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적인 선택을 할 뻔했던 경험이 서술되어 있습니다. 유의하여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잦은 우울감이나 무기력감이 느껴질 때에는 가까운 정신건강의학과나 응급실 방문을 권장드립니다. (자살예방상담 전화번호: 109)
내 7년간의 우울증을 요약하자면, 대입 스트레스로 인한 불안증 심화 → 성인 이후 번아웃과 무기력증 → 회사 슬럼프와 불면증 → 자해와 운동중독 → 자살시도 후 입원이었다.
우울증에 걸린지 4년 정도 되었을 때 회사에서 인턴을 하면서 처음으로 약을 먹기 시작했다. 그 후로 3년간 병원을 다녔다. 3년이라는 시간 안에는 내 멋대로 약을 몇번씩이나 중단하고 휴약했던 기간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것 때문에 치유가 더욱 늦춰졌다. 우울증을 앓은지 시간이 꽤 흐른 후에늦게 약 복용을 시작했던 것과 의사의 진료 없이 임의로 단약을 반복했던 것이 우울증을 악화시키는 치명적인 실수로 꼽히게 되었다.
우울증 증상 중 무기력증이 가장 심했을 때에는 몸조차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팔다리가 무거운 느낌이 들었다. 그런 무기력증을 겪고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 운동을 억지로 시작했었다. 그렇게 운동을 오랜만에 제대로 해보고서는 그 이후로 멈추지 않는 폭주기관차와 같이 운동에만 매달리게 되었다. 운동중독에 걸린 것처럼 일하는 시간 외에는 운동에만 미친듯이 몰두했다. 점심시간에도 회사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했다.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4-5시간을 운동에만 쏟았다.
어찌되었든 운동할 힘이 있어보이니 처음에는 우울증을 많이 극복한건가 싶었다. 하지만 그 시기에는 자해 증상도 같이 늘었었다. 돌이켜생각해보면 아무래도 일종의 강한 자극을 추구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불면증도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으니, 온전치 못한 정신 상태에 몸을 죽도록 괴롭혔던 것도 같다. 정신적 고통을 잠시나마 육체적 고통으로 돌리면 좀 나아지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강한 고통과 자극은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생각만 했던 자살 계획을 행동에 옮기려고 했던 날에도 퇴근하고서 어김없이 헬스를 하고 있었다. 회사 스트레스는 이제 감각이 무뎌질 정도로 최대치였고, 잠도 못 잔지 몇달째였다. 이제 그만 이 지긋지긋한 인생과 자살만을 떠올리는 사고회로를 끊고 싶었다. 그럼에도 운동을 했던 이유는 그래도 의지력을 쥐어짜내서 마지막 노력이라도 해볼까 싶어서였다. 운동을 해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오늘은 정말 삶을 끝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헬스를 끝내고나니 더욱 계획을 실행에 옮길 힘이 났다. 이제 난 할만큼 했다고 생각했다. 망설임 없이 택시를 부르고 가장 가까운 한강 다리를 목적지로 정했다. 도착한 한강은 조용하고 어둡고 아름다웠다. 12월 한겨울이라 사람도 별로 없고 찬바람만 매섭게 불었었다.
시간을 보니 대략 밤 11시쯤이었다. 12월 22일, 12시 정각이 될때까지 기다려보기로 했다. 힘들 때마다 써놓았던 유서를 꺼내고서, 가장 친한 친구들만 공유되어있는 인스타 계정에 올렸다.
죽기 직전, 마지막으로 듣고 싶은 목소리가 있었다. 힘들 때마다 항상 힘이 되어주었던, 누구보다 인생을 멋지게 살아서 존경하는 친구였다. 그 친구한테 전화를 계속해서 걸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12시가 되기 직전 막상 한강물에 뛰어내리려고 하니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렸다. 뜨거운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다. 그 친구가 너무나도 보고싶었다. 따뜻한 목소리로 나를 다독여주고 곁에서 나를 위로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때 누군가가 찾아왔다. 그 친구는 아니었다. 경찰차를 근처에 세워둔 한 경찰 분이셨다. 간절히 기다렸던 친구의 따뜻한 목소리 대신 들려온 건 피곤해보이는 듯한 경찰의 질문이었다. 여기로 어떻게 왔는지, 집은 어딘지, 춥지 않은지, 보호자 연락처가 어떻게 되는지 대답도 안하는 내 앞에 서서 그는 한참동안이나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30분 넘게 말없이 울고만 있자 같이 춥게 서서 기다리고 있는 경찰들도 힘들어하는게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한강다리에 경찰들이 한두명씩 모여들고 있었다. 새삼 그들이 나 때문에 추울 것이라 생각하니 죄송스러워졌다. 결국 그들의 만류에 경찰차를 타고 경찰서까지 따라갔다. 가는 길에 내가 한강다리에 위태롭게 서 있는 것을 보고 지나가는 행인이 경찰에 신고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인스타에서 내 유서를 보았던 친구들도 신고를 하면서 경찰들이 몰리기 시작했다는 설명을 들었다.
경찰서에 도착하고나서도 나는 끝내 부모님 연락처를 말씀드리지 않았다. 부모님께는 오늘 일을 알리고 싶지 않아서였다. 부모님 대신 그 친구를 불러달라고 했지만, 전화 연결이 끝내 되지 않았다.
2시간 지났을 때쯤 어머니와 동생이 경찰서로 찾아왔었다. 막상 가족을 보니 미안함과 죄책감에 다시 눈물이 쏟아졌다. 어머니가 운전해주시는 차에 몸을 싣고 동생 무릎을 베고서 펑펑 울며 집으로 돌아갔다.
그 다음날, 정신과 의사선생님의 권유로 어머니와 응급실을 갔다. 어머니께 처음으로 우울증을 앓게 된 것부터 자해와 자살 충동 증상들까지 모든 것을 다 터놓고 얘기할 수 있게 된 날이었다. 그날 연락이 뒤늦게 연결되었던 친구랑도 직접 만날 수 있었다.
응급실 진료 후 결국 정신과 입원이 결정되었다. 오랫동안 우울증을 앓았고, 더 적합한 약물 치료가 필요했다. 또 다시 자살 충동이 심해지기 전에 더욱 집중적인 치료를 받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다음 글에서 자세하게 다루겠지만, 결론적으로 입원 치료는 매우 효과적이었다. 그러면서도입원만큼이나 내 우울증 치료에 도움이 되었던 것이 주변 사람들의 응원과 지지라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고 누구와도 편하게 만나서 대화할 수 없었던 내가 처음으로 어머니에게 우울증에 대해서 얘기하고 주변 친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특히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깨닫고 마음을 열 수 있었다. 실제로 자살 시도를 하려고 했던 날 애타게 찾았던 그 친구랑은 그 계기로 평생을 약속하는 사이가 되었다. 이렇게 사람에게 의지할 수 있게 된 시점부터 내 진짜 치료가 시작되었다.
우울증은 혼자 걸리는 병이 아닌만큼, 치료도 혼자 할 수 없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따돌림 받기 싫어서 잘 보이고 싶었던 또래들, 성적이 중요하다며 대학 입시 때 공부하기를 강요했던 어른들, 일을 떠넘기고 과도한 실적 압박을 주었던 회사 상사들 등 사회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우울증을 얻었다. 그리고 나는 항상 내 편이 되어주었던 가족들, 힘들 때마다 나를 먼저 챙겨주었던 친구에서 지금은 삶의 원동력으로 내 평생 연인이자 약혼자가 된 제우, 매일 큰 기쁨과 사랑을 주는 내 하나뿐인 강아지 루루, 공감과 위로가 필요할 때 찾아와주는 친구들, 내 건강 상태를 지켜봐주시고 전문적인 도움을 주셨던 의사 선생님들과 심리상담 선생님까지 나를 위해주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우울증을 극복해냈다.
이처럼, 우울증으로 힘들어한다면 용기를 내서 주변 사람들에게 털어놓았으면 한다. 당신 편이 되어주고 도움의 손길을 줄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 또한 그 중 하나다. 글을 읽고 있는 본인 역시 주변의 누군가가 아프면 선뜻 도움을 주고 싶지 않겠는가. 당신 주변인들도 분명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