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릴 적 다녔던 유치원은 한 달에 한 번은 견학을 갔다. 그런 날이면 항상 우리 할머니는 김밥 도시락을 싸 주셨다. 평소에는 식탁에 오르지 않는 햄과 오양 맛살을 먹을 수 있어서 참 좋았다.
그때 먹던 김밥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오랜만에 맛을 봐서 반가운 햄과 맛살, 달걀, 볶은 당근, 씨앗 부분은 잘라내고 소금에 절인 오이 등이다. 우리 집 김밥에 우엉조림은 들어간 기억이 없었고, 단무지에 대한 기억도 없다. 우리 집 김밥은 단무지나 우엉조림이 없어 달콤한 맛은 없었지만, 담백하고 고소하고 맛있었다.
우리 할머니는 음식도 맛있게 하셨지만 도시락도 참 예쁘게 싸주셨다. 특히 동그란 김밥을 착착 쌓다가 생긴 빈 틈새에는 김밥을 싸고 남은 달걀이나 햄을 사다리꼴 모양으로 썰어서 채워 주셨는데, 김밥을 먹다 한입씩 먹는 햄이나 달걀은 참 맛있었다.
국민학교에 입학하고서도 소풍날과 운동회 날은 꼭 김밥을 쌌다. 특히 운동회날은 커다란 찬합에 김밥이며 불고기며 찰밥까지 잔뜩 싸서 돗자리를 들고 온 가족이 학교로 갔다. 그 커다란 김밥 찬합은 직장 생활을 하느라 미처 자리도 잡지 못하고, 김밥 도시락도 싸지 못한 친구와 친구의 어머니를 초대해서 나눠먹어도 남을 정도의 양이었다. 그렇게 실컷 김밥을 먹고도 저녁때가 되면 또 김밥을 먹었다. 가끔 소풍날이나 운동회 날이 아니라도 김밥으로 점심 도시락을 싸기도 했는데, 그런 날은 점심시간이 유난히 기다려졌다.
여름 방학과 겨울 방학에는 함께 방학을 한 엄마가 밥을 차려주셨다. 엄마에게 갑자기 김밥을 싸 달라고 조르는 날에 엄마는 김밥에 김치를 넣으셨다. 김치와 달걀, 그리고 햄 등 간단한 재료만 들어가도 김밥은 참 맛이 좋았다.
할머니도, 엄마도 항상 김밥을 싸실 때는 부엌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김밥을 싸셨다. 김밥을 싸는 할머니나 엄마 앞에 앉아서 햄도 한 줄, 달걀도 한 줄 집어먹고, 썰다 남은 김밥 꽁지나 터진 김밥을 얻어먹기도 했다.
김가네며 김밥천국 같은 프랜차이즈 김밥집이 많이들 생기면서 김밥에 들어가는 재료도 다양해졌다. 참치나 소고기가 들어가기도 하고, 매콤한 멸치볶음이나 치즈가 들어가기도 한다. 하지만 아직도 여전히 한 번씩은 집에서 싼, 기본 재료만 들어간 김밥이 먹고 싶은 날이 있다. 집에서 싼 기본 김밥은 김밥 전문점의 기본 김밥보다 어쩐지 더 맛있는 느낌이다.
엄마가 김박을 워낙 좋아해서 자주 싸다 보니 일곱 살 된 아들도 꽤 야무지게 김밥을 싼다. 사실 비빔밥이나 볶음밥 유부초밥 같은 한 그릇 음식들은 아이가 즐겨 먹지 않는데, 스스로 싼 김밥은 꽤 잘 먹는다. 시금치가 아직 맛있는 때에 김밥을 한번 더 싸서 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