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가 아름다운 동화 같은 ‘길들이기’라면, <도어>는 잔혹한 현실 속 ‘길들이기’에 대한 이야기다. 이 책은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그 시간을 꿋꿋이 살아낸 에메렌츠와 그녀의 고용주였던 화자의 우정과 사랑을 그려내고 있다.
친구가 되고 서로 우정을 나눈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의 속을 어디까지 보여주어야 진정한 친구가 되는 것일까?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서로 다른 에메렌츠와 화자는 쉽게 친해지기 어려웠지만, 화자의 남편이 중병으로 입원하게 되면서 둘의 관계는 조금씩 변화된다. 에메렌츠는 실의에 빠진 화자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기억 깊숙한 곳에 묻어두었던, 두 번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을 것 같은 충격적인 에메렌츠의 사연을 들은 화자는 그녀에게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한다.
“마음의 문을 여는 손잡이는 마음의 안쪽에만 달려 있다”는 독일의 철학자 헤겔의 말처럼 타인과 친구가 되려면 내가 먼저 마음의 문을 열어야만 한다. 나의 마음이 열려 있지 않다면 누구도 나의 안쪽으로 걸어 들어올 수 없는 것이다. 에메렌츠는 자기 이야기를 화자에게 들려주면서 마음의 문을 연다. 그 순간 화자도 마음의 문을 열고, 두 주인공은 그렇게 서로에게 길들여지기 시작한다. 상대를 향한 마음의 문이 하나씩 하나씩 열리고, 그 안에서 화자와 에메렌츠는 행복한 순간과 불행한 순간들을 함께하게 된다.
교양과 지성을 갖추고 고상하게 책을 쓰는 화자와 달리, 전쟁과 혁명의 거친 소용돌이 속에서 노동과 실천의 가치만을 믿게 된 에메렌츠. 고분고분하지 않고 자기 주관이 뚜렷한 그녀. 괴이하면서도 경이로운 에메렌츠와 친구가 되기는 쉽지 않아 보이지만, 둘은 점점 서로에게 의지하게 된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둘이기에 예상대로 삐그덕거리는 날들도 많지만, 크고 작은 사건들을 겪으며 둘은 서로에게 스며들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화자는 위험에 빠진 에메렌츠를 구하기 위해,그녀가 끝까지 열고 싶지 않았던, 누구에게도 열어주지 않았던 문을 열고, 둘의 20년 동안의 우정은 파국을 맞게 된다. 화자가 에메렌츠의 집 문을 열었던 것은 “모래가 빠져나가기 시작”한 에메렌츠를 구하기 위한 선택이었을까? 혼자 남겨질 화자를 위한 선택이었을까? 에메렌츠와 화자의 우정을 위한 현명한 선택은 무엇이었을까? 친구의 숨기고 싶은 비밀을 지켜주는 것과 친구의 죽음을 선택해야 한다면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무엇도 쉽지 않다.
이 책에서 에메렌츠라는 인물을 가장 잘 설명해 주는 장면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장례식이 아닐까 한다. 그녀가 마치 “12명의 자녀를 낳아 그에 걸맞은 자손들이 모두 모인” 것처럼, “공장과 같은 안정된 직장에 다녔던 사람”처럼 그녀를 조문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주도로를 가득 채운다. 게다가 장례를 치른 다음 일요일 예배 시간, 교회는 에메렌츠를 알고 지내던 사람들로 가득 채워진다.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 루터교 신자, 가톨릭 신자, 유대교 신자, 유니테리언 신자”까지 모두 예배에 참석한다.
죽은 후 에메렌츠가 만들어낸 이 광경은 그녀의 선한 삶을 그대로 보여준다. 종교도 사상도 그 무엇도 에메렌츠는 상관없었다. 곤란을 겪고 있거나,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그녀의 눈에 들어온 모두가 에메렌츠의 친구였다. 가장 가혹한 운명을 살아내면서도, 다른 사람들의 무거운 짐까지 짊어지려 했던, 가엾은 아기를 돌보기 위해 자신의 평판은 미련 없이 던져버렸던, 어려움에 빠진 사람들과 아픈 이웃들에게 한없이 너그러웠던, 버려져 더 이상 갈 곳 없는 동물들에게까지 아낌없이 정을 베풀던 에메렌츠. 에메렌츠는 화자에게 슬퍼지지 않으려면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고 충고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녀만의 방식으로 온 힘을 다해, 단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이웃들을 사랑했던 것이다. 배신과 상실을 수없이 경험하고도 에메렌츠는 매번, 또다시, 처음처럼, 타인을 사랑하고 우정을 만들어 갔던 것이다.
이 책은 개성 강한 에메렌츠란 인물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그녀는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를 납득시키는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에메렌츠가 들려주는 숨겨 놓았던 이야기들, 충격에 가까운 비화들을 하나씩 하나씩 연결하며 읽다 보면, 에메렌츠란 인물에 자연스럽게 빠져든다. 또한 문 너머의 비밀에 대한 궁금증과 끝까지 이어지는 화자와 에메렌츠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이 책을 쉽게 내려놓을 수 없게 한다.
《도어》는 헝가리 작가의 번역 책으로, 읽다 보면 번역 소설 특유의 만연체와 어색한 문장들이 자꾸 거슬린다. 그러나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한 번쯤 꼭 읽어보길 바란다. 이 책을 읽으면 독특한 개성을 지닌 힘 있는 주인공을 만나볼 수 있으며, 우정과 배신, 존엄과 수치심에 대한 묵직한 화두를 접할 수 있다. 또한 우리나라 근현대사만큼이나 아픈 역사를 가진 헝가리라는 나라를 만날 수 있다. “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파친코, 이민진)”는 파친코(이민진)의 첫 문장을 헝가리에서도 확인하고 싶다면 이 책을 펼치면 된다.
“에메렌츠를 죽인 것은 나였다. 그녀를 죽이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구원하고자 했다는 말도, 여기서는 그 사실 관계를 바꿀 수 없다.”(P.10)
“누군가에게서 모래가 빠져나가기 시작하면, 그것을 저지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두세요. 죽어가는 그에게 당신은 삶을 대신할 그 어떤 것도 줄 수 없으니까요. 내가 폴레트를 좋아하지 않았다고, 그녀가 삶이 지겨워 떠나고자 했을 때 나와는 상관없는 일로 여겼다고 생각하지요? 하지만 사랑을 위해서는 죽일 수도 있어야 해요. (중략) 나는 폴레트를 좋아했어요. (중략) 아마 내가 그녀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어떻게든 죽음을 저지했을 거예요.”(P.145)
“누구도 죽음에 이를 정도로 사랑하지 말라는 교훈을 당신이 얻었으면 해요. 슬퍼하게 될 거예요. 지금 바로 그렇지 않다면 나중에라도요.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아요. 그렇다면 당신의 그 누군가를 도륙할 일도 없을 것이고, 그 대상 또한 열차에서 어디로 뛰쳐나갈 필요가 없겠지요.”(P.186)
“알아두세요, 인간은 그렇게 쉽게 죽지 않고, 거의 죽을 정도로만 된다는 것을요. 나중에는, 다시 한번 더 바보가 될 수 있다면, 완전한 바보가 될 수 있다면 하고 바랄 정도로 자신이 겪은 것으로 인해 현명해지죠.” (P.208)
“누구도 보지 못했던 것, 내 장례를 치르기까지 앞으로도 볼 수 없는 어떤 것을 지금 당신이 보는 거예요. 하지만 당신의 눈에 가치 있을 만한 다른 것은 내게 없어요. 오늘은 응당한 것 이상으로 내가 당신을 심하게 때렸어요. 그래요. 나에게 그 유일한 것을 보여주겠어요. 어쨌든 나중에 보게 되겠지요. 실제로 당신의 것이니까요.” (P.226)
“그녀는 가스레인지 위 큰 그릇에서 야채 스튜 같은 것을 뜨기 시작했다. 각자에게 맞는 정량을 배분하고, 연신 몸을 굽혔다 펴면서도 그녀의 얼굴에는 미소가 그치지 않았다. 이 있을 법하지 않은 광경은 있을 법하지 않다기보다는 서커스 공연으로 느껴졌다. 이것이 길들이는 것이었다.” (P.232)
“그녀는 눈의 여왕이었으며, 그녀 자신이 확실함 그 자체였다. 여름에는 첫 번째 체리였고, 가을에는 영근 밤, 겨울에는 화톳불에 익힌 호박, 봄에는 관목의 첫 봉오리였다. 에메렌츠는 깨끗했고 논란의 여지없이 우리 누구나가 항상 되고자 했던, 가장 선한 우리 자신의 모습이었다. 영원히 이마를 가리고 있던, 호수의 얼굴을 하고 있던 에메렌츠는 그 누구로부터 그 어떤 것도 청하지 않았다. 누구의 도움도 필요로 하지 않았고, 그녀에게 어떤 짐이 있는지 전 생애에 걸쳐 어떤 말도 하지 않은 채 모두의 짐을 짊어졌다.” (P.282)
“이 파국을 이끈 사람은 당신이에요. 에메렌츠의 그 부끄러움이 무엇인지 당신에게 가르쳐줘야 할까요? 당신은 그 어떤 경우에도 그녀를 보호했어야 했는데도, 깨끗하디 깨끗한 그녀를 그녀의 비밀들과 함께 넘긴 거예요. 왜냐면 그녀에게 당신은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문을 열라는 그 말을 믿을 수 있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에요. 당신은 유다예요. 그녀를 배신한 거예요.” (P.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