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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파랑 Jul 27. 2023

《홀(The Hole)》편혜영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문학과 지성사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출처 알라딘


오기라는 남자가 교통사고를 당한 후 깨어난다. 정신을 차린 오기는 동승했던 아내는 죽고 자기는 전신 마비 상태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홀》은 의사소통을 할 수 없는 주인공 오기의 의식의 흐름에 따라 이야기가 서술되기 때문에 소설을 읽으면 읽을수록 오기에게 감정이 이입된다. 오기가 처한 상황이 점점 더 안타깝게 느껴진다.      


엄청난 불행을 겪은 오기는 삶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재활에 전념한다. 가엾은 오기는 일찍 부모를 여의고 형제도 없기에 퇴원하면서 장모의 보살핌을 받게 된다. 사고에서 혼자 살아남은 오기. 한평생을 하나뿐인 딸만을 위해 살던 장모. 둘의 동거가 시작되며 오기는 차츰차츰 불편해진다. 한 집 살이로 인해 오기가 느끼는 괴로움은 독자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된다.


장모는 경제적인 이유로 병원 진료, 간병인의 돌봄, 물리치료사의 치료도 점점 줄여간다. 도움이 필요한 오기를 모른 체하고, 조금씩 사이비 종교에 빠져드는 장모의 행동으로 오기는 갈수록 불안하다. 괴이한 말과 행동을 일삼는 속을 알 수 없는 장모. 어딘지 섬뜩한 장모의 행동들로 인해 오기는 점점 숨통이 조여 온다. 결국 오기는 어느 날 탈출을 감행한다.      


오기는 기형적인 태도를 보여주는 주변인들 사이에서 자신이 얼마나 힘겹게 그들을 견뎌냈는지 끊임없이 서술하지만 오기 자신도 병적인 인간이다. 아니 오히려 가장 병적일 만큼 모든 문제 상황을 주변인의 탓으로 돌리고 항상 말썽의 원인은 자신이 아니라 상대방에 있다고 생각하는 파렴치한 인물이다. 주변인과 공감하지 못하고 자기중심적이며 이기적인 오기. 이 책은 주인공 오기를 통해 타인에 대한 공감과 이해가 없는 삶은 결국 자신도 파멸시킨다는 깨달음을 준다.     


“깊고 어두운 구멍에 누워 있다고 해서

오기가 아내의 슬픔을 알게 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이 아내를 조금도 달래지 못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아내가 눈물을 거둔 것은 그저 그럴 때가 되어서였지,

더 이상 슬프지 않아서는 아니었다.

오기는 비로소 울었다.

아내의 슬픔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그럴 때가 되어서였다.”     


《홀》은 남자 주인공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오히려 그의 위선과 이기심으로 무너져 내린 여성들의 삶이 더욱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 소설이다. 이 책은 기본적인 의사소통조차 힘든 전신 마비 증상을 가진 주인공의 내면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므로 어딘지 모르게 음산하고 다소 침울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문장이 간결하여 쉽게 읽히고 이야기의 반전이 강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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