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안의 계절, 그 안에서 버티는 사람들

by 하늘해


대행사의 업무는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나뉜다.

기존 광고주를 위한 “실행”과 신규 광고주를 확보하기 위한 “제안”


보통 본부나 팀 단위로 광고주들이 배정되어 있지만, 가장 난감한 상황은 기존 광고주 없이 오로지 제안만 해야 하는 상황이다. 신규 팀이거나, 재계약이 되지 않은 경우가 그렇다. 광고주 없는 대행사 팀은 제안이 일상이고, 수주가 안 되면 해체 수순으로 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회사 입장에선 인건비만 나가는 구성원을 오래 두기 어렵다.

그래서 팀장, 팀원 1~2명으로 꾸려진 팀이 매출 없이 제안만 계속하다 보면, 내부적으로도 상당히 눈치 보는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반대로, 이미 기존 광고주의 실행이 많은 상태에서 신규 제안까지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팀이 잘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고, 제안이 중요한 상황이라 참여가 불가피한 경우인데, 이때는 실무진 입장에서는 짜증부터 난다. 기존 업무 마치고 야근하면서 제안을 함께 만들어야 하니까.


이때부터 제안은 팀장이 끌고 나가는 구조가 되면서 팀장의 리더십이 중요하다. 실행은 실행대로 제안은 제안대로 순항해야 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경우엔 제안해서 떨어져도 부담이 덜하다. 된다면 더욱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제안 시즌은 보통 연말연초다. 재계약이 끝나고, 새로운 해를 앞두고, 브랜드가 새로운 대행사를 고민하는 시점. 참여할 기회는 있지만, 결국 1등만 살아남는다. 더 속상한 건, 그런 요청조차 안 들어오는 경우다. 신규 대행사 거나 규모가 작은 대행사는 수주 여부를 떠나 우선 제안 기회 자체를 얻기 위해 영업이 필요하다. 큰 대행사의 제안에 일부 참여하거나, 회사 자체 브랜딩을 위한 마케팅 콘텐츠를 만들고 알리는 활동도 병행하게 된다.


제안을 만들 때, 말 그대로 내부 인력의 아이디어와 기획력을 끌어모아 문서를 만들지만, 인건비 외에도 실제로 꽤 많은 제작비가 들어간다. 특히 영상 크리에이티브를 넣는 경우엔 천 단위 제작비가 들기도 한다. 요즘은 이미지로 보여주는 것을 넘어서, 제안하는 광고 모델 얼굴까지 합성된 영상이 등장한다. 그런 영상은 광고주에게도 훨씬 설득력 있게 다가가니까.


이 영상들, 거의 대부분 대행사가 비용을 부담한다.

수주에 실패하면? 그대로 손해로 돌아온다.


그래서 제안이 들어왔더라도, 참여 여부는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단순히 시간만 드는 게 아니라, 제작비까지 드니까 성사 가능성은 있는지, 이미 경쟁사가 유리한 위치에 있는 건 아닌지, 해당 브랜드 담당자와의 연결선이 있을지… 긴밀하지만 정확한 정보 수집이 먼저다. 하지만 이 역시 확실하지 않다.


그래서 가끔은 마음 비우고 “경험 쌓자”는 마음으로 들어갔는데, 오히려 수주가 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제안 자체가 고민과 운의 영역이 되기도 한다.


수주가 확정되면 가장 먼저 드는 감정은 안도감. 진짜 마음 졸이며 버텨온 긴장감에서 잠시 풀려나는 느낌이다. 그리고 이 캠페인으로 연이 닿아 오랫동안 파트너십이 지속된다면 그건 정말 이상적인 흐름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매년 새롭게 제안하고, 새로운 광고주를 찾아야 하는 일이 반복된다.




대행사에 처음 입사했을 때, 팀이 광고주를 수주하자 회사 전체가 함께 축하해 줬던 분위기가 낯설기도 하고 신기했다. 그때는 왜 그렇게까지 기뻐하나 싶었는데, 지금은 알겠다. 정말 어려운 미션을 해낸 거라는 걸.


크게 참여했든 작게 참여했든, 제안을 위해 애쓴 모든 사람들이 박수를 받아야 마땅하다. 그런 마음을 광고주 쪽에서도 알아줬으면 하지만, 나도 브랜드에 있을 땐 몰랐다.


결국, 겪어봐야 알게 되는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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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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