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림 Sep 29. 2024

독해진 이 여름을 보내며!

여름은 선량해지지 않고 오히려 물기를 머금고 독해져서 돌아올 테이니!

‘나와 여름 나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이 여름, 당신은 이전보다 더 독해져 돌아왔으니 그래도 어쩌라! 

다음엔 더 선량해져 돌아오길 바랄 뿐이지.


아! 그토록 넘치던 여름의 빛과 열기는 다 어디로 사라졌는가? 

귀가 먹먹하도록 울어 대던 매미 소리도 잠잠해지고 아침저녁으로 찬바람 부는 가을 초입에서 우리는 불안한 듯 서성이며 가뭇없이 자취를 감춘 여름의 빛과 영광을 내내 그리워하지요.


밤기운이 조금 서늘해지나 싶더니 다시 한 여름으로 돌아간 듯하다.

어쩌다 들리는 귀뚜라미소리지만 아직은 한낮의 불볕더위는 좀처럼 꺾이지 않는다. 

한낮 열기에 모자 밑 얼굴은 발갛게 익고 머리카락은 익어 불타오르는 듯하다. 


짝사랑하던 옆집 친구네 누나는 고민 끝에 수영강습을 시작한 그날엔 해변 모래밭에 돗자리를 깔고 몰래 훔쳐보며 먼발치 후미에 앉아 바닷물에 들어가지 못하고 머뭇거렸던 젊은 날의 기억을 떠올린다.

사람들은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을 피해 그늘진 바닷가 솔밭에 돗자리를 펼쳐 휴식을 즐기는가 하면, 더위를 식히기 위해 바다와 계곡 등을 찾아 물놀이를 즐기며 저마다의 여름 추억을 남기고 있다. 

무더위에도 시내에선 디저트 빵집과 슈퍼는 문을 열어놓고 한가롭지만 우체부와 생수 배달원만이 쉴 틈이 없다. 

여름휴가철엔 바닷가에만 번잡스럽고 작은 도시엔 자동차만 다닐 뿐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인적 없는 유령도시 같이 텅 비어 있다


시골의 텃밭 마루에서도, 솔밭 사이 백사장에서도 쏟아질 듯한 뜨거운 햇빛만이 보이고 바밤이 깊어지면 작은 빌딩사이로도 별들도 바라본다. 

시골집엔 작은 이층 다락방엔 ‘풀 사이드의 거창한 정원은 없어도, 바로 앞 텃밭 사이로 다락방 창에서 보이는 바다풍광은 마음 한구석이 시원하게 한다.

텃밭에선 곧 사라질 여름의 빛은 마치 촉수가 달린 듯 내 얼굴을 간지럽히고 백일홍과 수탉의 볏 같은 맨드라미에서는 열기가 자글자글 끓는다. 

간간이 뿌리는 장맛비만 없다면 쾌청한 오전 빨랫줄에 넌 셔츠나 수건 따위는 반나절이면 습기 한 점 없이 잘 마른다. 

마른 옷에 코를 박으면 싱그러운 햇빛 냄새가 난다. 

내 안에 도사린 한 조각 불안과 음습함마저 날려줄 것 같은 여름 햇빛 냄새를 맡으려고 나는 자꾸 방금 걷어온 마른 옷에 코를 박는다.
오늘 하루 바다에서, 계곡에서 시원한 여름을 즐겼다면 점심으로 오이 띄운 콩국수를 먹으며 여름 나기를 한다.


어느덧 저녁 밤이 깊어가면 계절의 변화를 알리는 귀뚜라미가 우는데도 아직은 한낮의 무더위는 좀처럼 꺾이지 않는다. 

외출할라치면 한낮 열기에 가슴 한쪽은 축축하고 얼굴은 발갛게 익고 머리카락은 불타오르는 듯하다. 

그래도 여름이 좋았다!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 바다 백사장에 비친 빛, 그리고 반사된 도시의 빛들도 좋다! 

동해의 햇빛은 작년보다 선량해지지 않고 오히려 더 축축한 물기를 머금고 독해져서 돌아왔으니 그래도 어찌하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