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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샤 pacha Feb 23. 2022

디드로, 아이러니와 해학의 대화술

    자유사상가 디드로


 무려 53년간 무지막지한 절대권력을 휘두른 루이 14세가 물러간 뒤 사회 기강이 느슨해지면서 풍습이 문란해지고 18세기 중반에 이르면 계몽주의라는 이름의 자유사상가들이 대거 등장한다. 이들 덕분에 페스트가 신의 노여움이라는 관점이 이성적이고 과학적인 접근으로 바뀐다. 희한하게도 페스트가 앙시앵 레짐(Ancien Régime : 프랑스에서 중세가 끝나고 왕권이 강화되는 16세기부터 프랑스 대혁명 때까지의 왕정체제로 왕권신수설에 근거한 절대왕권이라는 정치 체제와 성직자와 귀족 계층한테 특권이 인정된 불평등한 사회 체제가 특징이다.)이 종식되면서 물러간다는 사실이다.


 물론 자유사상가들이 쉽게 자리 잡은 것은 절대 아니다. 절대왕권이 약해졌다고 해서 언론출판의 자유를 제한하는 검열이 줄어든 것은 결코 아니었다. 전통 고전주의자들과 치열한 토론과 목숨을 건 투쟁을 통해 자신들의 생각을 어렵사리 표현할 수 있었다. 계몽주의 철학자 가운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단연 디드로이다. 그는 철학적인 성찰은 물론 라모(Jean-Philippe Rameau)와 함께 음악 이론서를 쓰기도 하고 미술비평([살롱 Salons(1761-1781)])을 쓰는가 하면 소설, 콩트, 극작품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두루 글을 남긴 다재다능한 작가이다. 그 사고의 자유분방함으로 기지 넘치는 역설과 날카로운 풍자가 번득이는 해학의 대화술은 지금 읽어도 신선하다. 그가 달랑베르와 함께 주관한 [백과사전](1751-1772)도 반대파의 압력이 드센 나머지 검열을 겨우 피해 해적판처럼 가까스로 출판된다.


 디드로는 검열을 피하기 위해 [숙명론자 자크]를 필사본으로 발행하는 문학 잡지에 1778-1780년 동안 14회에 걸쳐 연재한다. 그 이후 죽기 1년 전 1783년까지 디드로는 90페이지 정도 추가한다. 그런데 독일에서 먼저 1785년 쉴러가 « 라포므레 부인의 이야기 »만 따로 [여자의 복수]라는 제목으로 번역하여 출판한다. 프랑스에서는 1796년에서야 [숙명론자 자크]가 프랑스어판으로 나온다. 이 판본은 오류가 많은 판본이었다. 결국 20세기 중반 생페테르스부르그에 보관된 원고를 참조한 다음 믿을 만한 텍스트가 출판되었다. 디드로가 1760년에 집필한 [수녀]도 작가가 죽고 나서 1796년에 출판된다. 1749년 디드로는 [눈이 보이는 사람들을 위한 맹인들에 관한 편지]라는 철학적 고찰을 출판한다. 이미 위험한 유물론자로 감시를 받고 있던 디드로는 당국의 검열에 걸려 작품은 금서가 되고 작가는 뱅센 감옥의 동종(donjon : 프랑스의 중세 성에서 가운데 위치하는 주로 원통형의 방어용 망루로 최후의 보루이자 통치자의 거처가 위치한다. 근대에 들어와 정치범 감옥으로 많이 이용되었다.)에 3개월 10일 동안 갇힌다. 그의 친구 루소가 수감 중인 디드로를 면회 간다. 루소는 뱅센 감옥으로 가는 길에 "계시"를 받고 아마도 디드로의 도움을 받아 [과학과 예술에 관한 담론]을 쓰기에 이른다. 고된 감옥 생활을 겪고 나서 디드로는 출판에 신중을 기하고 출판을 뒤로 미루거나 유고로 남길 생각도 한다.


 1761-1779년 사이에 쓴 걸로 보이는 [라모의 조카]는 아예 작가가 죽고도 한참 지나 독일에서 먼저 번역 출판된다. [라모의 조카]의 경우는 출판 과정이 훨씬 복잡하다. 살았을 때 출판하지 않은 것은 아마도 작가 자신이 유물론적이고 무신론적인 모럴을 풍자적으로 다룬 작품이라 당대 분위기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특히 디드로는 이 소설에서 자신의 적들을 실명으로 풍자하여 조롱 감으로 만든다. 디드로는 보통 원고를 세 부로 만들었다. 한 부는 러시아의 에카테리나 2세[1] 황제를 위해, 한 부는 자신의 딸을 위해, 또 하나는 자신을 위해. 디드로가 죽은 지 20년이 다 되어 [라모의 조카] 원고를 읽은 한 러시아인이 작품의 가치를 알아보고 쉴러한테 알리게 된다. 쉴러는 괴테한테 이 작품을 소개한다. 괴테가 독일어로 번역하여 1805년에 출판한다. 1821년 괴테의 독일어판이 프랑스어로 번역 출판될 때 발행인은 디드로의 텍스트라고 속인다. 1823년 마침내 디드로의 딸(Mme de Vandeul)이 가진 필사본 원고를 바탕으로 프랑스어판이 출판되지만 몇몇 고유명사가 변경된 상태였다. 마침내 1890년 조르주 몽발이 우연히 센강변의 부키니스트(bouquiniste : 파리 센강변에 자리 잡은 오래된 희귀본을 주로 취급하는 헌책방)한테 한 뭉치로 사들인 문서 속에서 [라모의 조카]의 육필 원고를 발견해낸다. 1891년에 몽발이 이 원고를 바탕으로 [라모의 조카]를 출판한다. 그때부터 디드로의 친필 원고인 이 원고가 기준 텍스트가 된다. 그런데 이 원고도 사라졌다가 1940년대에 미국에서 재발견되어 현재 뉴욕의 « 피어폰트 모건 라이브러리 » 컬렉션에 있다.


          

[1] 프로이센의 프레드리히 2세가 볼테르한테 그렇게 했듯이 1761년 러시아의 에카테리나 2세의 제안으로 디드로는 자신의 장서를 판다. 대신 작가가 죽을 때까지 이용하고 게다가 도서관 관장으로 임명되어 50년간에 해당하는 보수를 미리 받는 호의를 누린다. 디드로는 에카테리나 2세의 초청을 계속 연기하다가 1773년 10월에 생페테르스부르그에 도착하여 5개월 간 머문다.



    반소설, [숙명론자 자크]

디드로, [숙명론자 자크], Flammarion, 1997, [라모의 조카], Gallimard, 1972.


 [숙명론자 자크]는 이렇게 시작된다. 


 "어떻게 그들이 서로 만나게 되었나요? 모든 사람들처럼 우연히. 그들 이름이 뭐였어요? 그게 무슨 상관이죠? 그들은 어디서 오는 중이었어요? 바로 가까운 데서. 어디로 가는 중이었나요? 어디로 향하는지나 알까요? 무슨 말을 하고 있었죠? 주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자크는 자기 중대장이 좋건 나쁘건 이 아래 우리한테 일어나는 모든 일은 저 높은 데서 다 정해놓은 거라고 말하곤 했어요."

 

 디드로는 사실주의적인 효과인 시간과 장소를 일부러 뒤죽박죽으로 만든다. 인물들의 성격이나 행동도 현실에서 보기 힘든 황당무계한 유형들이다. 사건 전개 역시 숨김과 폭로를 통해 터무니없이 펼쳐진다. 이 점 샬한테 분명 한 수 배웠음이 틀림없다. 이야기의 줄거리는 선적으로 이어지지 않고 끊임없이 중단(전체 21개의 서로 다른 이야기 전개에서 180 번)되고 걸핏하면 곁길로 빠져들어 원래 이야기와 또 다른 이야기가 새로 펼쳐진다. 샬의 작품에서처럼 얼핏 보아 관계가 없어 보이는 인물들이 서로 엮이면서 다른 이야기에 다시 등장한다.


 스턴의 말대로 상반되는 것 같지만 "요컨대 내 작품은 곁길로 빠지기도 하고 또 한편 앞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그리고 둘이 동시에 이루어진다". 작가-화자가 끊임없이 독자한테 말을 걸어 수동적인 관객이나 독자가 아니라 소설 공간(대화)에 참여하라고 부추긴다. 이렇게 하여 디드로는 이야기가 그럴 듯하게 전개되는 사실주의적인 효과를 여지없이 무너뜨린다. 예를 들어 자크는 주인한테 여행길의 무료함을 달래주려고 자신의 연애담을 들려주겠다고 약속하지만 끊임없이 딴 이야기로 빠지면서 미루고 미루다가 변죽만 울리고 결국 끝까지 들려주지 않는다. 자크가 탄 말이 말이 한사코 갈 길을 벗어나 처형대로 향하거나 자크가 도적들을 감금시킨 여인숙에 두고 온 시계를 되찾으려 발걸음을 되돌리고 폭우가 내려 여인숙에 발이 묶이거나 하면서 새로운 인물을 만나고 새로운 사건이 생긴다. 이런 식으로 주인과 자크의 여행길이 멈춰지고 곁길로 빠지면서 그 리듬에 맞추어 이야기가 멈춰지고 다시 시작된다. 이야기를 멈추고 다시 시작하는 것은 독자의 기대를 저버림과 동시에 호기심을 유발시키는 장치다. 자크는 자신이 어릴 시절 성적인 체험담을 주로 들려주고 정작 무릎 부상의 간호사로 등장한 드니즈와의 사랑 이야기는 거의 운만 띄운 상태다. 이야기의 마지막에 자크의 주인은 자신의 애인을 가로채어 낳은 아이까지 양육시키게 만든 파렴치한 친구를 결투에서 죽인 다음 홀연히 사라진다. 자크가 주인 대신 샤틀레 감옥에 갇히면서 결국 작가-화자가 자크의 사랑 이야기의 나머지를 보충하여 끝맺는다. 결국 자크의 주인은 친구의 아들을 양육하는 보모의 집 앞에 이르러 배신한 애인과 함께 나타난 친구를 "우연히" 맞닥뜨린 거였다.


 [숙명론자 자크]에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화자가 여럿 등장한다. 어릴 때 조부모 밑에서 자랄 때 "지금까지 있어온 가장 못말리는 수다쟁이"라고 재갈물려 자란 자크 뿐이 아니다. 한편 라모의 조카는 입을 열지 않는 조건으로 귀족 집에서 식사를 제공받는다. 자크와 그의 주인이 머문 여인숙 여주인이나 화자-작가도 이야기에 끼어들지 않으면 입이 간지러워 참지 못한다. 목이 아파 자크가 이야기를 들려줄 수 없게 되자 자크의 주인도 이야기꾼으로 나선다. 심지어 소설의 한가운데 나오는 여인숙 여주인의 이야기(라포므레 부인의 이야기)에서 주인공으로 나오는 데자르시 후작까지 이야기꾼으로 변신하여 자신의 비서와 얽힌 타락한 신부 이야기를 들고 나온다. 


 이야기 속의 이야기는 마치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종잡을 수 없다. 디드로는 [숙명론자 자크]보다 몇 년 앞서 나온 영국 작가 스턴의 [트리스트람 샌디](1760)에서 많은 부분 영감을 받는다. 디드로는 소설의 마지막에 가서 스턴을 모방했다고 밝힌다. 작가-화자는 "이건 소설이 아니다."하고 여러 번 되풀이한다. 일부러 허구적 장치를 분해해서 보여주는 반소설 계보의 대표작이다. 소설이 무엇이고 소설은 현실과 어떤 관계를 맺는가, 누구를 위해 쓰며 어떻게 읽혀져야 하나 이런 문제들을 제기한다. 주인과 하인의 짝을 이루는 인물의 모델은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를 모델로, 단속적이고 우발적인("우연히") 사건의 전개 모델은 스턴한테서, 쾌락주의적 세계관은 [팡타그뤼엘]의 저자 라블레, 친밀한 대화의 모델은 리차드슨 그리고 결정론적인 철학은 스피노자를 모델로 삼았다고 밝힌다. 주객의 역할이 뒤바뀐 ‘나’와 ‘그’, 주인과 자크로 등장하여 ‘그’와 자크가 상대편을 제압하며 기존 사회질서를 아이러니한 수사로 풍자한다. 이 점에서 15세기 말 히에로니무스 보쉬가 종교개혁 직전의 거꾸로 가는 어지러운 사회상을 그린 [미치광이들의 배]를 떠올려 봄직하다.



    해학과 아이러니의 대화술, [라모의 조카]


 괴테의 독일어판이 출판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헤겔은 자신의 [정신현상학]에서 [라모의 조카]에 대한 논평을 한다. 통계 자료를 참조해야겠지만 프랑스 문학사에서 디드로의 [라모의 조카]와 [숙명론자 자크]만큼 많은 연구가들의 비평 대상이 된 작품도 드물 것이다. 물론 20세기 중반에 들어와 생긴 일이다. 그만큼 작품이 새롭고 독창적이라는 뜻이다. 디드로는 비극과 희극으로 양분되던 연극에서 [사생아](1757)라는 극작품을 통해 시대에 부응하는 부르주아 드라마라는 새 장을 열었다. 19세기 초반까지도 디드로의 작품들은 여러 차례 논란을 일으키고 금서가 된다. 1826년 5월 31일 파리의 경범죄 재판소는 출판된 [숙명론자 자크]를 파기시키고 출판인한테는 한 달간 징역형을 선고한다. 그의 다른 소설 [수녀]가 1824년과 1826년, [부주의한 패물]이 1835년에 공중도덕을 해친다는 이유로 검열을 받는다. 디드로는 검열을 피하려고 출판을 늦추기도 하고 [라모의 조카]처럼 아예 유고로 남기기도 한다.

 

 [라모의 조카]는 최고수 체스꾼들이 진을 치는 팔레 루아얄(Palais Royal : 지금의 팔레 루아얄 건물은 1781년에 증축된 것이고 작품에 나오는 팔레 루아얄은 이 건물이 들어서기 전 건물의 정원이다.) 광장의 레장스(Régence : 섭정 오를레앙 공 시절) 카페에서 철학자 ‘나’와 마주친 괴짜 광대 ‘그’의 대화로 구성된 소설이다. 풍자와 해학이 번득이는 아이러니한 철학적인 대화는 도덕, 교육, 음악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라모의 조카(Jean-François Rameau) ‘그’는 기발하고 괴상하며 뻔뻔하면서도 굴육적이며 선동적인 쾌락주의자이다. 천재와 천치, 귀족적 품위와 상놈적 비천함, 현자와 광인 사이를 아무 거리감도 거리낌도 없이 수시로 오가는 모순적이고 복합적인 성격의 라모의 조카는 모델을 찾기 힘든 독특한 인물이다. 이런 천당과 지옥의 중간은 무얼까? 범용인가 중용인가? 윤리라고 하나? 


 매일 오후 다섯 시쯤 팔레 루아얄을 산책하며 자기 자신과 대화하는 철학자인 ‘나’가 묘사한 가난뱅이 괴짜 광대 ‘그’의 면모는 이렇다. 그는 조직적인 사고 능력을 갖추고 희한한 상상력을 발휘하며 특히 입심이 남달리 좋다. 어떤 때 그는 여러 날 굶어 "뺨에 이가 두드러질 만큼" 깡마르고 해쓱하다. 그다음 달에 보면 "부잣집 식탁을 떠난 적이 없는 사람처럼" 포동포동 살쪄 있다. 어떤 때는 "땟국물 나는 속옷과 구멍 뚫린 바지에 누더기를 걸치고 해질 대로 해진 신발을 끌고 고개를 푹 숙인 채 도망치듯 걸어가서 불러 동냥이라도 줄 생각이 든다". 그다음 날 보면 "고데한 머리에 분 바르고 쭉 빼입고 구두를 신고 고개를 들어 나 보란 듯 걸어가서 교양 있는 신사처럼 보인다". 아침에 일어나면 저녁 먹을 걱정하고 저녁 먹고 나면 어디 가서 잠잘까 고민한다. 집주인이 방 빼라고 독촉하지 않으면 누추한 다락방으로 걸어서 들어가거나 서푼이라도 있는 날이면 변두리 선술집에서 흑빵 한 조각에 맥주 한 통으로 밤을 지새운다. 그 서푼도 없을 때면 마부한테 부탁해서 마구간에서 잠을 청한다. 날이 춥지 않은 철이면 밤새 왕비의 산책로나 샹젤리제 거리를 쏘다니다가 날이 새자마자 며칠 째 갈아입지 않은 똑같은 복장으로 얼른 시내에 재깍 나타난다. 


 이런 이중적인 풍모의 그는 디드로를 포함한 계몽주의 철학자뿐 아니라 철학자의 적들까지 여지없이 유머 넘치는 풍자로 조롱하고 비꼰다. ‘그’는 무엇보다 다양한 연기력을 갖춘 다재다능한 광대이다. 그렇지만 어느 분야에서도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는 재주꾼은 또한 아니다. 일단 그는 연기에 몰입하면 정신을 잃고 광기에 사로잡혀 혼자서 춤이며 노래 그리고 오케스트라까지 오페라 전체를 연주 연기 연출해낸다. "마귀 들린 사람처럼 눈을 희번덕이며 입에 거품을 물고 뛰다 멈추다" 하면서 "서로 다른 스무 명 배역"을 너끈히 다 소화해낸다. 연기가 끝나면 기진맥진하여 넋을 잃은 상태에서 제정신을 되찾을 때까지 꼼짝 않고 기다린다. 그는 잠시도 가만있지 않는다. 연설을 하고 몸짓으로 흉내 내고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른다. 그는 이런 정열적이고 왕성한 활동으로 관객을 압도한다. 한 마디로 그는 말로 동작으로 노래로 부당하고 부도덕하며 비인간적인 온 사회를 풍자한다.


 마지막에 그는 음악판이며 연극판에서 이것저것 다 시도해 보았지만 어느 것도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늘 비렁뱅이로 떠도는 기구한 자신의 신세를 털어놓는다. 더욱이 막판에는 길 가면 뭇 남자가 다 훔쳐보고 뒤따라오는 몸매(입이며 손발은 앙증맞고 다리는 가는데 엉덩이는 엄청나다고 몇 번이고 말한다.)와 용모에 매혹적인 목소리까지 갖춘 가수인 부인을 잃은 사연을 고백한다. 그러는 사이 다섯 시 반이 되었다. 수많은 판토마임과 노래와 무용이 어우러진 한 판의 인생 드라마 공연이 30분 만에 끝나다니…! 시간은 상대적이다. 이 경우 같은 시간이라도 세포 분열하듯 무한 증폭된다. 그는 여섯 시에 시작하는 오페라[1]를 보러 가야 한다며 나와 헤어진다. 앞으로 사십 년쯤(죽을 때까지)만 여전히 불행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는 "마지막에 웃는 자가 진정한 승자다." 하고 막을 내린다. 대책 없는 낙관주의인가? 숙명적인 아이러니인가?


          

[1] 1763년 화재로 1770년에 재건되어 1781년에 다시 불타 없어진 팔레 루아얄 극장을 말한다. 생토노레길에서 발루아길로 접어드는 부분에 자리하고 있었다. 글룩이 팔레 루아얄 극장에서 활약하던 시절(1774-1779)로 [올리드의 이피제니 Iphigénie en Aulide](1774), [아르미드 Armide] (1777), [토리드의 이피제니 Iphigénie en Tauride](1779) 등을 작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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