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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국퀴어 Oct 17. 2022

집 떠나면 돈이다

정한새




예전엔 몰랐다, 왜 집 떠나면 고생이라고 했는지. 고생이 아닐 거라 생각했다기보다 어떤 고생일지 감이 오지 않았다는 게 정확하다. 하지만 고등학생 때 기숙학교를 다니면서 어라어라어라라 싶던 것들이 대학생이 되자 확실하게 다가왔다. 집 떠나면 별 게 고생이 아니었다. 돈이 없는 게 고생이었다. 바꿔 말하면, 고생의 여러 가지는 돈만 있으면 해결될 문제였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며 가장 골치 아팠던 문제는 집이었다. 집 떠나면 당연히 집이 없어지는 거니 집안일을 걱정할 계제가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보호자 입장에서도 당장 일상적인 지출에서 월세에 생활비를 내줘야 했으니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테다. 강원도에 사는 4인 가족의 집안 사정이라는 게 뻔했고, 대학생이 상경하여 살 수 있는 공간도 모두가 상상할 만한 그 정도였다. 1인용 매트리스 하나, 붙박이장 하나, 책상 하나 들어가면 끝나는 방이 그때는 내 집이었다. 독립해서 행복한 것과 집이 방인 건 다소 별개의 문제였다. 옆방에 거주하는 사람은 주기적으로 새벽마다 누군가와 싸워댔고(다행히 외국인이라 자세한 내용은 모를 수 있었다) 공용 부엌은 미묘하게 난장판이었다. 더 나은 조건으로 이사하려면 돈이 더 필요했고, 집에 그런 돈은 없었다. 나는 그때야 처음으로 지역 간 부동산 가격 차이가 얼마나 크고, 그게 어떻게 내 삶에 영향을 미치는지 실감했다.

어딜 가는 것도 전부 돈이었다. 구한 방은 학교와 거리가 있어서 등하교 할 때마다 차비가 들었다. 주말에 어딘가 가고 싶어도 용돈에서 이것저것 셈하고 나면 여윳돈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부모님과 같이 살 때는 부모님이 이동할 때 시간 맞춰서 차를 얻어타곤 했는데 독립하고 나니 그게 불가능했다. 그래서 한 번 어딘가를 갈 때는 마음 먹고 가거나, 아니면 가는 걸 포기하곤 했다. 좋아 보이는 전시회는 낯설어서 어색했고, 그때는 어색함을 즐길 줄도 몰랐다. 그러다보니 그렇게 다녀오면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게 무엇인지 알려주거나, 그런 문화에 익숙해지도록 도와줄 만한 언니도 없었다. 서울에 가면 견문이 넓어진다고 했는데, 내가 아는 세상은 3평 방 안으로 좁아 들었다.

부동산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똑같은 걸 먹는데도 무언가가 더 비쌌다. 해 먹는 건 몇 번 시도했다가 포기했다. 대학생이어서 할 줄 아는 요리가 적기도 했지만, 공용 부엌은 싱크대가 한 칸짜리인데다가 식재료를 보관하기도 어려웠다. 게다가 한 번 요리할 때 갖춰야 할 것에 비해 버리는 식재료가 너무 많았다. 가족과 같이 살았으면 덜 들었을 식비가 계속 나갔다. 막상 사 먹으려고 나가면 선택지가 적었다. 내가 아는 곳이 아니니 단골 식당을 만드는데 시간이 걸렸다. 강원도에서는 이 정도 돈이면 대학교 후문에서 배부르게 한 끼를 먹을 수 있었는데, 서울에서는 미묘하게 단가가 올라간 느낌이었다. 뭔가가 날 속이는 기분이 들었다. 적당히 영양을 갖춘 한 끼를 찾아내면 대학생 생활비로는 비쌌고,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것 중에 채소가 충분히 들어가 비타민과 섬유질과 미네랄을 섭취할 수 있는 건 거의 신계의 음식이었다. 학교 급식은 영양과 가격에 적당한 균형을 맞춘 것 같긴 했는데 맛이 없었다.

생활비라는 게 너무나도 미묘해서 이 외에 정확히 콕 집어 뭐가 그렇게 돈이 많이 들었냐고 하면 거 참, 말하기 어렵다. 집에 돈이 없었던 거 아니냐 싶기도 한데, 그야 동네에서 내노라 하는 부잣집은 아니었지만 강원도에서는 살며 대학 다녔다면 이렇게 부모 등골 빼먹으며 학교 다닌다는 자괴감이 들진 않았을 거다. 내가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자마자 보호자는 용돈을 끊었는데 당연하다고 생각했으면서도 서운하고 섭섭했던 감정이 남아 있는 걸 보면 그 시기에 타지에서 '넉넉하게' 지내지는 못 했구나 싶다.

경제력을 어느 정도 갖춘 지금은 인프라 문제가 결국 돈 문제로 치환된다. 이를테면 내가 원하는 전시회나 강연은 주로 서울에서 이루어지는데, 서울에 살았다면 지하철을 타고 40분 정도 걸려 대중교통 비용 2,500원 내에서 당도했을 곳에 가기 위해 두세 번의 지하철 환승과 광역버스 비용(이도 저도 안 될 때는 차라리 기차를 이용하는)을 들여 가는 것에는 어쩔 수 없는 극명한 차이가 있다. 이나마도 내가 지금은 경기도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이 정도로 가능한 거지 경상북도에 살았으면 또 달랐을 이야기다.

수도권에서 사는 게 이렇게 돈 드는 걸 알면 이제라도 왜 부모 옆에 붙어살지 않느냐. 다시금, 돈 문제다. 지방에는 일자리가 한정적이고 그나마도 여성보다는 남성을 우선으로 채용한다. 인프라가 없다는 건 정부에서 애써서 지방에 인프라를 구축했다면 생겼을 일자리조차 없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따라서 여기서도 밀리고 저기서도 밀린 지방 여성(게다가 퀴어, 바로 접니다)는 어쩔 수 없이 (돈을 벌기 위한) 공부를 하거나 돈을 벌기 위해 돈을 써야 하는 수도권으로 꾸역꾸역 이동한다.

어느 명절, 우리 가족이 다 떨어져 산다는 걸 깨달았다. 그전에도 알고 있었지만 새삼스러운 깨달음이었다. 각자가 지금의 거주 공간에서 살기 위해 지불했고 지금도 지불하고 있는 돈을 계산하다가 생각보다 금액이 훨씬 커서 깜짝 놀랐다. “와, 엄마. 우리 지금 수입에 같이 살았으면 돈 엄청 아꼈겠다.” 그리고 말하자마자 스스로 대꾸했다. “근데 그럴 수가 없지, 다들 직장 찾아 집 구한 거니까.” 엄마가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당연하지, 라고 대꾸했다. 그렇다. 결국 집 떠나면 돈이다. 그렇다면 집을 떠나지 않아도 되는, 동년배이지만 이만큼 돈을 쓸 필요가 없는 권력을 누리는 사람(이를테면 서울 토박이)과 그 권력이 없는 사람 사이에 생기는 불평등을, 무엇으로 메울 수 있을까?




헤더 사진 : Pixabay님의 사진: https://www.pexels.com/ko-kr/photo/259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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