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둘이 사는 이야기 3
요 몇 주간 조슈아가 바빠지면서 혼자 먼저 잠자리에 드는 날이 있었다. 전에 없이 추운 밤이었다.
뭐, 허전하다거나, 혼자 자려니 마음이 안 좋아 괜히 스산한 기분이 드는 것이 아니었다. 정말로, 물리적으로, "추웠다". 자는 동안 추위를 많이 타지 않는 편이지만, 이불을 목끝까지 덮고 수면양말을 신고 몸을 한껏 웅크려도 으슬으슬한 한기가 올라왔다. 오한에 예민해지는 요즘인지라, 침대에서 혼자 자는 밤이면 누웠다가도 일어나 체온을 재고 다시 눕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가끔 술에 취했거나 피로가 쌓여 먼저 잠든 조슈아가 큰소리로 코를 골 때면 차마 옆에서 잠들 수가 없어 작은 방에 이불을 깔고 혼자 자기도 했는데, 그 때는 전혀 느끼지 못 했던 추위였다.
그러고 보니, 이사한 후 바람이 점점 차가워지자 조슈아가 내 이불을 빼앗아 가던 것이 기억난다. 답답하지도 않은지 위에는 발열내복에 스웨트셔츠를, 밑에는 기모 트레이닝복을 껴입고 자는데도, 아침에 "어제 잘 잤어?" 하고 물으면 "추워서 몇 번 깼어." 라고 대답하는 게 이해가 안 됐다. 나는 한 번 뒤척거리면 종아리까지 기어올라오는 헐렁한 수면바지에 반팔티 하나 입고서도 이불을 걷어차고 자는데 말이다. 보일러 온도를 평소보다 올려도 새벽의 한기는 계속 조슈아를 깨웠다.
문제는 외풍이었다. 나보다도 나이가 많은 낡은 빌라의 얇은 벽은 영하로 떨어진 바깥 공기를 충분히 막아주지 못했다. 햇빛이 잔뜩 들어와 기뻐했던 큰 창은 그 크기만큼 차가운 바람을 방 안으로 들여보냈다. 한창 봄에 이사를 와 신을 내며 샀던 꽃무늬 커튼도 한기를 걸러주기에는 너무 얇았다. 거기에 날이 추워지면 두꺼운 암막커튼을 사겠다고 노래를 불러놓고 겨울을 다 보내버린 나의 게으름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창문 쪽에 누워 자는 조슈아가 그 동안 그 벽면으로 들어오는 온갖 찬 기운을 다 맞고 있었나보다. 그러면 옆에서 자는 나는 왜 전혀 춥지가 않았는고, 생각해보니 조슈아가 모로 누워 잔 덕분이었다. 키도 나보다 30cm쯤 더 크고 몸통도 나의 1.5배쯤 되니, 그가 몸을 옆으로 세워 눕고 내가 그 옆에 똑바로 누우면 벽에서 들어오는 공기가 원천차단 되는 것이다. 게다가 추위를 많이 타는 주제에 체질적으로 몸에 열은 많아, 조슈아 옆에 누워있으면 그의 몸에서 나오는 후끈후끈한 열기가 보일러가 타는 온돌 바닥 못지 않다. 그 덕에 나는 반팔을 입고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덥다고 투덜거리고, 조슈아는 꽁꽁 싸맨 채로 춥다고 하소연을 했던 것이다.
결혼한 지 몇 달 되지도 않아 신랑을 동사(凍死)시킬 수는 없으니 날이 더 추워지기 전에 뭐라도 해야 했다. 전셋집임에도 신혼집이랍시고 내 돈을 들여 도배를 한 벽지에 차마 방한 시트지를 붙이기엔 선뜻 손이 나가지 않았다. 급한대로 다이소에서 방한용 뽁뽁이를 사다가 창문에 붙였다. 예전 자취방들에서 내가 그 뽁뽁이를 붙이면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자꾸 너덜너덜 떨어져 그냥 뜯어 버렸었는데, 조슈아가 꼼꼼히 붙이니 몇 주째 잘 붙어있는 게 또 새삼 신기했다. 창문을 가리고 하루이틀쯤은 "덜 추운 게 맞나? 기분 탓인가?" 라며 의심하던 조슈아가 며칠 더 지나니 확실히 밤에 추워서 깨지 않는다며 기뻐했다. 나는 언제나 그렇듯이 춥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가 보다, 했는데 말이다.
그런데 조슈아가 없이 혼자 침대에 누워 있으려니, 이제 춥지 않다는 조슈아의 말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한기가 몰려왔다! 잠자리에서는 조슈아가 나보다 추위를 더 탄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던 것일까? 조슈아를 따라 양말을 신고 긴팔 티셔츠를 입고 보일러 온도를 올려도 몸이 덜덜 떨리는 추위는 가시지 않았다. 뽁뽁이를 붙이기 전에도, 붙인 후에도, 나는 그저 조슈아의 열기에 몸을 녹이며 잠들었나 보다. 추워서 잠을 못 자겠다고, 밤새 일하는 사람을 불러다가 옆에 뉘일 수도 없으니 속수무책이다.
분명 혼자 잠자리에 드는 게 그렇게 미안하거나 한 건 아닌데 (바쁘지 않으면 한 달에 20일 정도는 조슈아가 먼저 누워 코를 곤다). 함께 누우면 꼭 맞아 뒤척이기도 어려운 침대를 혼자 넓게 쓸 수 있으니 엄청 허전한 것도 아닌데. 조슈아가 없이 잠들기 어렵다는 사실이 공연히 간지럽기도 하고 속이 빈 것 같기도 하고. 그 생각을 하니 괜히 얼굴에 조슈아의 몸에서 나오는 것 같은 열기가 올라오기도 하고. 그 열기로 잠이 들 것도 같다. 그리고 내 온몸을 떨게 만드는 한기를 다시 가져간다면 그의 코골이도 어느 정도는 참아줄 용의가 생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