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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이 Dec 31. 2023

삶의 한가운데

간추려보는 2023년, 카카오톡 나와의 채팅창 10대 뉴스

순서는 중요도와 무관, 시기별 나열

키워드만 발췌, 아래 글은 설명


1. 영상 링크 쓸 수 없게 되면 내 레퍼런스는?

일주일에 2~3회 방송할 정도로 자주 나를 부르던 플랫폼이 문을 닫았다. 거기서 한 방송만 200여 개 가까이 될 텐데, 플랫폼이 문을 닫으면 2년 간의 내 이력이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망연자실해서 내가 나에게 보낸 카톡. 실제로 한동안은 링크를 가지고 있어도 서버를 닫아놔서 영상을 볼 수 없었고, 정상화가 된 기간에도 하나에 한 시간짜리 영상을 전부 녹화할 수가 없었다. 되는대로 내 이력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방송을 몇몇 찾아서 풀 영상 녹화를 하고, 그 외 몇 개는 짧게 주요 부분만 편집해서 인스타그램에 모아 놓았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내 경력의 증명이 사라지는 것이 불안하기도 했지만, 나와 뜻이 맞았던 동료들과 함께했던 작업물, 그 실체가 없어지는 게 서글프기도 했다. 그래도 그 이후로 수개월을 나는 비어진 포트폴리오로 더 버텼다. 글을 쓰는 지금도, 내가 나와의 채팅창에 모아놨던 링크는 재생이 안 된다. 앞으로도 안 되겠지.


2. 아낌없는 사랑과 믿음으로 저희 두 남매를 키워주신 아버지의 행복한 날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월에 아빠가 61세가 되셨다. 매 년 돌아오는 생신마다 아빠는 선물을 고른 적이 없고, 케이크도 없어도 된다고 모여서 맛있는 거 먹으면 그걸로 된다고 말씀하셨는데 환갑에는 친가 어른들을 집으로 모셔 대접하고 싶다고 하셨다. 아빠의 (내가 기억나는 한) 최초의 선물 지정이었다. 사실 집에 어른들을 모시는 일은 자식들인 나나 동생보다 엄마의 커다란 이벤트였을 것이다. 음식 장만도, 상을 차리는 것도, 잠자리를 마련하는 것도 엄마의 부담이고, 엄마의 계획 하에 우리는 수족이 되어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것 이상으로는 하기 어려우니까. 10인 상을 차리고 치우고 설거지하고, 다과상 차리고 치우고 설거지하고 힘들었지만 아빠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기뻤고, 동시에 이 모든 것을 관장하는 것이 힘에 부칠 엄마가 마음이 쓰였다. 동생과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어른들 술 상에 쓰실 예쁜 잔을 사 온 것, 시끄럽고 화려한 걸 싫어하는 아빠의 마음에 들 케이크와 그 위에 꽂을 작은 토퍼, 다음 날 집으로 돌아가시는 큰 댁 어른들에게 드릴 선물과 그 안에 넣을 작은 편지뿐이었다. 동생이 편지의 문구는 누나가 만들래서 서너 문장으로 편지를 썼는데, 쓰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빠 엄마가 두 분 이서도, 또 각자로도 행복했으면 좋겠다.


3. 잡다하다, 널브러져 있다, 너저분하다, 지저분하다 (커트러리 방송 때)

뽀얗다, 하얗다, 허옇다, 새하얗다, 희다, 창백하다, 화이트, 앰뷸런스 화이트, 아이보리(하얀색 비교)

치킨 먹고 싶을 때 치킨너겟이나 핫바로 안 채워져 (커피 방송 썰)

1시간 동안 말한다고 해이 방송을 한 시간 내내 보는 사람은 나와, 가끔 우리 엄마와, 앞에 있는 스텝들 뿐이다. 나고 드는 사람들은 방송을 틀자마자 클라이맥스 부분이어야 그나마 좀 본다. 물론 그 앞뒤로 약간씩의 맥락은 있어야 상품을 이해하면서 본다. 그래서 결국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어떻게 지루하지 않게 반복할 수 있느냐가 입담이고 능력이다. 소설로 치면 위기-절정-결말 부분을 그럴듯하게 지루하지 않게 반복해야 한다. 색이나 상태를 표현할 때 어떻게든 앞에 안 썼던 단어를 찾아보고, 비슷하지만 약간씩 느낌이 다른 이런저런 형용사를 비교해 본다. 물론 이런저런 썰도 갈아 끼울 스페어를 여러 개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어울리는 일화라면 사돈의 팔촌이 겪은 경험담까지 생각해 낸다.  


4. 질문리스트

해본 적 없는 말하기를 배우고 싶어서 전문가를 만나러 대전에 다녀온 게 4월. 말하는 일들도 전문 분야에 따라 조금씩 다른지라, 경험해 본 적은 당연히 없고 필드에서 지켜본 적도 없는 이 분야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배우고 싶었다. 그래서 질문 리스트를 만들어 갔는데, 선생님은 그동안 수강 전에 대전까지 오겠다고 했던 사람도 없었거니와 하나하나 궁금한 걸 적어놓고 물어보는 사람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모든 질문에 책임질 수 있는 정도로, 과장 없이, 있는 그대로 답해주셨다. 미사여구 없이 일에 대한 이야기만 했는데도 진심이 느껴졌다. 물론 나도 신중하게 생각하고 싶어서 당장 이렇다 할 결정을 내리지도 못했다. 연락을 할 때마다 내가 물어본 부분에 대해서만 답해주셨음에도 점점 더 이건 꼭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6월 말부터 새로운 말하기를 배우기 시작했고, 올해 일 말고는 한 게 없구나, 싶을 때 꺼내보는 소중한 인맥과 수업이 됐다.  


5. 백영옥 애인의 애인에게, 김상욱 교수님 추천 / 김영하 작가 언급 밀란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다시 읽기

다정한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님 팬이다. 학교 다닐 때 실제로 뵐 수 있었다면 참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을 정말 많이 하며(실제로 뵈었다 하더라도 내적으로 꺄아아아아악 밖에 못했겠지만), 쓰신 책, 추천하는 책을 찾아 읽고 출연하신 프로그램들도 종종 본다. 어느 프로그램에서 백영옥 작가의 '애인의 애인에게'라는 작품의 한 구절을 인용하면서 책을 언급했는데, 종이책이 절판되어 아직도 사지 못했다. 전자책보다 종이를 직접 넘기면서 읽고 싶다는 고집을 올 해까지는 유지했는데, 저 작품을 읽고 싶다면 내년에는 전자책의 세계로 어쩔 수 없지만 입문해야 할 것 같다.

 김영하 작가 추천 책들 모 읽는데,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추천작은 아니었고 어느 인터뷰에서 한 구절을 언급했던 것 같다. 이런 때에 인용할만한 그런 멋진 구절이 있었어? 하면서 다시 읽으려고 메모해 뒀다. 그리고 한참 지나 다시 읽었는데, 대학 땐 읽으면서 '대체 이게 무슨 말이야? or 대체 이 사람 왜 이러는 거야?'라는 생각으로 도저히 책장이 넘어가질 않았건만 이번에는 마음으로 이해되는 그 느낌이 신기했다. 몇 년 뒤에 또다시 읽어보겠다.


6. 추상적인 가치를 콘셉트로 잡아도 되는걸까,,,????? (ex> 추억을 다시 경험하세요, **차)

한 개의 브랜드를 여러 번 PT 하게 되면 처음 몇 번은 개꿀이다, 는 생각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상세 스펙이 바뀌지 않으니 공부했던 내용을 되살려 정리하고, 이전에 준비하면서 쥐어짰던 일화, 표현들을 다시 쓰면 된다. 구성이나 가격, 이벤트만 숙지하면 된다고 생각하니 준비시간이 줄어 정말 좋았다. 근데 그 브랜드가 충성고객이 많은 브랜드라면? 매 방송마다 팬심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많다면? 그 사람들이 올 때마다 사고 싶게 해야 한다. 동시에 새로운 사람들한테도 어필해야 한다. 똑같은 얼굴이 똑같은 목소리로 같은 내용을 매 번? 지겨워. 그래서 고민해 본 내용의 혼잣말.


7. 02- ***-**** 안**내선번호 / 042-***-*** 권** 내선번호

개인정보를 위해 숫자와 이름은 가리지만, 지역번호와 성씨 정도는 공개해도 괜찮겠지. 친구들 일하는 사무실에 전화 걸려고 저장해 둔 사무실 내선번호. 실제로는 한 번도 하지 않았고, 아마 앞으로도 하지는 않겠지만 언제 내가 전화할지 모른다는 긴장감을 주는 것만으로도 즐거워. 나도 내 내선번호가 있던 시절, 다른 친구가 미팅 때문에 건물에 들렀다가 나를 찾으려 내 사무실 번호로 전화를 건 적이 있다. '감사합니다, 어디 부서 누굽니다.'라고 받았는데 '어 난데.....' (???3초 무음) 'ㄴ...ㄴ..ㅔ 누구세요?' 하는 나를 두고 몹시 즐거워하던 친구의 음성, 잊히질 않는다. 이제 당연히도 회사에서 중간허리역할로 한 자리 씩 하는 친구들이 수화기를 들고 타성에 젖은 인사말을 할 때, 예상치 못한 혼란을 선사해 줄 상상만으로도 재밌어 죽겠다.


8. 방송인들 숫자 발음까지도 글자대로 발음 ‘심각’ -경기인저널

반인반수처럼, 반쇼호 반아나운서로 살면서 내 언어생태계는 혼란스러워졌다. 친근함과 동질감을 위해, 또 공감을 유도하기 위해 유행어를 쓰기도 하고 일부러 존대어를 생략하거나 편한 표현을 찾아 쓰기도 한다. 혹자는 사투리를 연기하거나 성대모사도 한다. 근데 그러다 보니 점점 방송인의 표준어에서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어느 날 방송을 하는데, '필름 10매 증정'이라는 글자를 말로 풀어 설명하는 중에 '필름 십 매를 드릴게요.' 하니 함께 진행하는 사람이 풋 웃었다. 십 매? 말해놓고 보니 듣기 좀 이상하긴 한데, 방송 중에 저렇게 비웃음을 흘리면 어떡해,라는 생각도 잠시, 금세 방송은 끝났고 돌아오는 길에 또 생각이 나서 찾아보다가 수량 단위를 발음할 때 헷갈리는 것들을 잘 모아둔 기사가 있어서 보관해 놨다. 결론은 매->장으로 순화해서 '열 장'으로 발음해야 듣는 사람도 말하는 사람도 편하다. 가만 생각해 보면 구어체에서 당연한 건데, 순간 글자를 보면서 말하려니 생각이 안 났던 모양이다. 다른 사람 앞에 서서 말할 때는 표준어를 토대로 말하고, 친근함을 방패 삼아 속된 말, 잘못된 표현을 쓰지 않도록 스스로 노력하기로 다짐.


9. 본인만의 카렌시아?

면접 준비를 할 때, 기출문제로 만난 질문. 기출문제들을 쭉 나만의 채팅창에 붙여놓고 이동시간마다 답변을 생각하며 다듬었다. 질문 보자마자 든 생각: 잠깐만, 카렌시아가... 뭐야....? (혼란) 나만 몰라??... 진심 저 질문을 면접관이 나한테 했다고 생각하니까 땀이 난다. 질문 자체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요. 그래서 황급히 초록창에 검색했는데 제일 먼저 보이는 단어가 '제주도 카렌시아', '제부도 카렌시아'. 아파트 이름인 것 같은데요. (더 혼란) 다행히 좀 더 내리니 뜻이 나왔다. (편안) 카렌시아는 스페인에서 '안식처'라는 뜻으로 쓰이는 단어라고 한다. 사전적 의미가 아니라 관용적으로 쓰는 말인가 보군. 투우 경기장에서 투우사와 마지막 결전을 앞둔 소가 잠시 쉬는 곳을 일컫는 말. 그럼 면접 질문은 '당신만의 휴식처가 있다면?'이었는데, 저런 가벼운 인성질문은 좀 더 알아듣기 쉽고 편하게 해 주시면 안 될까요. 카렌시아 저만 몰랐던 거면 할 말이 없네요. (쭈굴) 물론 저 질문은 내 면접에서는 나오지 않았다. 나만의 카렌시아가 무엇인지는 면접용 피상적인 답변을 준비하긴 했는데, 제대로 생각해 보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  


10. 풍속사 디오라마 전시관 더 줄이자ㅡ 핵심적인 두 점은 보존을 해서 전시를 하고 나머지 모형들은 **시와 협의해서 **역이나 기타 공간을 활용해서 전시하겠다

전시와 관련한 입찰 PT를 했다. 전시관이 마침 문학관이기도 했고, 기획자의 기획방향이 서정적이고 감성적인 부분에 중점을 둔지라 준비하면서 공부할수록, 발표 내용을 머릿속에 집어넣을수록 점점 더 잘 표현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굳이 찾아 복수 전공하는 동안 문학관의 주인공인 작가의 작품을 읽지 못했다. 그렇게 많은 고전문학과 현대문학을 자/타의로 읽어내면서 왜 이 작품은 읽어두지 못했을까? 학생 때 읽어뒀다면 서평이나 리포트가 남아있을 수도 있고, 운이 좋았으면 과제로 비평론 같은 것을 써뒀을 수도 있는데, 그랬다면 이번 발표에서 작가의 서정성, 그 특징을 구현해내고자 하는 기획자의 의도를 훨씬 더 내 말로 잘 풀어낼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10권의 장편소설이라 주춤;; 그때도 읽기 쉽진 않았겠다 싶긴 한데 아무튼 끊임없이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은 자꾸 내 안에서 아쉬운 점을 긁어낸다. 아마도 황급히 수정해야 하는 멘트를 나만의 채팅창에 적어놨던 것 같음. 살인적인 3일 밤샘 스케줄과 멘붕의 7차 수정본은 든든한 내실이 되었다고 믿으며 서술 생략.



(번외)

약점이라고 해서 꼭 제거해야 되는 건 아니죠.

강점은 자신을 타인에게 각인시키는 방법이고 약점은 자신을 타인에게 사랑받게 하는 방법이니까, 숨기지 말고 잘 드러내면 사람들의 환호를 받을 수 있죠. - 대행사 11화

3월에 이보영 배우 주연의 대행사라는 드라마를 몰아보기로 이틀 만에 봤는데 기억나는 구절을 적어뒀나 보다. 그 어떤 일이 됐든 남 앞에 서서 뭔가를 하면 어떤 식으로든 내가 드러나게 된다. 매력이든 흠이든. 내가 원하는 모습을 원하는 만큼 내보이는 단계는 아무나 도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아 이건 안 해야지~' 해도 나도 모르는 새 하고 있고, '이거 꼭 보여줘야지'해도 눈 깜빡하면 끝나 있다. 몇 백 번 해 봐도 의식하고 고치려고 들어야 아주 천천히 달라진다. '잘' 드러내기, 정말 어렵다.


(번외 2)

아침 출근길 지하철 사람들 표정 / 어젠 어제여서 힘들었고 오늘은 오늘이어서 힘들고 내일도 힘들 예정이고..../ 제가 해보겠습니다!!->제가요..? 이걸요....?/ 버티자 버티는 거야 버티면 다 되는 거야~ / 장어, 소고기, 굴 매일은 못 먹어/ 힘의 상징, 힘없어, 힘들어, 집에 가고 싶다, 눕고 싶다, 쉬고 싶다

어떤 상품 방송 준비하면서 생각나서 끄적였던 공감멘트들. 위의 사람이 팔려고 한 상품은 무엇일까요.. 힌트는 건강기능식품입니다.




제목은 올해 아직 다 못 읽고 내년으로 넘기게 된

루이제 린저의 소설 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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