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일 후 병원에 다시 와 헬리코박터균 검사와 조직검사 결과를 듣기로 하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조금 센치해졌다. 남편은 무슨 위 xhwyw%@^%#(영어라 못알아들음) 가지고 그리 심란해하냐 했지만 원래 내 손밑의 가시가 가장 아픈법이라지 않나. 고작 1년만에 많은 용종을 자라게 하고 궤양을 키운 나의 위가 참 안쓰럽게 느껴져, 드라마 주인공처럼 지난 1년을 반추해보기 시작했다.
2023년, 나의 키워드를 하나만 꼽으라면 '버팀'이었다. (사실 '존버'라고 하고 싶다) 나는 발이 까매지도록 수면 아래서 헤엄치고 있었는데 사람들은 나더러 참 무던하다, 멘탈이 강하다 했다.
같은 학교 선배 선생님이 학부모 공격에 못이겨 휴직을 쓰시던 무렵, 교감선생님이 그 문제의 조언을 구하러 경험자인 나를 찾아오셨다. 길지도 짧지도 않았던 대화 말미에 교감선생님께서는,
"아마 선생님 안에 그런 강한 힘이 있었겠지요." 라고 하셨는데 그 말씀이 참으로 황송하게 느껴졌다.
옆 반 선생님도 자주 내게
"자기는 스트레스도 별로 안 받는것 같아."라고 하시곤 했는데 나는 그런 칭찬이 좋았다. 내가 가장 꿈꾸는 인간상이 바로 무던하고 멘탈이 강한 사람인데 내가 그 말을 듣는다니, 너무 신나서 그런 말을 해주는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더 그런 척을 했다. 우리반 금쪽이의 문제행동이 더 다양해지고 정도도 심해지며 나는 와들와들 떨면서 눈을 뜨고 있는 밤을 더 많이 보내게 됐지만 여전히 괜찮은 척 했다. 이 정도는 가벼운 불평쯤이라는 듯, 이겨낼 수 있다는 듯. 늘 괜찮은 모습을 보이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인양 버티고 버텼다.
나는 왜 가족도, 가까운 친구도 아닌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려고 그렇게 버텼을까 지금 생각하면 좀 허무하다. 그들의 인정이 왜 내게 그렇게 중요했던가. 내가 그런 인정으로 자존감을 채워야 할만큼 약한 사람도 아니거니와 더 중요한 것들이 내겐 많았는데 말이다. 물론 '존버'정신은 매우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힘듦을 남에게 잘 내색하지 않는 것이 징징대는 것보다야 더 훌륭한 사회생활 태도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것들은 나를 찌르지 않는 선까지만 의미가 있는 거였다.
'괜찮아야 해. 이런건 웃으며 넘기자. 나는 걔 담임을 해도 도망가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자.'며 내가 나를 찌르는 동안 위벽은 점점 헐어갔을 테다.
한동안 나를 지탱해왔던 '존버'정신을 이제 그만 놓아야 할 시기가 왔음을 인정한다. 얼마 전에 아주 재밌게 읽은 권여선 작가의 '각각의 계절'의 '하늘 높이 아름답게'라는 단편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각각의 계절을 나려면 각각의 힘이 필요하지요."
존버의 힘으로 지나온 계절은 끝났고 이젠 조금 부드러운 힘이 필요한 계절이 되었다. 약을 제때 먹고 건강한 식사로 나를 돌보는 힘, 힘들면 '못하겠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힘.
계절은 계속 바뀔테고 그땐 또 존버가 필요해질지도 모른다. 훗날 힘을 내기 위해서라도 지금은 꼭 버티고 있던 힘을 스르르 풀기로 해본다. 안해본 일이라 조금 두렵지만, 그래도 뭐 별일이야 있겠어?나 위궤양인데 어쩌라고? 더는 못해! 정신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