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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림 Sep 05. 2024

별을 헤던 끝
여름날에 만난 꿈

기억마저 희미해 버린 그 시절의 꿈은 없지만

나와 별 헤던 여름날의 꿈’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끝 여름 속으로 추락하는 것은 그 시절의 꿈입니다.

이젠 추락하는 꿈을 추억하는 일만이 남은 듯합니다.


그 시절의 별과 꿈들을 다시 새겨 봅니다

그 해 여름은 기억하지만 사람은 이미 희미해져 갑니다.

아! 그토록 넘쳐났던 여름날의 꿈과 빛, 그리고 가슴속 열기는 다 어디로 사라졌는가?


 다시 오랜만에 찾았을 때는 이 여름이 끝무렵이었다. 

여전히 여름이 한창이다. 

새로 수리한 시골집은 솔밭사이 오솔길을 건너가면 화염처럼 타오르던 동해의 백사장의 뜨거운 햇빛이 내리쬐고 있다.

찌는 무더위가 한창이지만 여름 소나무가 드리운 그늘은 서늘하고, 백사장에 비친 빛은 눈을 뜰 수 없을 지경이다. 

긴 모자를 내려쓰고 선글라스에 손차양을 한 채 눈을 반쯤만 뜨고 잔잔한 바다 저 끝을 바라본다.
 역시! 가슴마저도 시원하다. 도시의 답답한 심경이 ‘훅’하고 날아가 버린다.

그래도 숨이 막히는 더운 짠 바다 바람에 소나무 가지를 흔들며 거친 숨소리를 뿜는다. 


 저만치, 버스 정류장에 배낭과 짐을 가득 든 채 젊은 남녀들이 가득 찬 버스에서 내릴 때에는 이곳은 이미 끝 여름의 쨍한 햇빛과 뜨거운 모래로 감싸여 있다.

바닷가 먼 곳을 바라보는 젊은 그대들은 넘치는 열정으로 이 여름을 온몸으로 날 터이다.

솔밭 사이로 그늘에서 점심을 배부르게 먹고 바닷가를 걷다가 오랜만에 빛의 열기에 조용해진 동해바다의 

잔잔한 물결이 과거로 돌아가게 한다.


 솔향 나는 숲은 곁은 내주는 청량함을 뽐내며 서 있을 뿐이다. 

바라보며 역광과 소나무 그림자, 그리고 그 시절 추억과 겹치며 상상에 빠진다. 

아마 그늘 아래서 앉아서 돌이켜 보면, 하얀 화염처럼 타오르던 여름의 빛을 바라보던 시골 학창 시절이 바로 내 인생의 두 번째로 멋지게 빛나던 활화산이었다.

그 시절 여름날들은 기억하지만 사람들은 어디론가 떠나고 아무도 없다.


 그늘진 대청마루에서 꿈같은 오수는 어린 시절로 돌아가게 한다

그리곤 그 시절의 별과 꿈들을 소환하게 한다

이곳, 바닷가가 가까운 작은 도시에서의 청춘의 학창 시절을 대부분을 보냈다.

그 시절, 시골의 저녁은 도시보다 일찍 시작한다;

저녁을 먹고 난 여름밤이면 동네 아이들은 공터에 모여든다. 

집 앞 언덕아래 공터엔 넓은 마루가 놓여 있어 거기로 밤이면 동네친구들이 주전부리를 들고 모여든다. 

주전부리는 옥수수나 찐 감자, 혹 과일이거나 가장 부잣집 여자아이가 과자를 들고 온날이면 잔칫집이 따로 없다. 참, 먹을 게 귀했던 시절이기도 했다.  

평상에 앉거나 포개 누운 아이들은 학교 이야기나 유행가를 부르거나 떠도는 잡다한 소문을 이야기한다.

밤이 깊어가면 십여 명이 모였다가 뿔뿔이 제집으로 돌아가면 결국 친한 서너 명이 남게 된다.


마루 누워 본 청명한 검 푸른 하늘에는 수많은 별이 있었다.

어린 날 시골의 여름 밤하늘엔 사선을 그으며 떨어지는 유성별도 보였다. 

밤하늘에 유성별이 떨어지자, 누군가 꿈을 말하면 이루어지게 하거나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말했다. 

순진한 생각이나 그 당시는 아마 순수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속 마음을 떨어 놓게 된다.

남은 아이들에게 “먼 곳에서 빛나는 별을 보며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라”라고 하면, 

남자아이들은 부자나 공무원, 경찰, 검사였고, 여자 아이들은 주로 선생님, 간호사였고 혹 좋은 아내를 말하는 아이도 있었다. 

그 아이가 '첫사랑'이었다. 

지금은 도시 한곁에 귀향해 별을 헤던 그곳 근방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다.


 왜? 

그런 꿈을 꾸느냐고 물으면, 우물쭈물했는데 그중에 부자를 말하는 아이가

“마음대로 갖고 싶은 걸 살 수 있어서”라는 대답을 하기도 했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지식은 없었지만, 그 아이의 “마음대로”는 권력을 의미했다. 

현실을 일찍 체감하는 시골의 순진한 아이들은 비교적 순진하지만 영악했지만, 

대학교 진학 대신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거나 시골에서 도시로 떠나 공장에 취직한 형제들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대부분은 주위를 보며 일찍 체념하는 법을 터득했다. 

모두가 그중에서 누워 있던 이들은 각자 자기 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지정했었다. 

한 아이가 돈을 많이 버는 부자가 되게 해달라고 소리를 내어 말해서 모두 웃었다. 

대부분의 고민은 돈만 있으면 해결될 일들이었다. 

별을 친구에게 집을 분양하듯 말하는 친구를 황당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시골의 별이 커져가는 재 속에서도 불사조처럼 일어나듯 꿈을 이루는 아이도 있다.
 대부분의 별들은 그저 어린 시절의 추억이었고 이루지 못한 사라진 꿈을 의미한다. 

사람이 아닌 밤하늘의 별을 보며 울고 웃었으니, 별은 내 삶의 증인이기도 했다.
돌아와 그 자리에서 본 그 별은 어린 날 내가 평상 위에 누워서 보던 별은 아니다. 

아니 별은 그대로지만 그때의 내가 아닐 것이다. 

꿈은 밤하늘의 별처럼 그저 바라보는 것이었다.


남들보다 조금 거칠게 어른이 되었고 꿈을 이룰 순 없겠지만 여전히 별을 바라보고 있다. 

그때 이유 없이 혼이 나거나 저녁을 굶으면 눈물로 바라보던 밤하늘에 유성우가 흘렀다. 

어쩌면 유성은 흐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눈물에 별이 번지면 수많은 별똥별이 만들어졌다. 

자주 봤다고 생각했던 유성우는 내가 만들어낸 것인지도 몰랐다. 


이제 도시의 밤하늘엔 별이 몇 개 보이지 않는다.
 별은 어린 시절의 추억이자 꿈, 힘들어도 꿈꾸던 그 시절의 내가 그리워진다.

도시의 흉측한 검 푸른색 하늘에 보이지 않는 별을 보며 이제 다시 예전의 그곳으로 돌아갈까 한다. 

돌아갈 곳엔 별빛은 여전하건만 추락한 건, 어린 시절의 꿈들이다

내가 그리워한 건 힘든 상황에서도 꿈을 꾸던 어린 날의 나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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