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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국퀴어 Oct 03. 2022

춘천 맛집은 모릅니다

정한새




어느 순간부터 지방으로 여행 갈 때 거기 살거나 살았던 사람에게 ‘어디가 맛있냐’고 묻지 않는다. 이제는 나도 알기 때문이다, 그 지방에서 제일 맛있는 건 대체로 ‘어렸을 적 보호자가 명절 때 해준 갈비찜’ 정도라는 걸. 춘천은 닭갈비와 막국수가 맛있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어 ‘그 지역은 뭐가 맛있냐’는 질문은 안 들어도 된다는 장점이 있다. 문제는 사람들이 ‘어느 닭갈비 집이 맛있냐’고 묻는 것이다.

나는 이제 솔직히 얘기한다. 모른다고. 일단 춘천에 있는 모든 닭갈비 집을 가본 게 아닐뿐더러, 닭갈비 집에 그렇게 자주 가지도 않는다. 손님 오면 대접하러 가는 게 주된 방문이고, 대체로 집에서 해 먹는다. 집에서 해 먹으면 떡과 고구마, 채소와 닭고기와 양념의 비율을 구성원 취향에 맞출 수 있다. 치즈떡을 넣어 먹기도 하고 누룽지볶음밥을 양껏 해 먹기도 한다. 집에서 볶음밥을 어떻게 해 먹냐고요? 여러분 집에는 닭갈비용 주물팬이 없나요...? 제 춘천 집에는 있습니다. 조재 님 춘천 집에도 있을걸요?

곰곰이 생각해보면, 외식을 (문자 그대로) 밥 먹듯이 하지 않는 이상, 사는 지역의 맛집을 아는 건 어려운 일이다. 나 역시 생각해보면 맛집 지도라는 걸 그릴 수 있는 지역은 고작해야 회사 주변 정도다. 그리고 대부분의 회사 근처 식당은 누군가가 추천을 바랄 때 원하는 분위기는 또 아니다. 게다가 닭갈비에서 벗어나서 생각해봐도 어려운 건 마찬가지다. 누군가 ‘춘천 맛집은 어디가 유명해?’라고 물었을 때, 춘천의 범위가 넓은 것도 있다. 남이섬에 갈 거니, 공지천에 갈 거니, 소양댐에 갈 거니, 수목원에 갈 거니, 스카이워크에 갈 거니. 차는 가지고 가니? 아니면 택시 타고 돌아다닐 거니? 참고로 버스는 정말로 추천하지 않아. 숙소는 어디에 있니? 이런 걸 머릿속으로 생각하면서 입매로는 가짜 웃음을 짓고 있다.

그러다 보니 나는 듣도 보도 못한 춘천 맛집을 SNS에서 마주하는 경우가 많다. 가장 최근에 보고 놀랐던 곳은 구봉산 스타벅스였다. 구봉산이라는 단어를 들은 것도 너무 간만의 일인데 거기에 전망대가 있고 스타벅스가 생겼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아니, 그렇게까지 어딘가를 가고 싶어 한단 말이에요, 이 나라 사람들은? 거긴 정말 구봉산 밖에 없다고요. 아니면 네이버 데이터센터 보러 가는 거예요?

올 초 춘천에 갔을 때는 친구가 요새 유명한 카페라며 시내에서 한참 벗어나 굽이굽이 길을 운전해 규모가 큰 카페로 날 데려가 준 적이 있다. 간만에 춘천 온 나에게 좋은 곳을 보여주기 위해 먼 길 운전해준 친구에게 고마운 것과 별개로, 나는 정말 그 위치가 너무 충격이었다. 논밭 가운데 카페가 있다니! 무슨 공장처럼 큰 카페룰 둘러보며 친구에게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사람들은 여기 와서... 뭘 보는 거야?’ 친구는 상쾌하게 대답했다. ‘논밭? 지금 초봄이라 그렇지 여름에는 여기 작물 자라.’ 깡촌에서 나고 자란 나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감성이긴 했다. 논밭이야 다들 십 대까지 눈 뜨고 창밖 보면 보이는 거 아니냐고요. 엄마가 쪄준 식빵 먹으면서 아빠가 갈아준 드립 커피 마시면 내 집이 바로 춘천 뷰 카페구나, 싶어 코를 찡긋거렸다.

한동안은 오로지 질문하는 사람을 위한 적당한 대답용 춘천 맛집 목록을 만들어두려고 했는데, 지금은 안 한다. 떠나온 지 너무 오래됐고, 잠깐씩 방문해 한두 번 가본 곳을 맛집이라고 알려주기도 민망하다. 그냥 나도 모르니까 트위터나 네이버, 인스타를 뒤져보라고 한다. 성심당 같은 오래된 전통의 맛집에 특정한 메뉴 같은 거면 모를까, 지금 이 순간 가장 유명한 거! 가장 인스타그래머블 한 거! 가장 단짠단짠인 거! 가장 기괴한 거!는 대체로 관광객이 더 잘 알더라.


P. s 실컷 이런 내용 포함해서 중간 점검 회의하고 조재 님에게 춘천 맛집 물어봤습니다^_^ 아무래도 제가 제일 나쁜 편.


Chan Walrus님의 사진: https://www.pexels.com/ko-kr/photo/958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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