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해서 응급실에 가고 결국 가까운 대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에 입원을 하기로 결정되었다. 의사 선생님께 진단서를 받고 회사에는 휴직을 냈다. 휴직을 할 때 불이익이 있진 않을까 눈치를 많이 봤지만, 오히려 몸과 정신이 아플만큼 1년 넘게 일해왔던 내 모습을 보고 다들 이해해주시는 것처럼 보였다. 어떤 분들은 밥이나 커피를 사주셨고, 좋은 책들을 선물해주셨다. 종교가 있으신 분들은 나를 위해 기도해주신다고도 했다.
회사를 정리하곤 입원 차례를 기다렸다. 입원 결정이 되었다고 바로 병실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었다. 공실이 나야 순번대로 들어갈 수 있었다. 나의 경우 2주~3주 정도 걸렸던 것 같다. 그 기간 동안 입원을 하기 전에 필요한 것들을 준비해놓았다. 우선 날카롭거나 묶을 수 있는 류의 본인을 해치게 할 수 있는 물건들은 일체 들여보낼 수 없었다. MP3를 제외한 어떠한 전자기기도 반입이 불가했다. MP3도 간호사 선생님들께 맡긴 다음하루에 3-4시간만 사용 가능했다. 그래서 기본적인 생활용품과 자유 시간에 안전하게 할 수 있는 것들(책, 드로잉북, 편지지, 필기구들)만 준비했다.
병원에서의 하루 일정은 매일 똑같았다. 오전 6시, 오후 12시, 오후5시 정도에 각각 아침 점심 저녁을 먹고 다같이 약을 복용했다.그 사이에 매일 30분~1시간 정도 교수님 혹은 펠로우 선생님께 진료를 받거나 추가적인 심리 검사를 받았다.나머지 시간은 전부 병원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이 있거나 자유시간이었다.
병원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에는 여러 종류가 있었다. 모여서 음악 감상을 하거나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거나 탁구를 치고 닌텐도 Wii를 했다. 정해진 통화 가능 시간에는 미리 보호자나 간호사 선생님께 부탁해서 충전한 티머니를 이용해서 공중 전화로 가족, 지인들에게 연락을 했다. 나는 보통 하루에 한두명씩 생각나는 사람들에게 전화를 하고 자유시간에 책을 읽거나 편지를 썼다. 그때까지도 운동중독이었기 때문에 맨몸 운동도 꼬박 꼬박 했었다.
자유시간은 굉장히 많고, 전자기기는 이용이 안되었기 때문에 하루가 굉장히 길게 느껴졌다. 아날로그의 삶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그럼에도 하루하루 알차게 보냈다고 느꼈던 이유는 매일 인지치료를 혼자서도 계속 연습했기 때문이었다.
인지행동치료(CBT: Cognitive-Behavioral Therapy)는 지금-여기(here and now)를 강조하는 심리치료 방식 중 하나이다. 입원을 하면서 선생님들께 처음부터 단계적으로 배우고 치료 받을 수 있었다.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고 도움이 되었던 것은 자동적 사고에 관한 치료였다.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자동적 사고란 어떤 상황을 접했을 때 그 상황을 순간적으로 평가하면서 나오는 자동적인 생각이다. 보통 상황이 일어나면 바로 감정과 반응이 나타나는 것 같지만 그 사이에 믿음체계에 기반한 자동적 사고가 끼어있다는 것을 아론 벡(Aron Beck)이라는 학자가 발견하면서 자동적 사고 치료가 고안되었다. (내 방식대로 이해하고 기억하는 대로 서술했기 때문에 인지치료에 관심이 있고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직접 전문가를 찾아가서 자세하고 더 정확한 설명을 듣기를 추천드린다.)
(출처: 사회복지교육연구센터, 2013)
위 예시를 적용하면, 보통은 책을 펼친 다음 바로 우울해지는 것 같지만 사실은 우울해지는 이유는 책을 펼친 상황 때문이 아니라 책을 펼치면서 내가 갖고 있던 자동적 사고("나는 무능하니까 책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할거야") 때문이라는 것이 발견되었다. 자동적 사고는말 그대로 스쳐지나가는 생각이라 평소에는 의식하기 어렵지만 자동적 사고가 부정적이게 되면 심리적인 문제를 초래할 수 있어서 이를 제대로 인식하고 바로잡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내 대표적인 자동적 사고는 완벽주의에 기반한 "모든 일들을 뛰어나게 해야해. 안그러면 나는 뒤처지고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할거야"라는 것이었다. 이 자동적 사고는 나를 향한 끊임없는 채찍질, 우울과 불안, 대인관계 회피, 자신감 상실로 이어졌다. 이를 치료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나에게는 자동적 사고 기록지였다.
(입원 당시에 적었었던 자동적 사고 기록지 일부)
이처럼, 나의 부정적이고 비합리적인 자동적 사고에 대해서 스스로 반박하게 되면 생각 외로 인지적으로 쉽게 순응이 되면서 생각을 차츰 바로 잡을 수 있게 되었다. 평소라면 주눅들고 우울해질 상황임에도 "에이 내가 잘할 이유가 뭐가 있어, 남들한테 인정받아서 뭐하려고? 스스로 만족하면 됐지"라고 더 긍정적으로 생각할 힘을 기를 수 있게 되었다.
이에 따라 불안과 두려움도 많이 줄어들었다. 나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니 뭐든지 실행해보고 도전해볼 용기가 생겼다. 자연스럽게 무기력감과 우울감을 느끼는 상황도 적어졌다. 하루하루 이런 치료들을 받으면서 약도 꼬박꼬박 먹으니 스스로 마음을 안정적으로 돌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3주의 치료 끝에 퇴원할 수 있었다.
정신병원을 다니면서 얻은 것은 적절한 약물치료와 효과적인 인지치료 외에도 우울증 환자로서 이 병은 나을 수 있다는 희망과 나와 같이 젊은 나이에도 정신과 질환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고 내가 절대 이상한 것이 아니라는 안도감이었다. 실제로 내가 있었던 병동에는 20명의 환자 중에서 절반이 조현병, 5명이 우울증 혹은 조울증, 그리고 3명이 정신지체, 2명이 치매를 앓고 계셨다. 치매를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의 환자들이 20대로 젊은 편이었다. 하루종일 같이 지내면서 대화도 많이 하다보니, 그들 역시 밝은 성격에 사람 좋아하고 인생을 열심히 살아오신 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픈 것이 결코 그들의 잘못이 아닌 것처럼, 나 역시 내가 잘못해서 우울증을 겪게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일상 생활을 하기 어려울 정도로 힘들 때에는 단기적으로라도 집중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에 입원하는 것도 방법이다. 항상 외부 스트레스를 그대로 견뎌가며 통원치료를 받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 있다. 그리고 편견과 달리 정신과 병동은 이상한 사람들이 가는 곳이 아니다. 오히려 열심히 살다가 아프게 된 사람들이 모인 곳이었다. 내가 있었던 병동에서는 모두들 같이 배려해가며 서로의 치료 과정을 응원해주고 어느정도 극복해서 먼저 퇴원하시는 분들에게는 누구보다 기쁜 마음으로 축하해주었었다. 이렇듯 정신건강의학과 병동이 도망칠 곳이 없었던 나에게 좋은 안식처가 되어주었던 것처럼 다른 분들에게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힘을 얻어갈 수 있는 곳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