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
대학을 졸업하고 전공을 살리지 않은 채 하고 싶은 일을 업으로 삼았다. 생각만큼 일이 잘 풀리지는 않았다. 그러다 찾아오는 우연한 기회들을 겁 없이 덥석덥석 낚아챘으므로 어린 나이에 짧고 다양한 이력을 새겼다. 사람의 일이란 알 수 없는 것이로군, 생각했다. 다양한 직업(당연히 저임금 노동시장)을 거치는 것에 이어 20대 중반에 성지향성까지 확립하였으니 미래는 더 알 수 없는 미궁으로 빠져들어갔다.
언제부터인가 미래를 상상하는 것이 쉽지 않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40대가 된 내 모습, 50대가 된 내 모습, 60대가 된 내 모습을 상상할 수 없다. 어렸을 때는 막연하게나마 어떤 직업을 가지고, 가정을 꾸릴 수도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상상했다. '가정을 꾸린다'는 건 내가 아직 레즈비언으로 정체화하기 전 해맑은 상태였다는 걸 뜻하고,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건 희미하게나마 내가 이성애자는 아닐 거라는 걸 무의식 중에 알고 있었다는 걸 뜻한다.
성지향성이 얼마나 대단한 거라고 미래를 상상할 수도 없니? 라고 누군가는 물을지도 모르겠다. 또 어쩌면 성소수자가 아니더라도 지금 같은 불확실한 시대에 자신의 미래를 상상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라고 말할지도. 하지만 레즈비언으로 살아간다는 건 생각보다 많은 차이를 낳는다. 법의 보호를 받는 가정을 꾸릴 수 없고, 그건 제도적으로 자주 배제당한다는 걸 뜻한다. 청약 우선순위에 들어갈 일이 없고, 저임금 노동에 시달릴 것(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통계적으로 여성이 그렇다는 것쯤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이므로 돈을 모으기 어려울 테고, 결과적으로 안정적인 주거는 달나라 별나라 같은 이야기가 될 것이다. 여성의 임금 피크가 30대 중후반이라고 하니 앞이 더욱 캄캄해진다. 그래서 나는 점점 조급해진다. 40대를, 50, 60대를 상상할 수 있는 기반을 하루라도 빨리 마련해야 하는 게 아닐까?
하지만 그 기반은 어떻게 마련할 수 있으며, 무엇이 불확실한 미래의 폭을 좁혀준단 말인가. 가정을 꾸리지 않아도 제도적으로 배제당하지 않고, 여성이라고 저임금 노동에 시달리지 않는, 안정적인 주거생활과 인간관계를 영위할 수 있는 미래는 어디서 온단 말인가. (역시 시위에 나가야 하는 걸까.)
결국 돌고 돌아 내 이야기를 떠들어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내 위치에서 조금씩이라도 담론을 쌓고 말을 보태는 일. 들어주는 이도 얼마 없고,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처럼 미미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누군가는 내 이야기에 공감하고 함께 돌파구를 마련해보자고 손을 내밀 수도 있겠지.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고 계란으로 바위를 쳤으면 좋겠다. 계란으로 만들어진 강에 바위가 떠내려 가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