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함께 일하는 스텝들과 연말이라고 어렵게 시간을 맞춰 (나답지 않게) 회식을 했다. 비바람이 미친 기세의 날이었는데 다행히도 막차시간에 맞춰 (나답게) 자리를 파하고 지하철에 탔다. 막차라 2개의 환승지에서 잠깐의 머뭇거림도 허용할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화장실이... 결국 중간에 내려서 화장실에 갔다가 집이랑 최대한 가까워지는 종착역까지 가서 택시탑승. 역시 술자리 끝에는 할증택시지.(나다운 게 뭔데) 미친 듯이 올라가는 미터기 숫자만 무시하면 비 오는 야밤에 차 없는 도로를 내달리니 몸도 편하고 참 좋았다. 기사님이 틀어 놓은 라디오에서 내가 예전에 심야 프로그램하면 새벽에 틀고 싶었던 촉촉한 노래의 끝자락이 흘렀다. 오랜만에 듣고 싶어서 유튜브에서 제목을 검색했는데, 얼마 전 노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이 노래를 부른 참가자가 있다는 알고리즘의 추천으로 원곡이 아닌 49호 참가자의 버전을 듣게 되는데. 49호 버전은 해리포터에 나오는 마법사의 돌처럼 지나간 누군가를 소환하는 힘이 있었다. (49호 참가자 슈퍼스타가 되실 그날까지 조용히 응원합니다.)
어떤 말은 이유 없이 때때로 떠오른다. 떠오를 때마다 자꾸 생각나는 이유를 찾으려고 애써봤지만 정말 마땅한 이유가 없다. '양치질할 때 물로 네 번은 헹궈야 된대. 새로운 물로 우물우물 네 번.' 양치질할 때 진짜 뜬금없이 가끔 생각난다. 홍시가 홍시 맛이 나서 홍시라고 한 건데..처럼 이유를 찾으려고 하는 게 이상한 걸까? 사실 네 번 헹구라는 횟수에 근거도 없고 사실인지 알 길도 없다. 그 사람도 별생각 없이 말했겠지. 이제 내가 궁금한 건 그 사람의 안부 같은 게 아니라 이게 왜 이렇게 오래 생각나는지, 뭐 때문에 살아남은 기억이 됐는지, 그 이유다.
사람이 떠나면 그 사람이 채우고 있던 무게만큼 내 존재가 가벼워지는 것 같다,는 생각을 몇 해 전 친구의 전화번호가 갑자기 바뀌었을 때 했었다. 몇 년 공부한다고 얼굴을 못 본 친구였는데 메신저 프로필 사진으로 생사(?)를 확인만 하면서 일 년에 한 번쯤 안부만 물어오던 참이었다. 어느 날 친구의 프로필 사진이 생면부지 어르신의 얼굴로 바뀐 것을 확인했을 때 순간 가슴이 달뜨는 것 같았다. 함께 어울리던 친구들도 근황을 모르고, 집 주소는 당연히 모르고, SNS도 하지 않는 친군데 없어졌다! 최근 그때 썼던 일기를 다시 봤는데 '아직 돌아오지 않은 건지, 이제 돌아오지 않는 건지 모르겠다. 확실한 건 잘 지내냐고 물을 수 없다는 것, 언제까지일지도.'라고 적혀있다. 반년 뒤쯤 바뀌지 않은 내 번호로 친구가 먼저 연락을 해왔다. 물론 지금은 언제든 연락이 닿는다. 회사 이름도 안다. 이 얘기를 했을 때 친구는 웃으면서 그렇게 생각할 줄 몰랐다고 미안하다고 말했던 것 같다. 이제 갑자기 말없이 사라지지 않기로 얘기도 했다. 살아오면서 때로 가깝게 지내던 사라진 사람들을 생각하면 그 친구가 다시 닿는 곳으로 돌아온 게 얼마나 기쁜 일인지. 물론 그 친구에게 말하지는 못했고 지금도 자주는 못 본다.
입이 점점 무거워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10년 전에는 하루를 보내고 기숙사에 들어가면 별 것도 아닌 떠들거리가 무궁무진했었다. 집, 차, 직장얘기는 확실히 아니었고, 날이 갈수록 현저히 떨어지는 체력에 도움이 되는 운동이나 건강기능식품, 재테크 등과 같은 정보교환성 내용도 아니었던 것 같다. 지금보다 훨씬 얕고 순수한 수준의 뒷담화였거나 사랑하는 우리 오빠 근황(아이돌), 관심 있는 이성(혹은 그런 존재를 만들기 위한 미팅 소개팅썰)이 늘 넘쳐났다. 말하면 말할수록 웃기고 즐겁고 스트레스가 풀리는 수다주제를 이제는 찾기 힘들어진 것 같아서 씁쓸하다. 누구와 만나도 쉽게 말할 수 있는 주제를 찾는데 신중해진다고나 할까. 자주 만나기 힘드니 그 사람의 근황을 상세히 모르고, 마음으로 가깝게 느끼는 사람이라도 사정을 속속들이 알 수 없다. 아주 힘들거나 크게 기쁜 기색이 드러나지 않는 근황얘기를 좀 하다가 몇 시간이 지나서 이제 입 좀 풀렸다 싶으면 아쉬움을 뒤로한 채 조만간 또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헤어지게 된다. 바로 다시 보자고 말하지만 시간을 맞춰 만나려면 한 분기 정도는 걸릴 테지. 가끔은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두 한 마을에 모여 살면 좋겠다. 그래서 연말이라는 명분으로 어느 정도의 강제성을 가지고 모이는 요즘의 자리가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제목은 윤상의 노래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