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르는 온갖 상념들을
어찌 표현해야 할지 몰라
연필만 쪼물락 거리다
백지가 되었습니다
이런저런 말들을 늘어놓다
어떻게 받아들일지 몰라
주저리주저리 다 헛 말이 되어
백지로 비웁니다
쓰다 지우다 고치던 글들이
눈에 안 들어와
열흘밤낮으로 파지만 쌓다가
백지로 보냅니다
마음을 전하는 게 이렇게 어려운데
받는 이는 얼마나 무거울까
하얀 여백으로 보내는 무게를
백지로 채웁니다
봉투를 열고 펼친 편지가
겉봉 주소글이 전부라
텅 빈 공백에서 다시 허망하게 될까 봐
백지를 백지화합니다
허공에 점찍듯
바람에 햇볕에 맡기기는 비겁한 외면 같아
한 점도 채우지 못하고 또 날이 새어
백지만 남습니다
아무 말 없이 곁에 있음이
건네는 커피의 온기로
하늘을 올려다보는 용기로 채워질
백지라서 비워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