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변화는 기적을 낳는다

by 드림포터

길을 걷다 상가 유리문에 비친 모습을 본다.

어깨는 움츠려 들고 등은 앞으로 굽은 체 걸음걸이는 좌우로 힘없이 흔들 거린다. 자주 보았던 거울 속 정지된 모습과 걷는 모습은 생각과 많이 다르다. 걸음걸이는 사람마다 다르다. 걸음걸이를 보면 멀리서 보아도 누군지 쉽게 구분이 된다. 성격과 이미지 건강마저도 걸음걸이를 보면 알 수 있다고 하는데 정작 나 자신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도 않았다. 가슴 한 곳에서 신음처럼 새어 나온다 '이건 아니야!'

가슴을 내밀고 척추를 곧게 세운다. 어깨를 펴고 상체를 고정시키고 걸어본다. 다소 부자연스럽지만 유리문에 비친 모습은 한결 건강해 보인다.


그때였다. 걸음걸이 자세를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겨울의 끝자락, 2월을 하루 남겨둔 저녁 바람이 꽤 쌀쌀하게 느껴질 때였다. 가까운 길은 걸었다. 평소 습관처럼 차를 타던 거리를 웬만하면 걸었다. 걷는 거리가 조금씩 길어지면서 만족도 또한 높아져 갔다. 일이 없어도 걸었다. 걷기 위해 걸었다. 어쩌다 날씨 좋은 날 가까운 둘레길 걷던 것이 평일 저녁 식사 후 산책으로 일상 화 되었다.


게으름은 항상 핑곗거리를 찾는다. 때로는 날씨가 때로는 약속이, 전날 숙취가 산책을 방해하는 단골 핑곗거리가 된다. 의지와 핑계가 머릿속에서 기싸움할 때는 생각을 멈춘다. 태엽 인형처럼 그냥 걷는다. 더우면 창이 넓은 모자 하나 눌러쓰고 비가 오면 가벼운 우산 하나 받쳐 쓰고 태풍이 오면 아파트 계단을 오른다. 숙취에는 오히려 걷는 것이 약이다. 핑계는 의지 앞에 나름의 논리를 전개하며 강한 척 하지만 습관 앞에 나약하다. 습관을 들이는 데는 그렇게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백일 이면 몸이 저절로 반응한다.


걷는다는 것. 빠름의 미학에 위배되는 가장 비효율적 이동 수단으로 꺼려 왔지만, 가장 단순하고 반복 적인 걷기는 원초적 본능을 자극하며 중독으로 이끈다. 선천적 저능아 이면서 다리가 불편했던 포레스트검프 가 아무런 이유 없이 달리듯이, 그냥 걷는다. 걷다 보면 시간의 흐름이 보인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벚나무 꽃망울이 만개하고 눈처럼 휘날린다. 꽃이진 빈자리 연둣빛 잎사귀가 진녹색으로 우거지면 비가 오고 태풍이 여름을 쓸고 지나간다. 하늘이 깊어지면 붉게 물든 낙엽이 골목길 구석구석을 휘젓고 다닌다.


걷다 보면 생각이라는 것을 하게 된다. 이 목적하지 않은 생각을 애써 떨치고 걷다 보면 어느 세 또 다른 생각이 빈자리를 차지하며 생각의 꼬리를 물고 산책의 즐거움에 훼방을 놓는다. 가끔 봄 날 아지랑이처럼 흩어지는 생각들이 아쉬워 책장 사이 낙엽으로 갈피 하듯 폰에 갈무리한다. 계절이 바뀌면 갈무리된 생각들이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린다. 메모장의 글들이 자란다. 글귀가 짝을 이뤄 문단이 되고 단락이 된다. 인터넷 블로그에 글들을 옮겨 심는다. 텃밭에 물을 뿌리고 거름을 주듯 글귀를 키운다. 글들이 자라난다. 한 장 한 장 그렇게 글들이 쌓여간다.


파스칼은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했다.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애완견도 생각한다. 감정이 있고 표현도 한다. 인간은 기록하는 동물이다. 인간만이 생각을 기록하고 사실을 기록한다. 기록이 없다 는 것은 존재의 부정을 뜻한다. 기억은 휘발성이 강하다. 기록이 없는 과거는 지워지고 개인은 잊혀진다. 기록이 없는 개인에게 미래는 없다. 인생은 짧지만 기록은 존재를 소환하고 역사의 한 부분을 장식한다.


작은 생각의 변화는 때때로 기적을 낳는다. 기적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꿈이 이루어지거나, 엄청난 성공 따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어둠 속에서 빛을 발견하거나, 심장이 다시 뜨거워지거나, 놀랍도록 평온함 또는 희망으로 가득 찬 충만감을 느끼는 것이다. 온통 세상이 눈부시게 반짝거리는, 마치 첫사랑 때와 같은 그런 경험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길을 걷는다. 또 다른 생각하지 못했던, 경험하지 못했던 변화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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