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급붕괴' 혹은 '교실붕괴'란 내겐 한 6~7년 전까지는 듣지도 쓰지도 않았던 말이었는데 요즘은 참 쓸 일이 많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이 단어가 얼마나 널리 쓰이는지 포털에 검색해보았는데 의외인 점이 있었다. 나는 최근 학교의 상태를 보고 교사들이 만든 단어겠거니 생각했는데 웬걸, 이 단어의 고향은 일본이었다. '학급붕괴(學級崩壞, 일본어: 学級崩壊 がっきゅうほうかい갓큐호카이)는 일본에서 들어온 말로 교사가 학생들에 대한 통제력을 잃은 상태를 일컫는다'(출처: 위키백과 한국어)
교사가 학생들에 대한 통제력을 잃은 상태라니, 백과사전답게 간단하면서도 기가 막히게 진의를 잘 품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럼 학급붕괴가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안나 카레리나의 첫 문장,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아 있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처럼 학급붕괴의 원인도 다양하다. 골고루 반편성이 되지 못한 경우(초등은 대개 1학년이 그렇다. 신입생 면접에서 고작 몇 분 본 아이들을 잘 파악해서 고루 나누기란 정말 어렵다)도 있고, 반에 초특급 문제 학생이 있는데 이 학생의 파급력이 큰 경우, 그럭저럭한 문제아 몇명이 공교롭게도 함께 시너지를 내는 경우, 학부모가 담임의 정당한 생활지도를 문제 삼아 담임이 있어도 힘을 쓰지 못하는 경우 등이 있겠고 대부분의 붕괴된 학급의 경우엔 앞서 열거한 이유가 2개 이상씩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또 교실붕괴는 1학년에 가장 흔하게 일어나는데 내가 근무했던 학교들을 보아도, 작년에 많은 교사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고 서이초 선생님, 대전 용산초 선생님의 학급 또한 붕괴된 1학년 학급이었다는 점을 보아도 그렇다.(아주 큰 표본으로 정교하게 낸 결론은 아님을 주의해 주시길)
앞선 글에서 말했듯이 나는 복직한 후 2학년 담임을 여러해 연속으로 맡고 있는데, 매년 2학년들을 보다 보니 흥미로운 발견을 하게 되었다. 문제의식을 갖게 된 상황은 다음과 같다.
"저희 반 **이는 학습이 너무 안돼요. 제 말을 거의 이해하지 못하는 데다 간단한 가위질도 힘들어하는데 학습 장애가 아닐까요? 부모님께 검사 권유를 해볼까 싶어요."
-"작년 선생님께 먼저 여쭤보지 그래? 작년에도 학습이 잘 안됐는지."
"아, 작년 선생님 지금 저희학교에 안 계세요. **이 1반이었거든요."
-"어머, 걔도 1반이었어? 걔까지 신경쓸 형편이 안됐겠다. 우리반 @@하고 $$, 자기 반 ##랑 %%, 3반 !!도 1반이었잖아. 그 애들만으로도 충분히 힘드셨을텐데 학습장애 학생까지 신경 쓰기 힘들지."
대화 속 '1반'은 작년 1학년 1반을 말한다. 학급붕괴가 일어나 견디다 못한 담임이 휴직을 내고 2학기에 교체됐던, 게다가 2학기에 오신 선생님마저 한 학기를 간신히 버티신 후 내신을 써서 다른 곳으로 가셔버린, 작년 단연 가장 유명했던 학급이다. 우리 학교는 2년 연속으로 1학년의 한 반이 붕괴되었고 담임 교체가 몇 번 있었다. 그리고 그때의 1학년 아이들이 2학년이 된 해에 나와 만났다. 그런데 붕괴되었던 학급 출신의 아이들은 학습면에서나 생활면에서나 문제가 있는 경우가 이상하리만큼 많았다. 물론 운이 몹시 나빠서 문제가 있는 아이들이 그 반으로 죄다 편성된 것일수도 있겠지만 그런 우연이 2년 연속으로 일어난걸 보면 비단 반편성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말하면, 다른 반에 갔으면 그렇게 되지 않았을 아이들이 그 반에 있으면서 좋지 않게 변해버린 것이다.
사실 교사가 보기엔 이게 새삼스러운 결론은 아니다. 늘 아이들의 배움에는 나의 몫보다 또래의 몫이 더 크다고 생각해왔다. 학교에 와서 교사인 내가 적극적으로 가르치는 것을 배우는 것이 40%쯤 되고 또래를 보고 은연중에 배우는 것이 60%쯤 되는것 같다. 나의 유치원생 아들만 해도 유치원에서 똑똑한 친구가 하는 말을 듣고 '엄마, 억보다 더 큰 수가 뭔지 알아요? 조예요.' 해서 기특함을 유발하기도 하고 친구 누구처럼 자기도 작가가 되겠다고 종이에 이야기를 쓰는 수준높은 취미를 갑자기 갖게 되어 그 친구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든 적이 있다. 그런가하면 놀이터에서 초등학생 형과 고작 몇 시간 함께 놀고 나서 내가 가르쳐준 적이 없는 다채로운 나쁜말들을 구사한 적도 있지 않던가. 마찬가지로 담임선생님의 통제를 벗어난 1학년 교실에서 문제학생들이 하는 행동을 다른 아이들은 어렵지 않게 보고 배웠을 것이다. 매끈하고 뽀송뽀송한 습자지가 물감을 흡수하듯이. 또, 수업이 제대로 이루어졌을리 없으니 그 반 아이들의 학습 결손은 눈덩이처럼 쌓였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취약한 학생들은 사교육이나 엄마표로 학습 결손을 메울수 없는, 공교육이 전부인 아이들일 테다. 무너지는 교권만큼이나 같은 반 아이들의 학습권 또한 빠르게 붕괴되고 있다는 것을 아실는지. 또 슬프게도 이 시기에 몸에 밴 나쁜 습관이나 학습 결손은 다음해가 되어도 잘 회복되지 않는다. 교사로서 정말, 진심으로 나는 이 사실이 슬프다.
이렇게 1학년 학급이 붕괴되기 쉽고 그 여파가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치명적이라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는 나는 또한 내년에 아이를 학교에 입학시킬 예비 학부모이기도 하므로 내 아이의 반이 붕괴되면 어떡해야하나 벌써부터 시뮬레이션을 돌린다. 나는 내년에 부디 학교를 입학한 아이의 입에서 '우리 선생님은 무서워.'라는 말이 나오면 좋겠다. 그렇다면 '담임선생님이 엄할 수 있는 환경이 유지되고 있구나.', '교권이 무너지지 않은 교실이구나.' 하며 마음을 놓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교사가 아닌 엄마들의 마음은 좀 다른 것 같다. 고작 1학년, 아직도 내 품안의 아기같은 아이의 입에서 선생님이 무섭다는 소리가 나오면 엄마 마음 또한 불안해지며
'선생님이 너한테만 그래?'
'선생님이 정확히 뭐라고 하셨어?' 등의 유도 질문을 한 소쿠리 쏟아 놓고 그 질문에 아이가 걸렸을 때 성난 목소리로 민원 전화를 걸고 심할 경우 정서적 아동학대 신고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내 또래의 엄마들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부디 그러지 마시길 바란다. 무서운 선생님은 한편으론 금쪽이로부터 내 아이의 학습권을 보호해주는 울타리임을,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이라도 이해해주셨으면 좋겠다.
또한 안전한 학급을 세우는 것이 지금처럼 운에 의한 것이 아니게 되길 바란다. 학급 경영이 교권을 침해하는 진상 학부모나 심한 문제 학생을 만나는지 여부나 개인의 카리스마에 좌우되지 않고 더욱 탄탄한 시스템에 의해 지지되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교사에게도, 그보다 아주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도화지같이 깨끗한 아이들에게도 안전하고 행복한 교실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