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광고회사에 들어갔을 때, 낯설지만 즐거웠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전에 다니던 회사들은 연령대의 폭이 그리 넓지 않았던, 스타트업 같은 조직이 많았다.
광고회사에서 일하면서 좋았던 건, 같은 아젠다를 두고 세대나 직급에 관계없이 모여 서로의 생각을 꺼내고, 결국 하나의 캠페인 전략으로 모아보는 그 과정이었다. 20대부터 50대까지 자신만의 생각들을 진지하게 꺼내놓으며 모두에게 공감을 얻고자 노력하는 과정이었다. 누구 한 사람의 생각만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라, 서로의 아이디어가 충돌하고 섞이면서 만들어지는 흐름이 좋았다.
전략에 맞춰, 함축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캠페인 테마를 선정하고 나면 제작팀은 그에 맞는 다양한 크리에이티브를 준비하고, 기획팀은 전략의 설득력을 높일 수 있도록 인사이트를 정리한다. 프로모션이나 인플루언서 아이디어도 함께 제시한다. 미디어팀은 이 모든 기획과 제작물을, 한정된 예산 안에서 최대한의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데이터 기반의 매체 전략으로 풀어낸다. 같이 모여 의논하다가도, 각자의 자리에서 전문성을 갖고 조용히 준비한다. 이 모든 과정이 하나의 제안서에 함축되고 다져진다. 사실 이렇게 여러 팀들이 나눠져서 세팅되어 있는 광고회사도 생각보다 많지 않다. 작은 회사일수록 소수의 인원이 협력사의 도움을 받아 다 해결해야 한다.
나는 이 과정이 하나의 앨범을 준비하는 일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앨범 기획자, 연주자, 엔지니어가 모여 하나의 음악을 완성해 가는 과정처럼. 제안 날짜가 다가오는데도 굵직한 테마나 아이디어가 애매하게 남아 있으면 다시 모여 방향을 정하고, 제안 당일 아침까지 벼락치기를 하기도 한다.
광고 제안의 흐름은 워라밸이나 일반적인 직장인의 루틴과는 좀 다른 리듬을 가진다. 결국 ‘제안서 완성’이라는 목표를 향해 가기 때문에 시간과 장소를 초월하게 된다. 밤을 새워 마무리한 제안서를 메일로 전송하던 날 언제 그랬냐는 듯 새로운 아침을 맞아 출근한 타 팀 직원들을 보게 된다. 그 순간의 나는, 그 안에서 약간은 비현실적인 존재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처음 경험한 광고회사의 일상들은 지금 돌아보면 고생스러웠지만, 제안서 준비와 프레젠테이션, 결과를 기다리던 순간까지 꽤 낭만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다. 물론 이 과정도 반복되면 지루해지고, 불만이 쌓인다. 비효율적인 시스템에 짜증이 날 때도 많지만 그래도, 늘 시작은 아름답게 기억된다.
기억 속의 사람들은 지금 다 어디서 일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