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군지 이사를 계획하는 이유

by Applepie

요즘은 사립 초등학교 발표 기간인가 보다. 여기저기서 7세 아이를 둔 엄마들의 희비가 엇갈리고 사립학교 합격에 실패한 자들은 학군지로의 전학을 계획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지금 5세 끄트머리를 보내고 있는 우리 아이. 그렇다면 선배 엄마들의 요즘 모습이 나의 가까운 미래가 될까, 생각에 잠긴다.


내가 사는 곳은 서울도 수도권도 아닌 지방 광역시, 이 곳에도 전통의 학군지가 있다. 나는 신혼살림을 그 동네에서 하다 근처 다른 동네의 신축 아파트로 이사를 왔는데 5년 전 이사를 할 때에도 선배 선생님들의 만류가 있었다.

"어차피 애 초등 들어갈 때 다시 이 동네로 오게 되어 있어." 아, 그런가요?하며 대수롭잖게 넘겼던 5년 전의 앳된 나. 당시 나에겐 아이를 갖는다는 것이 막연하고 먼 일이었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수억을 더 얹어서, 10년은 더 낡은 그 곳으로 다시 돌아갈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학군지로의 이사를 계획하는 이유


1. 학원과의 접근성

그 시절 선배님들이 나의 이사를 만류하셨던 이유는 너무도 선명하다. 우리는 워킹맘이고 아이보다 퇴근이 늦어, 아이의 하교 후 일과를 함께 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초 저학년 어린 아이가 걸어갈 수 있는 곳에 아이가 다니는 학원들이 모두 있어야 한다는 가장 강력한 근거를 대셨다. 강력하고도 나의 이사계획의 거의 80%를 차지하는 이유이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동네는 그곳 외엔 없으니 말이다.


2. 개인적인 경험에서 나온 아쉬움.

20년도 더 전의 일이지만 떠올리면 고통스러운 기억이 있다. 중학교 2학년이었던 나는 세계사에 관심이 생겨 집에 있던 아빠의 세계사 책들에도 손을 뻗치기에 이르렀다. 그러던 어느날 아빠의 미국사 책을 읽다 궁금해졌다. 미국이 어떻게 건국된지는 알겠는데 미국 바로 위의 캐나다에 대한 설명은 없었던 것이다. 캐나다의 시작이 궁금했던 나는 학교 사회시간이 끝나고 선생님께 질문했다. 선생님, 캐나다는 어떻게 건국되었어요? 선생님의 답이 뭐였는진 사실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보다 더욱 또렷하게 기억나는 것은 뒤에 앉은 잘나가는 아이들의 비웃음, '쟤 되게 잘난척한다.' 그 말이었다.

소심한 나는 그 말에 두근거리고 위축되었다. 그 후로도 그때를 떠올리면 낯뜨거워지는 한편 '10대가 다 그렇지.'라고 위안하기도 했다. 내가 겪은 그 일은 10대 시절에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라고. 그런데 목동에서 유치원, 초중고를 다닌 사촌언니와 얘기하다 언니가 자란 동네의 분위기는 그렇지 않았다는 얘기를 들었다. 노는 아이들이 기를 펴지 못했으며 공부하려는 친구를 비웃지도 않았다는 것. 그 말을 듣고 어차피 바꿀수 없는 나의 과거가 아쉽고 후회스러워졌다. 내 어린시절은 바꿀수 없지만 내 아이의 어린시절은 사촌언니가 다녔던 곳과 비슷한 분위기인 곳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3. 사람은 은연중에 배운다.

최근 읽고 있는 책에서 마음에 깊게 남는 구절을 만났다. '사람이란 뭔가를 직접 배우기도 하지만 특정 분위기 속에서 은연중에 배우는 것이 더 많다.' 정말 그렇다. 특히 아이들의 경우엔 더 그렇다. 또래집단이라는 것이 아이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우리의 학창시절만 돌아봐도 짐작 가능할 것이다. 산만한 수업태도를 비롯하여 적당히 나쁜 말과 거친 행동은 쉽고 재밌어서 주변 친구들에게 잘 전염된다. 아주 거칠지만 시각적 이해를 위해 아이들을 물감에 비유해보자. 대부분의 아이들이 흰색 물감인데 유독 검은색이 진한 아이들이 있다. 이 물감들은 섞이며 회색이 되어간다. 키득키득 웃으며 나도 모르게, 하지만 기꺼이 회색이 되어 가는 학생도 있을거고 검은색이 내게 오는것이 싫어 온 힘을 다해 흰색을 지키는 학생도 있을 것이다. 이 아이는 자신의 흰색을 지키기 위해 그만큼 스트레스를 받으며 다른데 써야할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을 것이다. 학군지이든, 다들 꺼리는 학군이든 검은색을 띤 학생은 있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학군지 학교도 학폭이 굉장히 많이 열린다고 들었다. 한 선배 선생님께서는 '♡♡초등학교 아이들은 공부로 받은 스트레스가 5,6학년쯤 폭발해서 학폭이 꽤 악랄하다.'는 얘기도 들었다. 거기라고 검은색이 없겠는가. 하지만 그 색의 진하기나 빛깔 차이는 있을 것이다. 유독 진한 학교는 경찰서에서 자주 연락이 올 정도거나(저요...) 생전 못 들어본 욕을 학생에게 들어본다거나, 교과서 진도를 나가기 전에 한참 시간을 들여 전 학년 학습내용을 복습해야 하는 일이 심심찮게 일어나니 말이다.


공교롭게도 나는 교사들이 선호하지 않는 학교에만 근무하여 학군지를 경험해본 일이 없다. 그리고 내가 이런 글을 쓴다는 것이, 혹시 우리 학교의 학생들과 학부모님들께 실례가 되진 않을까 걱정이 된다. 내가 경험한 학교의 학생들을 싸잡아서 흉보는 글처럼 비춰지지 않으려고 나름 애를 썼으나 효과가 있을는지는 모르겠다.


어제는 우리반 학생이 '성기를 강조하는 동작을 한다'는 얘기를 방과후 선생님께 들었고 오늘은 공부하기 싫다며 책을 던지는 학생을 혼내고 달래서 보충지도를 했다. 이 아이들 역시 올해 나의 아이들이기에 나는 아이들의 감정을 읽으려 노력하고 더 재밌고 기억에 남는 수업을 해서 학력수준을 올리고자 노력한다. 그런 일이 힘들지만 나름 재밌고 보람되니 지속할수 있다. 하지만 내 아이는 그런 학생들을 많이 안만났으면 좋겠다. 나는 성인이고 교사로 문제학생들을 만나지만 내 아이는 또래로 만날 것이니 말이다. 아니, 이런 논리적인 설명 없이도 그냥... 내 아이는 안 만나게 해 주고 싶은 마음, 이것이 부모 마음인지는 모르겠지만 솔직한 나의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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