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성원 - '초등 국어 뿌리 공부법'
수능 성적표가 나왔는지 인터넷이 수능 관련 얘기로 떠들썩하다. 불수능이었다는 평가 속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점을 맞았다는 학생들이 기사에 실렸다. 부러움을 안고 클릭해 본 만점자 인터뷰에선 교과서 중심으로 공부했다, 국어공부에 시간을 많이 썼다, 초중등 시기에 독서를 많이 했다는 얘기가 눈에 띈다. '언어영역' 세대인 나는 '국어영역'이라는 말 조차 낯선데다 내가 수능을 보던 해에는 언어가 역대급 물수능이어서 입시 결과를 수학과 탐구가 좌우했었다. 그런데 올해는 국어가 상위권의 당락을 좌우할 거라고 하니 이것도 참 생경하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어 매주 한 권 이상의 교육서를 읽는 나도 아이의 국어학습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 그냥 제가 좋아하는 책을 많이 읽도록 하는 것 외엔 학원을 보낼 생각도, 문제집을 손에 들려줄 생각도 없다. 하지만 이런 나의 전략이 언제까지 유효할까 싶긴 하다. 마침 친한 엄마가 빌려준 좋은 책이 곁에 있었다. 긴 시간 입시 전문가의 길을 걸어온 민성원 소장님의 '초등 국어 뿌리 공부법'이란 책이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결국 첫 번째 모의고사에서 당연히 받을 거라 믿었던 1등급을 못 받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국어가 우리말이기 때문에, 나름대로 책을 많이 읽었으니까, 중학교 때 학원에 다녔거나 초등학교 때 논술학원에 다녔으니까 등등의 이유로 국어 실력을 탄탄히 쌓아두지 않다가 걱정하지 않았던 국어가 걱정해야 하는 과목이 되는 것입니다. 이 같은 현상으로 알 수 있는 사실은, 초등학교 때 튼튼한 국어 뿌리를 내려야 고등학교 때 열매를 거둘 수 있다는 것입니다. (p.41)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 국어 실력을 올리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국어 성적이 오르지 않아서 시간을 투입하면 다른 과목의 성적이 떨어지는 악순환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시간을 투입한다고 해서 사회나 과학처럼 쑥쑥 성적이 오르지도 않습니다. 당장 고등학교 학부모에게 전화해서 확인해보시면 정확한 답을 얻으실 수 있습니다. (p.43)
참 신기한게 입시는 고등학교 졸업할 무렵에 치르는데 고등학교 3년동안만 열심히 해서는 결코 좋은 결과를 받을 수 없다고 한다. 초등학교부터 중학교-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12년 동안의, 아니 심지어는 미취학 시절에 쌓아온 것들도 입시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특히 국어는 단기간에 성적을 올릴 수 있는 과목이 절대 아니므로 더 일찍 준비해야 한다고.
문해력이 안정되자 국어 과목뿐만 아니라 수학 성적도 향상된 것입니다. 수학교과서 속 수식과 문제들도 엄밀히 활자로 적힌 정보입니다. 문해력이 떨어지면 수학 개념은커녕 문제도, 숫자들의 계산식도 이해하지 못하게 되지요. (p.47)
난독증 학생의 담임을 해 본 적 있는 나는 이 부분에 깊게 공감할 수 밖에 없었다. 기초학력 전문 선생님의 진단으로 병원 치료까지 병행했던 아이었는데 학기초에는 수학을 참 잘했다. 글을 못 읽었을 뿐이지 숫자와 수학 기호를 인식하는 데엔 어려움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국어와 함께 수학 실력도 급격하게 떨어져버리더라. 그 학생의 케이스를 보고 문해력이 수학 학습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깨달았다.
국어야말로 유초등 때부터 시작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국어의 '하방경직성' 때문입니다. 하방경직성이란 수요공급의 법칙에 따라 당연히 내려가야 하는 가격이 어떠한 이유로 더 떨어지지 않는 성질을 뜻하는 경제학 용어입니다. 갑자기 웬 경제학 이야기인가 싶으시겠지만, 국어가 바로 이 하방경직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즉, 국어는 한번 실력을 쌓으면 아래로 잘 떨어지지 않는 성질을 지녔다는 말입니다. (p.59~60)
국어 실력은 일단 높은 수준까지 도달한다면, 이후부터는 새로운 지식을 배우기보다는 문제를 풀며 실전 감각을 깨우는 것만으로도 성적을 유지하기에 충분합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몇 시간 집중해서 공부하는 것으로도 충분히 실력을 유지할 수 있지요. 이런 국어의 하방경직성을 생각해본다면, 국어는 빨리 시작해서 기초를 다져놓아야 합니다.(0.62)
저라면 국어나 영어처럼 하방경직성이 높은 과목은 미리 공부해 놓고 상대적으로 하방경직성이 낮은 수학과 사회, 과학 등의 과목은 시험일에 가까워질수록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라고 하겠습니다. 그게 훨씬 더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전략이지요. (p.66)
'하방 경직성' 주로 경제에서 쓰이는 용어인데 학습에도 적용이 되다니! 국어는 하방 경직성이 있다고 한다. 한번 올려 놓은 실력이 아래로 잘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면 수학과 탐구는 국어와 영어에 비하면 하방 경직성이 적다는 것. 그래서 시험 직전까지 공부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정말 맞는 말인 것이, 고등학교때 모의고사에서 언어만 유독 잘하던 친구들이 있었는데 그 친구들은 시험이 어떻게 나오든 늘 언어 점수가 좋았기 때문이다. 학군지에 흔하게 도는 '영어를 먼저 끝내놓고 수학에 올인하라'는 말도 저런 맥락에서 보면 꽤 타당한 듯 하다. 물론 모든 과목을 골고루 하는 것이 좋겠으나 과목별 하방경직성을 고려한다면 어릴때 수학에 너무 많은 시간을 쓰고 국어, 영어를 등한시해서는 안 되겠다.
다음 장에서, 저자는 국어 뿌리를 내리는 8가지 습관을 설명한다. 그것들은 '1. 올바르게 읽는다 2. 올바르게 쓴다 3. 올바르게 말한다 4. 배경지식을 쌓는다 5. 정확하게 읽고 요약한다 6. 어휘를 늘린다 7. 시를 암송한다 8.정기적으로 문제를 푼다'이다. 8가지 습관이 모두 중요하지만 그 중 특히 인상적이었던 몇 부분을 발췌해 보겠다.
워싱턴대학교의 버지니아 버닝거 박사는 9세 이상을 대상으로 프린트하기, 영어 필기체 쓰기, 자판 치기를 실시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뇌 활동 패턴을 검사했는데, 손 글씨를 쓰는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더 많은 단어를 더 빠른 속도로 생각했을 뿐 아니라 더 많은 생각을 표현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만큼 아이가 직접 글씨를 쓰는 것 자체가 공부이고 두뇌 발달에 도움이 됩니다. (p.112)
'올바르게 쓴다' 파트에 나와 있는 대목이다. 컴퓨터나 스마트폰 자판으로 글씨를 쓸 때보다 손으로 쓸 때 더 뇌를 많이 사용한다는 것이다. 온라인 과제가 많은 요즘, 손으로 쓰는 과제를 내주는 교육기관을 선택해야 겠다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집에서도 손으로 쓸 기회를 많이 줘야 되겠다고 다짐한다.
올바르게 말하기를 완성하는 요소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완전한 문장으로 말하기, 경청한 뒤 말하기, 올바른 높임 표현 사용하기 입니다. 평소 대화에서 이 세 요소가 자연스러운 언어 습관으로 자리잡도록 해야 합니다. (p.118)
이 세 요소를 다 갖추어 말하는 어린이를 떠올리기만 해도 흐뭇해지지 않는가? 특히나 요즘은 저 세 요소를 다 갖추어 말하는 초등학생을 찾기가 힘들며, 이것들은 예의바른 언어습관과도 일맥상통한다. 바른 말하기 습관은 국어 실력뿐 아니라 타인을 대하는 태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배경지식 확장을 위한 독서는 먼저 넓게 그물망을 펼치듯 시작해야 합니다. (중략) 그물망을 넓게 펼쳐서 다양한 분야를 골고루 접한 다음에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펼친 그물의 코를 촘촘하게 짜 들어가야 합니다. 같은 역사책이어도 세계사, 동양사, 우리나라 고대, 중세, 근현대를 점진적으로 접하는 겁니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깊게 파고드는 단계로 생각하고, 접하는 지식의 수준과 범위를 더욱 넓혀주세요. (p.127)
배경지식 확장도 순서가 있다. 숲에서 나무로. 본격적으로 고배율 렌즈를 갈아끼워야 하는 시기는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그 전에는 넓게 골고루, 다양한 분야를 접하게 해 줄 것을 저자는 권한다.
요약하기는 들어온 정보를 머릿속 서랍에 차곡차곡 정리해 넣는 굉장히 중요한 훈련입니다. 이걸 빼먹고 진도만 쭉쭉 나가면 필요할 때 정보를 꺼내 쓸 수 없습니다. 공부는 했는데 아는 게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지요. 요약할 때는 정확성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학생들이 글을 읽을 때 꼭 연필을 쥐고 글에 표시하면서 읽도록 합니다. 주제어나 핵심어에 동그라미를 치고 중심 문장에 밑줄을 그으면서 읽어야 머릿속에 내용이 각인되기 때문입니다. (중략) 한 가지 꼭 명심해야 하는 점은 요약은 글을 읽은 즉시 해야 한다는 겁니다. (p.132~133)
저자는 어린이들이 요약을 시작할 때엔 연필을 먼저 들고 책에 표시하면서 읽기를 권한다. 주제어와 핵심어, 중심문장에 표시하기. 여기서 한 가지 나의 팁을 하나 얘기하자면, 먼저 문단을 나눠보는 것이다. 들여쓰기 된 부분을 구분하여 문단을 나누고 나눠진 문단의 중심문장을 찾다 보면 글의 구조나 주제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또한 요약하기는 책을 많이 읽지만, 종종 책 내용이 기억나지 않아 실망한 적이 많은 나에게도 유용한 해결책이 될 것 같다.
어휘력 끌어올리기 역시 연필에서 출발합니다.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표시하게 하세요. 초등 중학년 아이라면, 개인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책의 한 쪽당 5~10개 정도의 모르는 어휘가 있을 것입니다. 이때 바로 사전에서 찾아보면 좋겠지만 매번 사전에서 찾는다는 것이 사실 번거롭기도 합니다. (중략) 단어를 검색할 때는 뜻만 보고 끝내지 말고 예문도 함께 보게 하세요. (중략) 아이가 사전의 뜻풀이만 보고는 단어의 정확한 쓰임을 알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부모님이 옆에서 함께 뜻풀이와 예문을 보며 충분히 설명해주셔야 합니다. 이처럼 뜻과 예문으로 어휘 감각을 익히면 초등 중학년 이후, 아이의 어휘력이 일취월장하게 됩니다.
사실 여기 나와 있는 어휘 공부법은 아이가 학원에서 이미 하고 있는 방법이다. '영어'학원에서. 단어 시험 준비를 위해 매 수업 전 아이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와 예문, 동의어와 반의어를 익힌다. 그러고보니 좀 이상하다. 영어 단어는 당연히 따로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왜 국어 어휘에는 소홀했을까? 앞으로 책을 읽을 때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먼저 뜻을 유추해보고, 도저히 유추가 안 되는 낱말은 사전적 의미와 예문을 찾아보는 활동을 해봐야 겠다.
공인 시험을 보는 것은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는데 의미가 있습니다. (중략) 공인 시험을 치르며 자신의 객관적 위치를 가늠해보는 것도 앞으로의 학습 계획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됩니다. 올바른 한국어 사용 능력 여부를 측정하는 한국어능력시험, 청소년의 경제 이해력을 검증하는 주니어 테샛(TESAT)등 공신력 있는 시험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세요. (P.192~193)
대학 시절 텝스(TEPS)를 보러 시험장에 갔다가 내가 가장 나이가 많은 것 같아 주눅들었던 경험이 있다. 시험장을 가득 메웠던 건 중고등학생들, 심지어는 당시 내 나이의 절반쯤 되어보이는 초등학생들이었다. 자신의 실력과 객관적 위치를 가늠해보기 위해 공인 시험을 활용하기-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유용한 전략이다. 차이가 있다면 지금은 학생들이 볼 수 있는 공인 시험이 더욱 다양해 졌다는 것이다. 주니어 테샛같은 경제 이해력을 평가하는 시험도 있다니 활용하기에 좋겠다.
국어도 영어와 수학도 마찬가지로 내신이나 수능에서 큰 축을 담당하는 한 과목인데, 체계적으로 준비할 생각은 못하고 막연하게 '책 많이 읽으면 되겠지'라고만 여겼던 나의 안일함에 경종을 울려준 책이었다. 또 신기했던 건 저자가 제시한 '초등학교 시절에 준비해야 할 국어 뿌리 활동'이 거의 국어과 교육과정에 나와 있는 내용이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저자는 가장 좋은 국어 교재로 '교과서'를 꼽는다. 올바르게 말하고 읽고 쓰는 것은 당연히 국어과 전반에 녹아 있는 내용이고, 시나 어휘, 그리고 요약하기도 여러 학년에 반복적으로 나오는 것들이다. 여기에 더해서 집에서는 넓고 성기게, 다음으로 촘촘하게 배경지식을 쌓는것을 챙기고 문제를 푸는 활동을 더해주면 단단한 국어 뿌리가 완성되지 않을까 기대한다. 결국 '교과서 중심으로 공부했다', '학교 수업에 충실했다', '초중등 시절에 독서를 많이 했다'는 수능 만점자 인터뷰와 통하는 것인가. 아직도 공부의 왕도는 모르겠지만 믿을만한 사람들이 알려주는 정도를 따라 아이와 함께 걸어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