스, 더 먼 갈로 로맹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런 역사는 이 지방 주민들이 축제 때 여전히 부르는 노래와 춤, 촌극이나 아주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 오는 전설 속에 살아 숨 쉰다. 산업화의 물결에 휩쓸려 옛 것이 다 사라진 수도 파리와 달리 이 지방은 옛 풍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작가의 취재 여행은 자료나 주인공의 흔적을 찾는 동시에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 여행이다. 자신의 지난 시절에서 출발하여 가족, 지방, 나라의 범위로 확장되면서 더 먼 원천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마지막에 작가가 경매에서 연재소설의 자료를 사들여 뷔쿠아의 모험담을 인용하면서 이 작품은 끝이 난다. 연재가 끝나자 더 이상 자신이 소유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고 희귀본인 이 인쇄물을 국립 도서관에 기증한다. 작가는 이 자료의 소장은 확인했지만 분류상의 문제인지 제대로 자료 정리가 되지 않은 탓인지 국립 도서관에서 구하지 못했다. 고문서 보관소는 물론 아르스날 도서관과 학사원 도서관에서도 뷔쿠아 신부를 찾아내지 못했다. 

 예고한 뷔쿠아 이야기를 찾는 동안 연재소설 작가의 어려운 사정을 갖가지 에피소드를 통해 보여준다. 작가가 역사적인 이야기라고 우기는 안젤리크의 사랑 이야기와 뷔쿠아 신부의 바스티유 탈출 모험담 사이사이에 드라마 대본의 검열 문제, 공연 관련 직업인들의 열악한 노동조건, 인쇄술, 도서관의 비효율적인 행정 체계와 허술한 자료관리, 그리고 무엇보다 자의적인 권력 남용을 다룬다. 특히 작가는 이런 부조리한 현실을 아이러니와 유머를 동원해 비판한다. 

 희귀본 고서 수집가 이야기도 몇 번 나온다. 책을 목숨처럼 지키는 도서관 사서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신이 원하는 희귀본을 구하려는 책 수집가 이야기다. 둘 다 책 수집가인 둘도 없는 친구 사이에 문제의 책을 놓고 실랑이가 벌어진다. 친구의 서재에서 자신이 원하는 책을 보자 수집가는 환장하듯 달려든다. 친구한테 자신이 가진 희귀본에다 제법 웃돈을 얹어 제의하지만 책 주인은 절대 내놓지 않는다. 결국 책 주인이 죽은 다음 경매를 통해 그 책을 손에 넣는다.


 주어진 문헌 정보로는 분명히 있다고 하지만 파리의 몇 개 도서관을 샅샅이 뒤져도 연재소설의 주인공은 좀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뷔쿠아는 감옥 탈출의 귀재답게 작가의 취재망에 좀체 걸려들지 않는다. 그런데 "샅샅이 뒤지다"는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작가는 자료 찾기를 일부러 뒤로 미루는 인상을 풍기기 때문이다. 그 자료를 찾는 날이면 연재소설이 일찍 끝나버리기라도 하듯 자료 발굴을 애써 질질 끈다. 다른 한편 작가는 안젤리크의 사랑 이야기에 열을 올리면서 그 무대를 답사한다. 대신 뷔쿠아 신부의 이야기는 기약 없이 뒷전으로 밀려난다. 그 결과 이야기 전체는 잡다한 일화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곁길로 빠진다. 취재 여행을 보도하면서 작가는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슬그머니 끄집어낸다. 사이사이에 안젤리크의 기구한 삶을 "있는 그대로" 끼워 넣는다. 

 

 "있는 그대로"란 말도 신빙성은 떨어진다. 작가는 안젤리크의 이야기를 원전 그대로 인쇄한다고 하지만 요약도 하고 변형도 시키며 뷔쿠아의 이야기를 재구성하고 왜곡도 한다. 그러는 한편 뷔쿠아 이야기를 곧 하게 될 거라는 예고를 핑계처럼 되풀이한다.

 

 작가의 여행 방식도 문젯거리다. 겉으로는 바쁜 체하지만 실제로는 질러가지 않고 늘 어영부영 에둘러 가는 여정을 택한다. 예컨대 작가는 파리 북쪽 발루아에서 파리로 되돌아오는데 "거리로는 가장 가깝지만 시간으로는 가장 먼 길을 택해 돌아온다". 그리하여 작가의 취재 일기는 파리에서 출발하여 파리 근교 베르사유와 생제르맹 그리고 파리 북쪽의 발루아, 피카르디, 마른 지방까지 지그재그로 이동하면서 구심점 없이 넓혀진다. 지그재그로 이동하는 대표적인 여행자는 [여행일기]의 주인공 몽테뉴 선생님이다. 예를 들어 피렌체는 세 번 거치고 로마는 두 번 들러며 델라빌라 온천장도 두 번 머문다.


 스턴의 [트리스트람 샌디], 디드로의 [숙명론자 자크]와 마찬가지로 [소금 밀매꾼들]도 아야기는 단선적으로 줄거리가 나아가지 않는다. 작가의 취재 여행 일기 사이사이에 그 보다 긴 분량의 안젤리크의 이야기와 뷔쿠아 신부의 바스티유 탈출 모험담을 끼워 넣는다. 여행 일기는 이어지기보다는 더 많이 끊어진다. 인용 형식을 띠는 끼워지는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이어지는가 하면 어느새 작가 자신의 취재 일기가 슬그머니 끼어든다. 제목부터가 벌써 문젯거리다. [소금 밀매꾼들]이란 제목을 붙이고 있지만 정작 소금 밀매꾼에 관련된 내용은 [뷔쿠아 신부의 이야기]의 1장에 잠시 등장할 뿐 후속 편이 없다. 작가가 약속한 뷔쿠아의 이야기가 끊임없이 뒤로 미뤄지듯이 제목 역시 독자의 기대 지평을 저버린다. 그야말로 소설이 아닌 반소설이다. 전제주의의 압제에서 벗어나려는 안젤리크와 뷔쿠아의 반골 정신을 반영하듯 작가도 소설의 규칙을 어기면서 소설을 쓰는 자유로운 글쓰기를 추구한다.


 세상의 모든 이야기가 그렇듯이 청중이나 독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다음번에", "다음 회에" 하는 수법을 쓴다. 네르발의 [동방 여행]에서 카이로나 콘스탄티노플의 카페에서 이야기꾼은 가장 흥미로운 장면에서 이야기를 멈춘다. 우리는 너무나도 유명한 [천일야화]의 화자 세헤라자드가 이야기를 이어가는 수법을 익히 알고 있다. 이야기꾼은 목숨을 걸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한다. 날이 밝으면 세헤라자드의 이야기는 끝난다. 그러면 술탄은 다시 밤까지 이야기를 기다려야 한다. 이야기가 재미없으면 세헤라자드는 목숨을 내놓아야 하고 목숨을 연장하려면 날이 샐 때까지 이야기를 끌고 가야 한다. 이야기 속의 이야기가 끝없이 벗겨지는 양파 껍질처럼 쏟아져 나온다. [소금 밀매꾼들]의 작가는 당국의 검열을 피하면서 [뷔쿠아 신부의 이야기]를 찾을 때까지 자신의 취재 일기와 [안젤리크의 이야기]을 가능한 한 길게 밀고 가야 한다. 벌금도 면하고 독자와의 약속을 어기지 않으면서 연재를 계속해야 작가는 밥벌이를 할 수 있다.


          

[1] 같은 사건을 두고 인물에 따라 다양한 시점을 보여주는 이 기법은 분명 로베르 샬의 기법을 떠올리게 한다.

[2] «Un appel de Vincent Lindon», Mediapart, 6 mai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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