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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은 Sep 04. 2024

아프리카 한달 살기

4. 우울하기엔 세상은 넓다 (1)

정신병원 퇴원 후에는 매주 대학병원 교수님께 그대로 약물처방만 받으면서 점차 나아지고 있었다. 치료를 받으면서 미래의 불안보다는 현재에 더 몰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남은 휴직 기간에는 그간 시도하지 못했던 일들을 해보면서 나를 알아가고 내가 이루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차근차근 생각해볼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책에서 유시민 작가님은 인생을 구성하는 주요 요소 4가지가 일, 놀이, 사랑, 연대라고 하셨다. 내 삶의 의미가 부족하다고 느낀 이유는 그 중에서 연대가 부족해서가 아니었나 생각했다.


내 인생 첫 장은 유럽에서의 기억으로 이루어져있다. 유년시절 벨기에에서 살았던 경험은 내 삶의 무대가 한 나라에만 갇힐 필요가 없다는 가치관을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여러 문화권에 대해 아는 것은 삶을, 세계를 더 풍부하게 해준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서로 도우면서 살아가야한다는 기본적인 당위성에 그 주체가 사람을 넘어서 여러 나라들끼리 서로 교류하고 공생하는 세상이 되어야한다고 믿고 있다. 내 성장 배경에 따라 내 남은 인생 역시 글로벌 무대에서 한국 해외에도 좋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미루어두었던 국제개발을 공부했다. 국제개발을 하는 회사도 알아보았다. 국제개발 대학원도 지원해서 합격까지 하게 됐다. 원래 몇년간 하고 있었던 해외 아이들을 도와주는 봉사활동도 다시 열심히 했다. 그러나 한국에 갇혀서 개발국가들에 대해서 알아가기에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앞으로 개도국을 도울 수 있는 글로벌 일을 해야하는데, 어떤 방향이 맞을지 감이 안왔다. 아무래도 직접 경험이 부족했다고 느꼈다.

그렇게 내가 할 수 있는 불어를 쓰는 나라들 중 가장 멀리 있는 아프리카 대륙의 세네갈에 가기로 결심했다. 세네갈에서 짧은 시간이지만 나름 글로벌 대기업 법인에서 일도 해보고, 집을 구하고, 사람들과 어울리고, 자취를 하면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그 중 하나는, 개도국의 진정한 개발을 위해서는 일방적인 원조를 피하고 평등한 경제적 교류가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이는 직접 생활하면서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외국에서 온 국제기구, 대기업들이 유입되면서 세네갈 국민들의 경제적 형편에 비해 물가가 말도 안되게 높게 형성되어있었다. 10평짜리 방에 월세가 모두 100만원 이상이었고, 기본 식료품과 생활품 가격도 유럽보다 비싸고 미국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글로벌 기관들에서 근무하는 외국인들은 매일 고급 해산물을 파는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으며 오션뷰의 넓은 주택에서 지내고 있는데, 대부분의 세네갈 현지인들은 바게트 한개를 겨우 얻어먹으며 판자촌에서 모여 생활하거나 새로 공사 짓는 건물에서 인부로 일하면서 먼지와 흙이 넘치는 맨 바닥에서 잔다.


한달간 최대한 세네갈을 많이 경험하려고 애쓰면서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했다. 그리고 이러한 경제적 영향력을 바로 줄 수 있는 것이 정부도, 국제기구도, 시민단체도 아닌 기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기업은 정부보다 훨씬 효율적이고 빠른 방식으로 국제기구를 방불케하는 글로벌 영향력을 지닐 수 있는 주체이다. 그리고 기업 간 거래는, 특히 그것이 해외 거래라면 수출입으로 원조 없이도 개도국이 자립해서 경제적 성장을 이룰 수 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국민들의 건강과 올바른 비즈니스가 탄생할 수 있는 탄탄한 교육이 기본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건강과 교육 역시 비즈니스로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다. 각 개도국만의 경쟁력을 살려서 이를 지원해줄 수 있는 교육에 관한 비즈니스나 특히 신축 건축과 공사로 인한 대기오염이 심한 세네갈에서 친환경적인 비즈니스로 상호간의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여러가지 방법들을 생각하게 되었다.

이런 생각들을 이어가며 나만의 인사이트로 발전시킬 수 있었고 이를 내 삶의 목표에 적용할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세네갈에서의 경험으로 나에 대해서도 새로 알게 되었다. 우울증을 극복해내는 과정 속에서 한국에서는 해볼 수 없는, 특히 저 멀리 아프리카라는 완전히 새로운 환경에서 했던 경험은 몰랐던 나 자신의 또다른 모습들을 알아낼 수 있는 기회였다. 내가 겪었던 우울증은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 부족해서 새로운 일을 시도할 수 없는 내 모습에 좌절하고 불안해하고 무기력해지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지금까지 얘기했던 약물 치료, 심리 상담, 인지치료들이 내 모든 에너지들이 부정적인 생각에 갇히지 않도록 해주었다면 세네갈에서의 경험은 더 나아가 나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으로 흘러가게끔 해주었다.


지금까지 안전하고 풍요로웠던 나라에서 벗어나 나 혼자서 지구 저 반대편 나라에서 일도 하고 사회 생활도 하고 스스로 밥도 챙겨먹고 집안일을 했던 경험은 내가 자립할 힘이 있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내가 잠시 멈추어져있거나 심지어 도태되었다는 생각에 빠져들었던 것은 사실이 아니라 우울증이 만들어낸 허상이었다는 것을 더욱 확실히 알 수 있게 해주었다. 나에게는 그것을 증명하는 과정이 세네갈이었지만, 다른 분들도 세네갈이 아니더라도 어디에서든 각자 에너지를 회복해서 우울증에서 벗어나 한발 다시 내디딜 수 있는 경험이 분명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은 굉장히 넓고,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는 삶의 경험들도 무궁무진하게 펼쳐져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세네갈 마지막 날 일기의 일부>
'세네갈의 의미'

나는 그래도 세네갈이 좋았어
처음 자취하는것도 재밌었고
주말에 요리해먹는것도 즐겁고 뿌듯했고
모기장 안에서 모기 잡는 일도 재밌었고
인생 처음으로 집 전기도 나가고 바퀴벌레도 만나보고
바다 근처에서 살아보는게 꿈이었었는데 이렇게 이뤄도 봤어

특히 '세네갈에서는 사람들이 이렇게 사는구나' 하면서 현지인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하나씩 알아가는것도 재밌었어

생각해보니까 개도국을 인생 거의 처음 와본거더라고. 여행으로도 개도국은 한번도 안가봤어 그나마 몽골..? 맞아 근데 몽골도 화장실이 없고 야외에서 해결해야하고 난방도 없어서 장작 피우는것도 난 재밌었어 ㅋㅋㅋㅋ

남들이 생각도 못할 아프리카를 와보고 여기서 일도해보고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기업 소속으로 들어가서 이 회사는 무슨 시스템을 쓰는지, 어떻게 일하는지, 어떤 조직문화인지 알게된것도 좋았어. 그래서 여기는 진짜 나랑 안맞는 곳이구나 제대로 느끼기도 했어 ㅋㅋㅋㅋ

그래도 다카르에서 한식당이 3개나 있어서 점심마다 한식 먹을 수 있어서 그것도 좋았어
또 오랜만에 불어를 일상에서도, 업무하면서도 쓰는 것도 너무 좋았어

너무 다 좋았던 것 투성이인데, 쉽게 접할 수 있는 유럽 미국 아시아가 아니라 그냥 내가 아프리카에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대견했어
그리고 이 나라가 불편한건 좀 있어도 (전기가 나간다거나 공기가 안좋다거나 길거리에서 걸어다니기 힘들고 교통이 불편한거 사람들이 자꾸 말거는거 식당에 파리들이랑 벌레들이 엄청 꼬이는거 등등) 난 매력적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이 나라의 단점까지도 수용하고 적응해내는 나의 모습을 보고 어찌보면 대단하다고 생각했어
사람들은 세네갈 사는거 다 힘들거라고 직원들도 엄청 걱정했었는데 그걸 이겨내고 이 나라를 좋아하게 된 나 자신이 기특했어

적어보니까 생각보다 이 나라에 내가 많이 빠져들었던 것 같네 그리고 그런 나 자신이 좋아서 이렇게 떠나게 된게 많이 아쉬운것 같아
세네갈에서 가족들을 떠나보냈을 때 슬펐듯이 지금 내가 세네갈을 떠나보내는 것 같은 감정이 들어서 심란한 것 같기도 해

한국 직원들은 심지어 주재하고있어도 내가 굳이 이 나라를 좋아해야할 필요는 없잖아하면서 현지인들 멍청하고 사기친다고 욕하는데 그럼에도 난 현지인들의 선한 마음이 있다고 믿었어
그래서 공항 픽업해주겠다고 거짓말 친 마마두가 뒤늦게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나한테 고맙다고 감동한 걸 보면서 세상이 각박해서 사람들이 이런거지 결국엔 선한 마음은 다 통하는거라고 생각했어

너무 값진 경험을 준 세네갈 너무 고맙고 이 나라를 좋아하게 돼서 다행이야 ㅋㅋㅋㅋ 난 내 나라가 아닌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나라까지도 사랑할 줄 아는 특별한 글로벌 인재인게 맞았어 ㅋㅋㅋㅋ

한국 돌아가서도 '나 세네갈 갔다와본 사람이야'라고 말할 수 있는 자신감도 갖고 나에 대한 확신과 자존감을 높일 수 있게 된것 같아

그래서 섭섭하고 슬펐나봐 그래도 연이 되면 세네갈도 다시 만나게 되겠지 내가 그리워서 또 찾아갈수도 있는거고 ㅋㅋㅋㅋ 비행시간은 각오해야겠지만!!

이 나라의 전부를 보지는 못했어도 앞으로 더욱 잘 살아갈 수 있는 나라가 되길 바라고,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나 역시 더욱 내 분야에서 노력해야겠다! 안녕 세네갈~


세네갈 서쪽 바다 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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