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둘이 사는 이야기 9
지난 주말에는 조슈아가 친구를 만나고 들어왔다. 원래는 나도 함께 가려던 모임이었지만, 여러모로 불편하고 피곤한 마음이 들어 너만 다녀오라고 했다. 날 좋은 주말, 서울에서 각자 다른 길을 가려니 뭔가 이상하다며 너는 아쉬워했지만, 나는 저녁부터 네가 들어올 늦은 밤까지 나만의 시간을 보낼 생각에 어쩌면 조금 들떠 있었다.
혼자서는 쳐다도 안 보는 예능도 함께 있으면 하루 종일 몰아볼 수 있고, 몇 시간을 서서 한 주 동안 먹을 채소를 다듬어도 지치지 않을 만큼 조슈아와 함께 하는 모든 시간은 즐겁다. 혼자만의 시간이 부족하냐 하면, 조슈아가 퇴근해 집에 오는 8, 9시까지는 언제나 나 혼자 있으니 절대 그렇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슈아가 놀러 나가고 내가 혼자 있는 시간은 왜인지 설렌다. 혼자 자취할 때 느끼던 외로움이나 혼자 맥주를 홀짝이며 푹 빠지던 쓸쓸함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인지 모른다.
혼자 살 때에는 술을 정말 많이 마셨다.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자유를 만끽하고자 그랬던 것 같다. 어느 순간부터는 술자리의 들뜬 분위기나 술에 취해 모든 것을 잊을 수 있는 그 감각, 취한 사람들끼리의 의미 없는 대화나 뜬금없는 눈물과 웃음 말고는 다른 것에 쉽게 집중하지 못해서였던 것 같기도 하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도를 넘은 과음을 했다. 다음 날 학교에 출근해서는 포카리스웨트를 큰 통으로 옆에 두고 엎드려 있거나, 교수님과의 랩미팅에서 뛰쳐 나가 구토를 하기도 했다. 학교에서 버스로 30분쯤 떨어진 곳에서 살게 된 이후에는 혼자 술을 마셨다. 다음 날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과음하는 빈도는 줄었지만 나를 멈추지 못하는 건 더 심해졌다. 토익 전날 혼자 맥주를 마시다가 완전히 취해 버려서 다음 날 LC 시간에 졸기도 했다. 술 때문에 몸이 아파지면 다시는 술을 안 먹겠다고 다짐을 하고는, 몸이 조금만 나아지면 다시 편의점에서 맥주를 무더기로 사들였다.
정말 혼자라는 생각이 들었던 건 조슈아가 조금 멀리 떨어져 있을 때였다.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일하는 조슈아에게 투정을 부리는 것도 한두 번이라는 생각도 들었고, 매일 밤을 새 가며 리포트나 논문을 쓰는 친구들에게 징징대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 날이면 나는 혼자 해리포터 시리즈나 조용한 일본 영화, 혹은 어두운 독립영화를 틀어놓고 술을 마셨다.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시간이었다. 조금 더 에너지가 있을 때는 책을 읽으며 술을 마시기도 했다. 술집에 가지도 않고, 시끌벅적한 친구들도 없는 혼자만의 술자리였지만, 다른 일을 할 때 문득문득 떠오르는 나에 대한 고뇌라거나 미래에 대한 불안 등은 잊고 내가 보고 있는 영화와 책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사랑스러운 장면이나 아름다운 문장을 마주쳤을 때 지금 당장 그 감동을 나눌 수 없는 사람이 옆에 없는 건 아쉬웠지만 그런 대로 참을 만한 고독이었다. 하지만 그러다가 또 내 주량을 넘어서면 영화도 끄고, 책도 덮고, 혼자 멍하니 있다가 울기도 했다.
함께 살고 처음으로 조슈아가 늦게 들어온 날, 잠시 무엇을 해야 할지 망설였다. 뭐 별다를 게 있나 싶어 평소처럼 혼자 저녁을 해먹다가 맥주를 한 캔 땄다. 수북하게 쌓여 있던 파스타가 줄어들고, 맥주 한 캔을 다 마셨을 때쯤 옛 기억이 새록새록 솟아났다. 어려운 자리에 간 터라 조슈아는 연락을 자주 하지 못 했고, 나는 마치 혼자 살 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참에 먹던 음식을 대충 치우고 팝콘을 튀겨 새 맥주캔을 들고 방으로 들어와 몇 번을 봤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영화를 틀었다. 편안한 자세를 찾고자 몇 번씩 몸을 뒤척이고 나서는 핸드폰에 새로운 게임을 다운로드 받아 플레이했다. 익숙한 영화 대사가 귀에 은은히 들려오고 손가락은 끊임없이 핸드폰 액정을 누르다가 가끔 맥주를 마시고 팝콘을 먹었다. 가끔씩 오는 조슈아의 메시지나 늦어서 미안하다는 전화에는 걱정 말고 좋은 시간 보내고 오라고 대답해주며 시간을 보냈다. 세 번째 영화가 중반쯤을 넘어서고, 핸드폰에 꽂아 두었던 보조배터리마저 꺼져버리고, 손가락이 저려오기 시작하니 조슈아가 이제 택시를 탔다고 했다. 시간을 보니 새벽 3시 30분. 적당한 시간이 되면 치우고 먼저 자고 있으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조슈아를 새벽까지 기다린 꼴이 되었다. 술이 완전히 되어 버린 조슈아를 재우고 나도 옆에 누웠을 때, 조금 외롭고 쓸쓸하지만 우울하지는 않은, 좋은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했다.
이후로도 조슈아가 늦는 날이면 나는 처음부터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시켜놓고 맥주를 넉넉히 사다둔다. 막차 전에 오겠다며 12시도 되지 않아 출발한다는 연락이 오면 왠지 아쉽기도 하다. 아직 영화가 안 끝났는데, 보려던 책을 펴보지도 못했는데, 맥주가 많이 남았는데. 그렇게 짧게 씹은 고독의 맛을 치우고 조슈아가 오면 네가 없는 동안 내가 어떤 영화를 봤고, 맥주를 얼마나 많이 마셨고, 너 없이 먹은 저녁이 얼마나 맛있었는지, 들떠서 자랑하듯 떠들어댄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네가 먼저 잠들면 네 옆에 누워서 생각한다. 내가 주량을 넘기도록 술을 마셔도 더 이상 울지 않는 것은 내가 혼자 잠시 외롭고 쓸쓸해도 오늘 결국 네가 내 옆에서 이렇게 잠들 거란 걸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이제 마음 놓고 나의 시간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