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좋아하는 소 페르디난드》의 주인공 페르디난드는 꽃을 좋아한다. 다른 소들은 힘을 과시하며 투우장의 소로 뽑혀가길 원하지만 페르디난드는 조용히 앉아 코르크 꽃향기를 맡는 것을 즐긴다. 대부분의 소들과는 다른 행동과 선택을 하는 페르디난드는 매력적인 인물이다. 전형적인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즐기는 인물로 다른 사람들의 시선보다 자기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안다. 자기가 원하는 확실한 행복을 추구할 줄 안다. 페르디난드가 자기답게 살면서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게 가능한 이유는 무엇일까?
페드디난드의 엄마는 평소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페르디난드를 걱정한다. 그러나 그가 외롭지 않고 꽃을 바라보며 사는 삶에 만족한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는, 페르디난드를 걱정하지도 않고, 아들의 삶에 더 이상 관여하지도 않는다. 그의 엄마는 페르디난드가 다른 집 소들과 다른 것쯤은 문제로 삼지 않는다. 아들이외롭지는 않은지, 불행하지는 않은지만 걱정한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기 아이가 다른 집 아이보다 뒤처지지는 않는지, 다른 집 아이들과 차이가 나진 않는지 불안해한다. 특히 대한민국의 부모들은 더욱 그렇다. 그런데 이런 부모들과는 달리 자기 아들이 본인이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외롭지도 않고, 행복하다면 아무 문제없다는 태도를 보여주는 페르디난드의 엄마. 덕분에 페르디난드는 꽃을 사랑하는 소로 자랄 수 있었다.
페르디난드는 우연한 사고로 오해를 받아, 투우장의 힘센 소로 명성을 얻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자기가 원하는 삶을 정확히 알고 있었던 그는 타인들의 요구에 절대 굴하지 않고 자기의 행복을 선택한다. 페르디난드는 남들의 시선이나 생각보다 자기 내면의 소리에 집중할 줄 알았기에 행복한 선택을 할 수 있었다. 때문에 페르디난드와 그의 엄마는 지금도 행복하고 앞으로도 행복할 것이 분명해 보인다.
혹자는 페르디난드가 부와 명예를 얻을 기회를 스스로 걷어찼다며 혀를 끌끌 찰 수도 있다. 그런데. 그래서. 부귀영화만을 쫓아 살아가는 사람들은 페르디난드만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자기 삶에 만족하며 살 수 있을까? 자기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숨을 헐떡이며 명예와 부를 쫓다가 만신창이가 되는 사람들이 많다. 행복한 인간은 자기 생긴 대로 살아가는 인간일 것이다. 타인들이 부러워할 만한 화려한 겉모습을 쫓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자아가 원하는 삶을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이다. 이런 삶을 살아가려면 용기가 필요할 수도 있다. 가난하게 살아야 하거나, 비웃음거리가 될 수도 있고, 소수자로 규정되며 힐난과 비난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내면의 소리를 무시하고 자기를 속이며 겉모습만 휘황찬란한 삶을 산다면 우리는 누구도 행복해질 수 없다.
본인이 원하는 삶을 선택했다면 다른 소와 많이 달라도 괜찮고, 소답지 않은 삶을 살아도 괜찮다. 페르디난드가 자기답게 살아가는 것처럼 세상 사람들이 온통 자신답다면 모두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모두가 나답기에 타인을 곁눈질하거나 다른 사람과 나를 저울질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꽃을 좋아하는 소 페르디난드》는 자기 이해를 바탕으로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타인의 기준과 기대 따위 신경 쓰지 않는 것이 행복을 위한 선택이라고 말한다. 남들과는 다른 자녀의 선택도 믿고 지지해 주는 것이 행복한 아이를 키워내는 부모의 역할이라고 일깨워준다. 의사가 꿈인 아이들이 너무 많은 요즘. 이 그림책을 읽고 방향키를 다시 잡아 페르디난드의 엄마처럼 행복한 선택을 하는 부모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