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달 초 애틀란타로 학회를 다녀왔습니다. 학회 도중 짬을 내어 친구들과 인형극 박물관에 다녀왔는데요. 그곳에서 생각지 못하게 한국의 꼭두각시 인형을 맞닥뜨리게 되었습니다.
꼭두각시 인형을 제대로 들여다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제게는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학예회 때 아이들이 추는 간단한 춤으로 더 익숙한 이름이었거든요. 그리고 일상 표현 중의 하나로, 누군가 남의 의도대로 힘없이 움직일 때를 나타내는 단어로 더 잘 알고 있었습니다. 다음은 인형극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던 꼭두각시 인형들의 모습입니다.
사실 이번에도 친구들의 관심이 아니었다면 그냥 지나칠 뻔했어요. 그런데 각각 중국과 대만에서 온 친구들이, 제게 이런저런 질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전 꼭두각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들에게 뭐라도 설명하기 시작했죠. 스스로 설명하면서 알게 된 것이 많아, 저희의 대화를 극본 형태로 재구성해봤습니다.
에바(중국) 여기 이 여자는 얼굴이 왜 이런 거야?
민우(한국) 글쎄, 늘 안 좋게 그려지는, 질투 많은 본부인 역할이라 미운 모습으로 표현하는 게 아닐까? 밑의 젊은 여자와 대비되는 게...
민우, 전시에 동반된 설명을 읽어본다.
민우 아 그게 아니라, 오히려 본부인의 아픔을 주제로 그리는 거네. 안 좋은 인물로 표현하려고 그런 게 아니라, 이 인물의 고생과 힘듦에 대한 측은지심의 마음이 담긴 표현이었어.
안루(대만) 고생과 힘듦이라니?
민우 (잠시 고민한다) '한'에 대해서 들어본 적 없어?
에바, 안루 응.
민우 '한'이라는 건 쉽게 말해서 오랫동안 묵히고 쌓여온 슬픔과 분노야. 한국 예술의 동력을 나타내는 개념인데, 일제 강점기에 일본 예술인에 의해 소개되는 바람에 지금까지 학계에서 의견이 분분한 개념이지. 그 예술인은 사실 한국 예술에 매료되어 나름대로 열정적인 분석을 내놓은 건데, 일본 정부에서 이걸 식민 지배의 도구로 이용하는 바람에 문제가 되었어. 한국인은 근본적으로 부정적이고 나약한 본성을 가지고 있다고, 그래서 식민지배가 필요하다고, 강점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쓰였거든. 최근 한국학의 동향은 '한'을 과거의 개념으로 이만 보내주고 그와는 또 다른 현대 한국의 모습에 집중하자는 분위기야. 사실 나는 그에 반하는 주장을 하는 연구를 하고 있어. '한'은 일종의 문화적 무의식인데, 현대 한국이 몇십 년 전과는 표면상으로 달라 보일지라도 우리의 무의식이 바뀌는 것에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그래서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한'은 여러 형태로 여전히 한국인의 예술적 표현에 엄청난 동력이 되고 있다고 생각해. 특히 이런 아픔과 슬픔이 반드시 부정적이고 나약한 것만이 아니고, 오히려 더 강함으로 이어지는 개념이라고 생각해서, 그 연결점들을 살펴보고 있어.
에바 그렇구나. 근데 왜 그렇게 아픔과 슬픔과 분노가 많은 거야? 그리고 왜 그게 본부인으로 나타나는 거야?
민우 가부장제와 가난 때문이었거든.
에바 가부장제와 가난?
민우 응. 우리는 열강들 사이에 껴서 늘 전쟁과 가난으로 바람 잘 날이 없었어. 중국, 일본, 미국이 계속 침략해 들어오는 동안 삶은 몇 번이고 계속 무너졌고 사람들은 죽어나갔고, 재건하면 또 무너지고, 또 재건하고 또 무너지고, 그걸 반복하는 동안 가난을 면할 일이 없었지. 가족이 죽어나가는 것도 일상다반사고. 20세기에 들어와서는 일제강점기와 분단으로 더하면 더했지. 미군정도 사실 너무 많은 학살과 연관되어 있고, 그건 지금도 이어지고 있어.
워낙 못 살다 보니, 지배계층에서는 유교 체제를 이용해서 위계질서를 강화하고 그로부터 자신들이라도 조금이나마 편함을 누려보려 했어. 그게 가부장제였기 때문에, 가뜩이나 못사는 환경에서 여자들이 밑바닥에 놓여 뼈 빠지게 몸과 영혼을 갈아 넣어 우리 삶을 유지하게 된 거야. 그래서 그 설움을 버티면서 인생을 살아내고 자식을 지켜낸 한국 여자들의 이야기가 늘 한국 설화나 이야기들의 인기 주제가 되었어. (예를 들어 가장 인기 많은 판소리 레퍼토리는 춘향가와 심청가야. 둘 다 죽음을 불사하는 젊은 여자들의 고난과 역경을 담아낸 이야기들이지.) 그 안에 담긴 것들이 너무 강력하거든. 지금도 한국은 유난히 예술계에서 여자들의 존재감이 커. 다른 나라들과 비교될 정도로 눈에 띄게 그래.
안루 그럼 이렇게 힘든 여자들의 이야기의 끝은 어떻게 돼?
민우 그들은 나중에 한이 맺혀서 죽어도 죽은 게 아니게 돼. 눈도 감지 못하고 죽어서 구천을 떠도는 귀신이 되거나, 아니면 망부석이 되어, 돌이 되어 계속 눈을 치켜뜨고 한 맺힌 방향을 바라보기도 해. 아니면, 그 모든 설움을 딛고 그걸 초월했을 때, 신적인 존재가 되어서 자손들을 지키고 나라를 지키는 그런 수호신이 되기도 하지. 그게 예술로 승화될 때 토해내듯 뱉어지는 살풀이춤, 창, 굿 같은 형태로 표현되기도 하고.
에바, 안루 그렇구나... 이렇게 못생기게 표현되는 여자가 주인공인 공연 형태가 특이한 것 같아. 신기하고 재밌네. 짧은 강의 고마워!
설명하면서 제가 깨달은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여성의 한'이 사실은 전혀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자라면서 역사란 슬픈 사실들의 나열과 동의어인 줄 알았는데, 물어보니 중국과 대만은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조금 놀랐습니다. 에바는 한국에 관심이 많은 중국 친구인데요. 제주에 여행 갔던 이야기를 하면서 제주에 대한 저의 연구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길래 4.3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전혀 생각지도 못한 슬픈 사연이라며 깜짝 놀랐어요. 제주에는 왜 남자가 많이 없고, 여자 위주의 문화가 형성되어 있는지 물어보며, 재밌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 신나게 물어봤다고 합니다. 그 뒤에 그런 끔찍한 학살의 역사가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요. 그 내용이 너무 잔인하여 에바는 듣는 것만으로 눈물이 차올랐습니다.
에바와 안루 덕분에 저는 꼭두각시 인형을 찬찬히 들여다보았습니다. 전시의 배치에 있어 주인공을 가장 높은 위치에 놓아주었더라고요. 가장 커 보이게 말입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꼭두'각시'의 의미를 되새겼습니다. 즉 이 장르의 제목 자체가 한 맺힌 여성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전부 공연을 공부하는 친구들이라, 우리는 대부분의 공연 장르가 잘생기고 예쁜 주인공 남녀를 중심으로 주변의 우스꽝스럽거나 악한 인물들이 내용을 이끌어간다는 사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래서 꼭두각시놀음이 더 특이하게 느껴진다고요.
그리고 바로 어제, 방글라데시의 학생 시위에 대해 직접 전해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미국에 사는 방글라데시 이민자들과 2세들과 또 관심 있는 다양한 사람들을 위해 열린 온라인 모임이었어요. 지금 현재 방글라데시에서 학생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학생이 참가하여 현장 분위기와 자신들의 의지와 이상을 가감 없이 전해주었습니다. 또 다양한 방글라데시 전문가들이 나와서 지금의 상황과 의의를 다각도에서 설명해 주었어요.
간단히 설명하자면 방글라데시에서는 지난 7월부터 정부와 학생들의 충돌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정부가 학생들을 무력진압하며 500명 남짓의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소셜 미디어를 위주로 시위가 효과적으로 조직되자, 인터넷을 차단하고 진압을 시작했다고 합니다(언제 어디서든 무력진압은 늘 연결망 차단부터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시위가 격화되면서 총리는 현재 자리에서 사퇴하고 도망갔고, 지금은 과도 정부를 수립하면서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이런저런 고민을 하는 단계에 있다고 합니다.
시위는 정부가 부와 특혜를 대물림하는 정책을 마련하면서 촉발되었고, 이미 심각한 수준이었던 취업난과 생활난에 고초를 겪던 시민들이 들고일어나게 된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특히 주목할 부분, 모임에 참여한 모두가 감명 깊게 보고 있는 부분은 바로 여학생들이 이 시위의 중심이 되었다는 거였어요.
상황을 전해준 리더 학생(이 학생도 여학생이었습니다)의 말에 따르면, 처음엔 여학생들이 인간 바리케이드를 하기 위해 시위에 가장 앞장섰다고 합니다(미국에서도 유색인종 시위자를 보호하기 위해 백인들이 나서곤 해요. 일종의 전략입니다). 여자들이 앞장서면 남자들이 앞장설 때만큼 무력을 사용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고요. 하지만 정부에서는 무차별 폭격을 했고, 이에 여학생들이 아예 앞장서서 시위를 주도하고 나서게 되었다고 합니다. 전 세계 어디서도 전례가 없는 그런 여학생들 주도의 시위였다고 해요. 그리고 이번 시위의 특징이라면 지적 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합니다. 단기적이고 단발적인 개선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바른 방향성의 정치 구조를 수립하기 위해 여학생 리더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있는 것입니다. 단순히 인물을 바꾸는 것이 아닌,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강한 믿음 속에서 과도 정부 수립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학생의 말을 들으면서 그 모습이 어찌나 총명하고 바르고 흔들림이 없는지, 도대체 어떤 교육을 받았으면 저런 학생들이 나올까라는 생각을 계속했습니다.
그리고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한다는 점에 감탄했습니다. 이번 포스트에서는 계속해서 여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요. 사퇴한 총리도 여성이라는 점을 짚고 싶습니다. 종종 성차별 문제나 이런 여성의 한에 대해 이야기할 때, 반론으로 '하지만 ~~ 이런 여자도 있다'라는 의견이 제시되곤 합니다. 조선시대든 방글라데시든, 정말 중요한 건 권력 구조입니다. 예를 들어 가부장제도, 그 가부장제에 합승하여 권력구조를 재생한 하는 여자들도 많죠. 그리고 그 제도에 순응하지 않고 다른 길을 가는 남자들도 많고요. 진짜 병폐는 눈으로 보이거나 몸으로 나타나는 개인의 정체성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이 현재의 사회구조에 얼마나 녹아들어 있는지, 그리고 그렇게 된 계기에 얼마나 자신의 이해관계가 얽혀있는지, 와 같은 부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예술인으로서 방글라데시 학생 시위가 주는 가르침이 많습니다. 마음으로 응원하며, 한국과 방글라데시가 언젠가 함께 더 이야기해 보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