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꼬치에 대한 처음 기억은, 붕어빵 하나 백 원에 팔던 붕어빵 집에서 이백 원을 받고 팔기 시작했던 닭꼬치이다. 한 뼘 정도 되는 닭꼬치를 그릴에 구워서 고춧가루가 살짝 첨가된 달콤한 간장 소스를 발라 주었다. 언젠가부터 초등학교 앞 분식점과 문구점에서도 가스버너에 프라이팬을 놓고 닭꼬치를 팔기 시작했다. 닭꼬치는 떡볶이, 튀김과 더불어 가장 많이 사 먹던 군것질거리 중 하나였다
중학교에 가고 나서 학원도 가지 않고 학교 수업도 일찍 끝나는 토요일에는 친구들과 함께 걸어서 집까지 갔다. 먹성 좋은 여중생들은 학교 앞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먹고 월포초등학교를 지나 댓거리로 갔다.
당시에 월포초등학교 앞에는 문방구와 분식점을 겸한 곳이 있었다. 그곳에서는 떡볶이와 튀김은 물론 닭꼬치도 함께 팔았다. 이 집에서 파는 닭꼬치는 특이했다. 토스트를 굽는 커다란 철판에 밀가루 반죽을 붓고 그 위에 닭꼬치를 올려 구워주었다. 직화 닭꼬치도 아니고, 닭꼬치 튀김도 아닌 닭꼬치로 구운 부침개를 먹는 것 같았다.
고 2 진급을 앞둔 어느 겨울, 다니던 수학 학원 선생님과 새로운 문제집을 사러 서점에 다녀오는 길에 학교 밑에 새로 생긴 닭꼬치 집에 들렀다. 큼지막한 양념 닭꼬치 구이를 오븐에 한 번, 직화로 두 번 구워, 달콤한 허니머스터드소스를 뿌려서 나왔다.
가게가 좀 더 자리를 잡은 후에는 튀김 닭꼬치도 함께 팔았는데, 바삭하게 튀긴 닭꼬치에 소스를 바르고 역시 허니머스터드소스를 뿌려서 먹었다. 닭꼬치를 먹고 있으면 적당한 때에 기다란 나무 꼬치를 전정가위로 툭툭 잘라서 먹기 편하게 해 주셨다.
이 날 먹은 닭꼬치가 무척 맛있었던 나는 학원 가는 길에 하루 하나씩 이 닭꼬치를 사 먹었다. 특히 이 집에서 튀김 닭꼬치를 팔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아저씨가 내 얼굴을 알아볼 정도로 자주 갔다. 1200원의 싼 값에 갓 튀긴 치킨을 먹을 수 있는데, 닭이라면 환장을 하던 내가 매일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구운 닭꼬치가 기름기가 빠져 담백한 맛이라면 튀김 닭꼬치는 두툼한 튀김옷이 있어 든든했고, 기름을 먹은 바삭한 튀김옷은 매콤한 닭꼬치 소스와 잘 어울렸다. 나중에는 단골 나름의 노하우가 생겨 닭꼬치의 한쪽 면에는 순한 맛, 반대쪽 면에는 매운맛 소스를 발라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함께 이 집을 다니던 내 친구는 소스를 바르지 않고 소금에 튀김 닭꼬치를 찍어먹었는데, 그럴 때마다 주인아저씨는 먹을 줄 안다고 좋아하셨다.
닭이라면 어떻게 요리해도 맛있는 내 입맛에만 맛있었던 게 아니었던 것은 확실하다. 어느 순간부터 이 집의 닭꼬치는 일정 개수 이상을 주문하면 학교에 선생님 몰래 배달로 들어오기도 했다. 간 큰 친구들은 미리 닭꼬치를 주문해 놓고 먹을 사람을 모집하기도 했는데, 마침 석식 급식이 맛이 없던 날 친구를 꼬드겨 닭꼬치 배달 대열에 합류했다가 담임 선생님께 걸려 된통 혼이 나기도 했다.
이런 인기에 힘입어 이 가게는 개업 1년 정도만에 가게를 넓혀 의자와 테이블이 있는 곳으로 이사를 갔다. 야자가 끝날 무렵 닭꼬치 집의 테이블에는 마산여고와 마산고의 교복을 입은 학생 무리들이 진을 치고 앉아 닭꼬치를 먹고는 각자의 학원으로 떠났다. 그 이후 여러 곳에서 닭꼬치 집들이 많이 생겼다. 우리 학교 정문에서 가까운, 내가 다니던 독서실 앞에도 닭꼬치 집이 새로 생겼는데, 그래도 처음 사 먹었던 그 집의 맛이 가장 좋았다.
이 닭꼬치 집들은 주로 튀김 닭꼬치를 팔았는데, 초벌로 튀긴 닭꼬치를 산더미처럼 쌓아두고 주문이 들어오면 한번 더 바삭하게 튀겨주었다. 이 꼬치집들은 소스가 정말 다양했는데 데리야끼 맛, 순한 맛, 보통맛, 매운맛에 정말 매운 눈물 맛까지 있었다. 심지어 눈물 맛은 단계에 따라 1,2,3까지 있었다. 나중에 되어서는 핵폭탄 맛, 포도맛 같이 특이한 소스들도 생겨났다. 두 번 튀긴 닭꼬치에 주문한 소스를 바른 뒤, 달콤한 머스터드를 듬뿍 뿌려서 내어주었다.
날씨가 더운 주말이면 남편과 아이와 함께 집 근처의 해수욕장으로 간다. 파도도 타고, 모래놀이도 하고, 조개도 잡으며 노는 아이는 식사 때가 되어도 좀처럼 일어날 생각이 없다. 아이가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는 남편은 근처 포장마차에서 끼니를 때울 것들을 사 들고 왔다. 음식 냄새를 맡고서 식욕이 동한 아이는 제 키의 절반 만한 커다란 닭꼬치를 양손으로 잡고 맛나게도 먹는다. 아이가 닭꼬치를 먹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한때 학원가는 길에 매일 먹던 그 튀김 닭꼬치가 생각났다. 가게 이름을 검색해 보니 그때 그 집은 아니지만 같은 체인점이 아직 몇 군데 남아 있다. 날이 덜 더운 날 아이와 함께 닭꼬치 하나 사 먹으면서 엄마 학창 시절 이야기를 들려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