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플래너의 하루

by 하늘해


광고회사에서 ‘미디어 플래너’라는 직무는 업계 사람들에게는 익숙할지 모르지만, 디자이너나 마케터처럼 직관적인 표현이 아니다 보니 어떤 일을 하는지 모르는 분들도 많다. 특히 브랜드 입장에서는 대행사와의 커뮤니케이션이 대부분 기획팀(AE)과 이루어지기 때문에 미디어 플래너는 어쩌면 가장 베일에 가려진 팀일지도 모르겠다.


미디어 플래너의 하루는 오전이 가장 바쁘다. 전날 운영된 다양한 광고 매체들의 데이터를 취합하고, 그 안에서 인사이트를 뽑아내어 기획팀에 공유하는 일이 주 업무이기 때문이다. 내가 일하고 있는 회사의 경우, 직접 운영하는 매체도 있고 외부 미디어 매체사에 맡기는 경우도 있는데 양쪽에서 전달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특이사항, 트렌드, 성과 요약 등을 하나의 리포트로 정리해서 전달해야 한다. 매일 아침은 리포트를 만들고 정리하는 데 시간을 쏟게 되는 이유다.


미디어 플래너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예산 관리다.


월별로 브랜드가 예산과 KPI를 정해주면, 어떤 매체에 얼마를 집행하고 어떤 광고 상품으로 운영할지를 정리해서 ‘미디어 믹스’를 구성하고 제안하게 된다. 하지만 광고는 계획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성과가 좋지 않거나, 특정 매체의 광고비 소진이 느릴 경우 즉시 예산 조정이 필요하다. 광고비를 줄이거나 다른 매체로 분배하는 전략 수정이 계속 이어지기 때문에 미디어 플래너는 하루에도 몇 번씩 소진율과 성과를 모니터링하며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 예정된 예산을 과소진하거나 미소진하지 않도록, 매체 일정이 어긋나거나 검수가 늦어지지 않도록 계속해서 촘촘히 챙겨야 하는 일들이 많다.


광고주들은 종종 신규 매체에 대한 기대가 크다. 이미 경쟁이 치열한 주요 매체들보다 새롭고 덜 포화된 채널에서 가능성을 찾고 싶어 한다. 그래서 미디어 플래너는 늘 새로운 매체사들과 미팅을 하거나 새롭게 나온 상품에 대한 제안을 검토하면서 현재의 믹스를 어떻게 확장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된다. 반복되는 광고 구조 속에서 작은 전환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광고회사에 다닌다면 누구나 공감할 거다. 월초는 곧, 정산의 시간이라는 것을. 지난달 데이터를 정리하고, 광고주에게 청구해야 할 금액과 매체사에 지불해야 할 금액을 구분해 정리해야 한다. 매체별로 수수료율이 다르기도 하고, 광고주가 직접 충전하는 방식, 혹은 선불/후불 구조 등 케이스도 다양하다. 정산은 단순해 보이지만 놓치면 큰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매체별 예산 사용 내역을 정확히 정리하는 것이 필수다.


나는 이전에 기획팀에서 일한 적도 있고, 지금은 미디어팀에서 플래너로 일하고 있다. 둘 다 경험해 보면서 느낀 가장 큰 차이는 광고주와 직접적으로 소통하는 빈도였다. 기획팀이 광고주와 긴밀히 맞붙어 일한다면, 미디어 플래너는 그보다 한 발짝 떨어져 있어서 상대적으로 스트레스는 덜한 편이다.


하지만 여전히 리포트를 위한 수작업, 툴을 활용한 데이터 정리, 계속해서 바뀌는 요청사항과 숫자들… 그 모든 것들을 매일 아침부터 다시 반복해야 한다. 사소한 숫자 하나, 매체 이름 하나 잘못 들어가도 모든 리포트가 틀어질 수 있기에 작지만 무거운 업무들이 매일 반복된다.


대부분의 광고회사 실무자들이 공감할 거다. 수익은 정해져 있지만, 변경 요청은 끝이 없다는 것. 광고비는 소액이지만 성과는 극적으로 기대하는 광고주, “그냥 간단하게 이 매체도 한 번 추가해 보면 안 될까요?”하는 말 뒤에는 기획팀, 미디어팀, 운영팀까지 이어지는 적지 않은 공수가 발생한다. 광고주는 알기 어렵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간단한 요청 하나에도 수많은 조율과 실행이 필요한 걸. 그래서 더더욱 많은 소통이 필요하고, 정리하고 다시 정리하는 일이 많다.


미디어 플래너의 하루는 어제를 복사해서 오늘에 붙여 넣는 듯 반복되는 날들의 연속이다. 그러면서도 매일 다른 수치를 보고, 매체별 성과를 추적하고, 광고주의 니즈를 읽어내야 하는 아주 예민한 밸런스 위의 작업.


복잡하고 바쁘고, 때론 무의미해 보일 수도 있지만 이 반복 속에서 우리는 가장 현실적인 광고 성과를 만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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