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전생에 대한 기억이 나지 않는다. 꿈에서조차 전생에 대한 추억은 재생되지 않는다.
합리적 추론으로 다음 생에 태어난다 할지라도 이번 생의 기억은 갖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일 평생 체득한 삶의 노하우, 교육과 경험을 통해 배운 모든 것을 포맷하고 걸음마부터 새로 배워야 한다니, 오 맙소사! 이 얼마나 큰 낭비 인가.
신은 왜 인간의 기억을 빼앗아 가는가!
신은 말한다.
새로 산 스마트폰에 과거의 사용자 정보가 가득 남아 있다면 그것을 새것이라 할 수 있겠는가?
과거 몇 천 년의 기억들이 뒤섞여 있다면 그 혼란은 어떻게 감당하겠는가!
전생의 원수지간이 현생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것도 난감하고, 전생의 부모가 현생의 자식이 되어도 참으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신이라 하더라도 포맷을 시킬 수밖에 없으리라.
하지만,
재산이나 명예 따위는 모두 두고 가도 일말의 미련도 없지만, 아니 미련이 있을 정도의 재산도 명예도 없지만 소중한 기억들을 모두 잊게 된다는 것은 많이 아쉽다. 바람의 기억, 아침 햇살과 이슬의 기억, 버지니아 해변의 일출, 특히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의 기억, 아마도 다음 생이 있다면 황사 태풍이 지난 간 뒤 잠깐 파란 하늘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밤하늘에 별 이 있다는 것이 전설처럼 들려질지도 모른다.
벚꽃이 지고 난 뒤 찾아오는 연두의 계절, 아기 손가락 마냥 도르르 말려 조금씩 풀려 가는 새 잎들의 축제. 아! 내가 진정으로 사랑했던 것들. 지천명이라는 쉰을 넘기고 겨우 배우기 시작한 아름다움 이란 단어에 숨어 있는 의미들. 소중한 것들에 대한 재 해석들. 그 생각, 그 느낌들을 고스란히 잃어버린다는 것은 아쉬움을 넘어 슬픈 일이다.
이 모든 것을 고스란히 포맷시켜야 한다는 것은 용납이 되지 않는다. 죽어서도 가져갈 수 있는 나만의 것. 그것이 없다면 이 삶의 의미는? 쿠팡맨처럼 유전자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존재의 이유라면 그것은 너무도 허망한 일이다.
고성능을 자랑하던 시피유도 어느새 몇 세대 건너뛴 폐물이 되고, 세상을 다 담고도 남을 듯하던 메모리도 겨우 영화 몇 편에 용량이 부족하고, 화려함을 자랑하던 그래픽 카드도 새로 나온 게임 하나 소화하지 못한다. 세상은 그렇게 빠르게 변하고 세대는 따라잡지 못한다.
살아온 삶에 대해서 크게 후회할 일도 없고, 미련도 없지만 나이가 든다는 것은 오래된 컴퓨터 마냥 구닥다리 취급받다 결국 버려지게 되는 것 같아 마음 한편 외롭고 쓸쓸함은 어찌할 수 없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