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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pplepie Nov 19. 2023

경험은 어떻게 유전자에 새겨지는가-데이비드 무어

오랜 궁금증을 풀어준 작은 촛불같은 책


최근에 신문을 구독하기 시작했다. 토요일 신문엔 신간에 대한 페이지가 있는데, 나의 눈을 사로잡은 책이 있었다. 바로 '경험은 어떻게 유전자에 새겨지는가'이다.



 난 요즘 부쩍 유전자, 환경, 뇌발달 이런것들에 관심이 많다. 이 브런치에서 너무 많이 한 얘기라 민망하기도 하고, 나 또한 또래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자유롭지 않은 비판인데 요즘 교실에서 만나는 아이들은 


1. 경계성 지능, 정서장애(이것도 상당부분 뇌에서 기인한다고 본다)등 교사 힘으로 할 수 없는, 임상적 범위에 드는 아이들이 많고

2. 임상적 범위에 들지 않는 아이들에게도 전반적으로 집중력 저하, 학습부진등의 문제가 많이 보이기 때문이다.


나는 교실 현장을 보는 일개 교사이지 거시적인 원인을 분석할만한 사회학자나 과학자가 아니므로 미세먼지나 플라스틱같은 환경 오염, 스마트폰 중독이 원인이겠거니 짐작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것들이 이렇게 아이들을 바꿔놓을수 있나? 인간은 유전자의 노예 아니었나? 라는 물음이 최근 몇년간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있었고 그러던 차에 이 책은 반가운 실마리를 제시해 주었다.


'후성유전'이라는 것은 쉽게 말해 유전자의 스위치같은 것이다. 내가 갖고 있는 수많은 유전자 중 어떤것을 켜고 끌지를 정한다는 것. 전통적인 유전의 개념-생식세포로 후손에게 전달되는-을 넘어 나의 각각의 dna를 켜고 끌지를 주관하는 무엇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도 대물림이 된다는 것이 후성유전의 요즘 연구들이다. 후성유전이라는 주제를 탐험함으로써  어렴풋하게 짐작하던 것들을 어느 정도 확신할 수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내가, 여러분이 생각한 것 그것이 다 옳다.



아이들을 잘 돌보고(양육)

지속적인 건강과 발달을 증진할 수 있는 방식으로(섭식, 환경오염)

당신이 무슨 일을 하는가(경험)

이 모든 것이 현재의 나와 나의 후손들을 만든다.


그럼 아이를 따뜻한 사랑을 줘서 키우고, 좋은 것 먹이고, 좋은 경험 하게 하면 잘 크는가? 

그건 또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다시 말해, 유전자 결정론만큼 '후성유전 결정론'도 틀렸으며 매우 위험하는 것이다.







아는 사실이지만, 태어난 아기가 건강하고 똑똑한 아이로 자라게 할 그런 '예방접종'한방이 될 수 있는건 없다.


그리고 어떤 유전자 하나가 표현형을 결정한다는것 대단히 잘못된 얘기라고 한다. 그러니 '아빠가 키가 작으니 애도 작지.'라거나 '엄마가 영양가 있는 음식을 안해줘서 키가 안컸지.' 모두 틀린 얘기인 것이다. 키라는 표현형은 많은 요소들의 상호작용으로 결정되는 것이지, 유전자나 섭식같은 요인 하나가 키를 100%결정하는 요인이 될 수는 없다.


또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후성유전에는 옳고 그름, 혹은 선악이 없다는 것이다.


좀 억울한 얘기지만, 예를 들어 엄마 생쥐가 새끼쥐를 물고 빨고 애정을 듬뿍 줘서 키웠어도 그 윗대 수컷 조상이 부모로부터 방임을 받았다면 그 새끼쥐는 엄마가 얼마나 살뜰하게 키웠든 상관없이 우울증 가능성이 증대된다.


이것도 참 억울하다. 내 조상님중에 어떤 분이 임신때 단백질을 충분히 섭취하지 못했다면, 조상님과 나 사이의 다른 조상들(증조할머니, 할머니, 엄마 등)이 아무리 단백질 잘 챙겨먹었더라도 나는 비만일 가능성이 커진다. 저단백 대신 고지방을 드셨더라도 마찬가지이다. 

이런건 공정하지 않고 억울하다 생각할 수 있지만 과학이란 내가 억울한지 아닌지엔 관심이 없다.


이 책을 한창 읽고 있을때 생물학 박사인 친구에게 연락을 했다. 나 요즘 후성유전 관심있어서 책 읽고 있어~ 블라블라 했더니 친구의 다소 시큰둥한 대답,


'근데 그거 밝혀진거 별로 없지 않아?'


친구의 말대로 후성유전은 지금까지 연구로는 일반화하기 불충분하고 아직 보완되어야 할 것들이 많다. 앞서 썼듯 후성유전 결정론이 참 위험한 이유이다. 하지만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더라도 분명 얻어갈 건 있다.


dna가 나의 전부가 아니며 발달은 전 생에에 걸쳐 이루어진다는 것, 인간에게는 환경의 힘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 환경오염의 위험성은 과소평가되었다는 것(생각보다 더 위험함)


그리고 맘이 편해지는 대목도 있었다. 이 책의 대부분의 연구는 쥐(설치류)로 이루어졌는데 인간은 설치류보다 훨씬 복잡한 존재라고 저자는 말한다. 즉, 조상이 내게 과메틸화나 메틸화가 덜된 유전자를 줬다고 반드시 망하는 것은 아니라고 받아들이니 맘이 편해졌다.

또, 정신질환이 있을땐 약이 가장 효과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약이 후성유전(dna의 메틸화 정도)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여전히 학교 현장에선 약에 거부감을 가진 부모님들을 많이 만난다. 그 학생 하나로 교실은 쑥대밭이 되어가는데도 약은 싫다며 완강하게 거부하시곤 한다. 그들을 설득할 순 없겠으나 교사로서 내가 학생이 복용하는 약에 대해 더는 의구심을 갖지 않을 것 같다. 더 경력과 내공이 높아지면 보호자에게 적극적으로 약 복용을 권할 날도 오길 바란다.


빌려읽었지만 구입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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