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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나요 Nov 09. 2022

근로계약서에 사인하기 전에 꼭 해야 할 일

나는 일을 하면서 많은 계약서를 작성했다. 간단하게는 에이전시와 업무 범위 및 비용을 적어 놓은 1-2장짜리 계약서부터 기업 대 기업으로 1년 넘게 협상하면서 수백 장에 달하는 계약서 작업도 해보았다. 사실 비즈니스팀에서는 주요 내용을 협의하여 법무팀으로 보내면, 계약서 초안부터 리뷰까지 모두 법무팀에서 리드하면서 비즈니스팀도 같이 리뷰를 하는 게 정석이다. 양쪽의 법무팀 리뷰만 왔다 갔다 해도 몇 달은 그냥 지나가기 마련이다. 일단 사인을 하면 되돌릴 수가 없기 때문에, 기업의 계약서는 모두 법무팀 리뷰를 받게 되고, 법무팀에서 최종 승인을 해야 인감을 사용할 수 있다. 


남의 회사 일을 하면서는 너무나 당연한 이 프로세스를 그럼 개인에게 적용해보자. 우리는 한 명의 개인으로서 (또는 일개미로서) 당연히 여러 계약서를 보게 된다. 부동산 계약서부터 대출 계약서까지. 그중에서도 직장인으로서의 핵심은 나를 채용한 기업과의 근로계약서일 것이다. 과연 우리는 ‘나’를 위한 근로계약서를 ‘회사’를 위한 일반 계약서처럼 처리하고 있을까?


내가 하버드에서 MBA를 하면서 매우 놀랐던 점은, 절반 이상의 학생들이 자신의 근로계약서에 서명하기 전에 법적 리뷰를 받는다는 사실이었다. 사실 하버드 MBA는 직장경력이 많지 않은 2-4년 정도의 주니어급이 대다수였는데, 그럼에도 절반 이상의 상당수가 자신의 근로계약서에 서명하기 전에 법무 리뷰를 받았다니. 아무리 변호사가 많기로 유명한 미국이라도 어쨌든 변호사 비용은 싸지 않단 말이다. 


그럼 나는 어땠을까. 과거를 돌이켜보면 사실 엉망이었다. 처음 두 직장은 사실 어떻게 사인해서 냈는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나마 디즈니에 입사할 당시가 기억이 나는데, 인사담당자의 방에서 계약서를 처음 받아봤다. 처우 협의는 다 완료된 상태여서 사실 알고 있었으나, 계약서는 당시 처음 보았다. 수십 장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몇 장이 영어로 빼곡히 적혀 있었는데, 인사담당자가 그냥 여기에 사인하면 끝난다고 하면서 빨리 사인하고 끝내자고 했다. 그래도 한 번은 꼼꼼히 읽어봐야 한다고 내가 주장하여, 인사담당자가 잠시 시간을 주었던 것이 생각난다. 그 자리에서 읽어보고 사인한 게 전부였다. 


그리고 최근 오랜만에 이직을 하면서 몇몇 곳들에서 오퍼를 받고 한글로 된 근로계약서를 처음으로 받아보았다. 그중 내가 보아도 좀 이상한 조항이 걸려 있었다. 결국 처음으로 나는 노무사를 찾아갔다. 노무사의 첫 질문은 내가 회사 측인지 여부였다. 노무사는 매우 친절하게 계약서 전반을 리뷰해주었고, 그 조항이 법적으로 아무 효용이 없으며, 나를 심리적으로 압박하기 위하여 회사 측에서 넣은 것이니 내가 그 조항을 무시하고 원하는 것을 다 얻어내면 된다고 하였다. 그 외에도 몇몇 문구를 고치기도 하였고, 왜 급여가 이렇게 계산되는지도 설명해주었다. 나는 사실 큰돈을 지불하지 않았음에도 매우 만족스럽게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사실 그가 해준 설명과 가치에 비하면 매우 적은 돈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왜 진작 이런 생각을 못 했을까 생각했다. 회사를 위해서는 그렇게 하나하나 다 따져가면서 리뷰하면서, 정작 나를 위한 계약서는 함부로 사인을 했었다니…


물론 외국계 기업의 계약서는 영어로 되어 있어서 리뷰에 훨씬 더 많은 비용이 들 것이다. 그리고 노무사가 아닌 변호사를 찾아갈 경우 기본 단위가 몇 곱절은 훨씬 더 높아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회사’를 위한 계약서에 들이는 절반의 노력이라도 ‘나’를 위한 계약서에 쏟아야 하는 거 아닐까. 전문가의 리뷰를 정말 못 받는다면, 적어도 내가 몇 번을 꼼꼼히 읽어보고 따져봐야 하지 않을까. 사인하고 나서는 돌이킬 수 없다. 아직 협상 중이고 논의 중인 상황에서 내가 원하는 바를 다 얻어내야 한다. 


Image by Andreas Breit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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