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미 - '성적 초격차를 만드는 독서력 수업'
서울이 아닌 지방에서 아이를 키우는 나는 대치동 학원가, 정확하게는 그 곳을 다니는 아이들에 대한 막연하면서도 구체적인 동경이 있다. 그 동네의 아이들은 영어를 우리말처럼 잘할 것 같고 수학은 한 세 학년쯤을 뛰어넘는 문제도 막힘없이 풀 것 같다. 마침 대치동 학원에서 강사로 일하는 사촌언니의 증언이 내 상상에 구체성을 더해줬다. "그 동네 고등학교 내신에서는 상위권 애들이 영어 지문을 다 외워. 그래서 1등급 컷이 99.xx야. 1점짜리 하나만 틀려도 2등급이 되는 거지." 헐. 탄성이 절로 나옴과 동시에 내 몸도 묘하게 긴장된다. 그곳은 긴장을 풀고는 살아갈 수 없는 빡빡한 동네일 것 같다. 그 빡셈에 몸을 떨면서도 묘하게 더 알고싶다. 대체 어떻게 공부를 하는 것일까? 이건 어린이를 키우는 엄마로서도, 공교육에 몸담은 사람으로서도 참으로 궁금한 일이다.
그런 빡센 곳에서 오랫동안 굳게 자리를 잡고 있는 '논술화랑'의 김수미 대표가 쓴 책이 있다. 그간의 노하우를 엑기스처럼 농축한 이 책을 읽고 난 후 나의 첫 감상은, '어? 생각보다 안 빡센데?'였다. 그보다 인간의 발달 과정을 잘 이해하고, 부모가 아닌 아이들의 입장에서 정말 중요하고도 필요한 교육을 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내게 빌려준 친구는, 이 책 정말 좋아서 사야겠다는 나의 말에 "그치? 내용도 좋고 읽다보면 저자도 좋은 사람인게 느껴져." 라고 답했다.
글만 읽어도 좋은사람인게 느껴지는 그 저자는 누구일까? 바로 논술화랑의 김수미 대표이다. 이 분이 쓴 '성적 초격차를 만드는 독서력 수업'을 이 브런치북의 20번째 글이자 마지막 글의 책으로서 소개한다.
5~6세 때 이미 다 뗀 한글과 숫자를 초등학교 1학년이 돼서야 가르친다니 그런 속도는 영 미덥지가 않다. 괜히 방심했다가 우리 아이만 뒤처질 게 자명한 일이다. 이렇게 아이의 사고력을 발달시키는 문제는 부모를 혼란스럽고 불안하게 만든다. 그런 마음을 잘 나타낸 말이 '애바애'가 아닐까. 이 말은 적절한 학습 진도와 학습 방법은 아이마다 다 다르다는 의미로 쓰인다. 일견 일리 있는 말이지만, 명백하게 틀린 말이기도 하다. 아이들마다의 개별성은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인간이라는 종이 가진 성장 특징은 개별성보다 훨씬 강력하다. (p.54~55)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는 최선을 다해 몸을 움직이는 것이 똑똑한 아이가 되는 비결이다. 그리고 강의나 설명 같은 추상적인 방법으로 이해시키기보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학습하게 해야 한다. 열 살도 안 된 아이에게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서 문제를 풀고, 단어를 외우게 하는 고학년의 교육법을 미리 적용하는 건 정말이지 어리석은 일이다. 정 그런 방식의 학습을 포기할 수 없다면 적어도 뛸 시간은 확보해줘야 한다. 단지 건강을 위해서가 아니라 중고등학교에서 공부할 사고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p.57~58)
'애바애' '케바케' 요즘 널리, 그리고 꽤 오래 쓰이고 있는 이 단어는 어디다 갖다 놓더라도 무적의 방어력을 지닌다. 적어도 육아에 관해선 말이다. 갓난아기 시절, 수면교육이 필요하냐 아니냐도 애바애, 영어유치원이 도움이 되느냐 아니냐도 애바애 아니었던가. 얼핏보면 인간의 다양성을 존중하는듯한, 진리가 없는 육아 세계에 몇 안되는 진리같았던 이 말을 저자는 부정한다. 아이들마다의 개별성이 분명 있으나, 크게 보면 인간이라는 종이 가진 성장 특징이 더 강력하다는 것이다. 아이의 성장 시기마다 적용할 보편적인 대 원칙이 있으며 우리 아이가 거치고 있는 초등학교 저학년 시기에는 몸을 많이 움직이는 것이 똑똑한 아이를 만드는 비결이라고 한다. 그러나 책상에 앉아서 문제를 풀리는 교육 방법을 채택하고 있는 대부분의 우리나라 교육기관의 현실을 고려할 때, 적어도 뛰어 놀 시간을 넉넉하게 줘야한다는 것. 어른들이 늘 말씀하시는 '아이들은 뛰어놀아야 해.'도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참으로 옳은 말이다.
그런데 한 가지 주의를 요하는 점이 있다. 너무 일찍 개발된 암기력이 사고력 발달을 오히려 방해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사고력 발달을 위해서는 개념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데, 암기가 익숙한 아이들은 개념에 대해 이해하려 하기보다, 개념에 대한 설명을 암기하고선 그 개념을 이해했다고 착각하는 일이 많다. 이해와 암기는 엄연히 다르다. 사고력은 지능의 일종이나 암기력은 지능이 아닌 독립적인 능력이다. 단순히 암기된 내용은 응용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잠시 머물렀다 사라져 버리는 기억에 불과하다. (p.64)
너무 일찍 개발된 암기력이 사고력 발달을 방해할 수 있다니! 머리가 띵했다. 생각해보면 부모 세대인 우리 역시 암기력을 지능이라 오해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무엇이든 줄줄 외우는 아이를 보면 똑똑하다고 생각하지 않은가. 하지만 그건 오해이며, 단순히 암기된 내용은 장기 기억에 저장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이에게 암기를 강요했다가는 사고력이라는 더 큰 자산을 잃게 될 수도 있다는 것, 명심해야겠다.
아이가 한글을 뗀 직후부터 3년 동안은 앞으로의 문해력 실력에 있어서 중요한 갈림길이자 골든타임이다. 첫 단추라고 할 수 있는 읽기 습관을 얼마나 단단하게 만들었냐에 따라 향후 읽기 능력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읽기 능력이 잘 만들어진 아이는 책 읽기가 재미있어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책을 자꾸 읽으려고 한다. 반면, 읽기 능력이 잘 만들어지지 못한 아이는 책 읽기가 재미없기에 책을 더욱 안 읽으려고 한다. 이렇게 몇 년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두 아이의 격차는 눈에 띌 정도로 벌어진다. (중략)우선 첫 번째 정독은 책을 9번 반복해서 읽어오는 거다. 100권의 책을 한 번씩 읽은 아이보다, 1권의 책을 100번 읽은 아이가 정독 습관 만들기에 훨씬 더 유리하다. (중략) 이렇게 한 권의 책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어보는 경험을 하고 난 후에는 두 번째 정독 과정인 책 메시지에 대한 대화와 독후활동이 이루어진다.(중략) 그런 다음, 세 번째 정독 과정인 글쓰기가 진행된다. (p.97~100)
이전까지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과 저자가 권하는 학습법이 거의 일치했다. 오히려 아이는 좋아하지 않으나 부모들이 유독 좋아하는 것-어려운 책 읽히기, 앉아서 문제풀기, 암기시키기-이 문해력 발달에 좋지 않다고 말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처음으로 아이들이 썩 좋아하지 않을 활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그것은 바로 '정독'이다. 심지어 같은 책을 아홉번 읽으라고 저자는 권한다. 그렇게 여러번 읽고 난 후, 책 내용에 대해 대화하기, 글쓰기까지. 한 권의 책을 꼭꼭 씹어 삼키고 제대로 소화시키는 과정이라고 한다.
정독 습관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한 가지 꼭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바로 만화책 읽기다. (중략)이렇게 만화책을 띄엄띄엄 읽는 경험도 당연히 습관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만화책을 읽히는 건 정독 습관을 획득한 이후에 시작해도 늦지 않다. 더구나 저학년 때에는 단지 많은 지식을 확보하려고 하기보다 적은 지식으로 다양한 생각을 해보는 경험을 누적해야 할 때이다. 선과 후를 잘 따져보지 않고 과정을 무시한채 결과만 흉내 내려 한다면 결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다. (p.105~106)
'저학년 학생에게 학습만화는 절대 안 된다'고 했던 나의 교사로서의 신념도 아이를 꺾을 순 없었다. 아이는 입학하고 얼마 되지 않아 만화책의 달콤함을 맛보아버렸다. 반항기 어린 말투로 만화책은 왜 안되냐고 묻는 아이에게 이젠 확실히 답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정독 습관에 방해되니까 안 돼.'라고.
세상에 상상력만큼 그 가치가 평가절하된 사고 능력은 없을 것 같다. 또 그로 인해 아이에게 책을 읽힐 때도 상상력을 자극해주는 책보다는 지식책을 권한다. 되도록 현실적인 지식을 주고, 막연한 공상은 일찍이 끝내고 빨리 논리적 사고를 하면 좋겠다고 여긴다. 그 결과 아이는 빈약한 상상력의 영토를 갖게 되고, 그 좁은 영토 위에 논리력과 창의력을 힘겹게 세워야 한다. 이건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p.122)
이 부분을 읽고 굉장히 뜨끔했다. 아마 나뿐 아니라 많은 부모님들이 그러실것 같다. 아이는 하루에도 몇 번씩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그런데 그 상상이 내게는 너무 허무맹랑하게 들리고 재미가 없다는 게 문제다.
"엄마, 만약에 이런 사람이 있다면요? 밥을 안 먹어도 100년동안 살 수 있는 사람이요."
-"하.하.하. 그런 사람이 있다면 정말 좋겠다. 하지만 없어." 이런 식으로 쌉 T처럼 대답하기 일쑤였다. 머릿속으로는, '아, 이런 얘기 말고 지적인 얘기 좀 했으면 좋겠네.'라고 생각하면서. 그런데 이게 아이가 영토를 넓게 세우는 과정이었다니! 그간의 나의 행동을 반성하고 앞으로는 영혼을 더 듬뿍 담아 아이의 상상에 맞장구 쳐주기로 다짐한다.
모든 전래동화에는 지난 수천 년의 시간동안 우리 문화권이 추구해온 가치관과 윤리관이 담겨 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아주 오랜 시간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졌고, 이제는 전래 동화라는 책에 담겨 아이들에게 전파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이 전래 동화를 보는 건 그 문화권에서 신뢰받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바탕을 만드는 일이다. 준비물을 갖고 오지 않은 친구에게 기꺼이 연필을 나눠줄 수 있는 아이와 내 걸 조금이라도 나누면 속이 쓰린 아이. 두 아이 중 누가 더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겠는가? 먼 미래는 차치하고 당장 누가 반회장이 될 확률이 높겠는가? (p.204)
생각해보자. 아이의 논리력이 무척 강해서 모든 것이 옳은지 틀렸는지를 판단하고자 한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세상이 정말로 논리적인 곳인가? 억울한 일을 당했지만 참아야 할 때도 많고, 손해가 되는지 알지만 양보할 줄 아는 태도도 필요하다. 단돈 100원을 손해봤다고 부들부들 떨고 어쩔 줄 몰라 하며 하루의 기분을 모두 망치는 사람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내 아이가 그런 부류의 판단력이 뛰어난 사람으로 크길 원하는가? (p.207)
그러니 위인전을 읽힐 때는 주인공의 결점을 굳이 들추어내기보다는 일단 주인공을 훌륭한 사람, 본받을 만한 사람으로 포장해서 인식시키는 책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이후 논리력과 비판력이 어느 정도 발달한 초등학교 5학년 이후에 가서, 지금까지 의심없이 믿어온 것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p.226~227)
학교 수업하면서나, 아이를 교육하면서나 늘 했던 고민이 이것이다. '전래동화에서 말하는 가치를 그대로 접하면 너무 사회에 순응하는 태도를 갖고 진취성을 잃어버리지는 않을까? 오늘날 그 이야기에 제기되는 비판들도 함께 제시해줘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이런 비판은 적어도 초고학년때까지는 접어둬야 한다는 것이 작가의 생각이다. 논리력이 강한 아이로 키우고 싶지만 잘 생각해보자. 논리'만' 특별히 강한 아이들은 어떤가? 학교에서 내가 가장 다루기 힘든, 자칫 매사 억울한 것이 많은 아이가 되어 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내가 가진 것과 친구가 가진 것을 빠르게 계산하고 석연찮은 일이 있을땐 기분 나빠 하는 아이. 아마 그런 아이로 키우고 싶은 부모님들은 계시지 않을 것이다. 비판적 사고는 나중에, 그 전에는 우리 문화권이 추구하는 가치관을 비판없이 받아들일 수 있게 하기. 위인전도 마찬가지로 인물에 대한 논란이나 비판은 굳이 들춰내지 않기로. 아이의 머리가 비판적 사고를 할 만큼 충분히 크기 전까진.
이 밖에도 초등학교 고학년 이후의 독서에 관한 내용이나, 독후활동으로써 글쓰기에 대한 구체적인 팁들이 책에 담겨 있다. 일단 소장해놓았으니 아이가 커가면서 그에 맞는 챕터를 읽기로 한다. 작가의 말마따나 25년 독서교육을 해온 노하우를 충실히 담은 책이었다. 작가가 운영하는 학원의 커리큘럼이 탐났으나 독서는 가정의 역할이 크다고 생각하기에 당장 학원을 등록하기보다 일단 이 책을 꼼꼼히 읽고 하나씩 따라해보는 것부터 시작해봐야겠다. 실제로 책에 수록되어 있는 추천 그림책을 지난 주말 도서관에서 빌려 왔는데 몇 번 읽자마자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이 되고 말았다. 아직도 이렇게나 그림책에 열광하는 아이를 보며 아차, 싶었다. 점점 그림이 적어지는 책을 아이에게 들이밀었던 나를 반성하기도 하면서. 그러고보면 그림책을 맘껏 읽을 수 있는 때도 얼마 남지 않았다. 조금 더 마음을 느긋하게 먹고 아이가 어린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특권처럼 즐기기로 하였다. (지금도 무겁지만) 아이가 더 무거워지기 전에 내 품안에 쏘옥 넣고 내 목소리로 책을 읽어주는 것, 몇 년 후의 내가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날이 될 지도 모르니까.
곧 아이의 방학이다. 그 말인즉슨 나의 자유시간도 이제 끝나간다는 것이다. 앞으로 한두달간 아이와 함께 우당탕탕 지지고 볶는 방학을 보내며, 아이가 2학년이 될 무렵 나도 다시 직장으로 향한다. 아이를 학교에 적응시킨다는 명목하에 냈던 휴직계였으나, 아이의 학교 적응보단 나를 일으켜 세운 한 해였다. 이렇게 글도 쓰고, 매일 운동도 하고. 낮잠도 루틴이 되어버린, 다시 없을 나만의 여유를 즐겼다.
처음에 정말이지 나를 위해 시작했던, 교육서를 읽고 기록한 글들이 이것으로 20개를 채웠다. 이제 많이 달라질 일상을 위해 연재를 여기에서 멈춘다. 대신 앞으로 육아가 만만치 않을때마다 이 스무권의 책들을 나름의 방식으로 소화한 이 목록들이 내게 도움을 주길 바란다. 아이를 행복하게 키우고 싶은 마음과 탁월하게 키우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고민하며 이 글을 읽어 주신, 나와 닮은 여러분들께도 감사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