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나침반이라는 장편 판타지 소설이 있다 주인공 어린 소녀는 고대 유물 황금나침반을 보자마자 읽을 수 있는 재능을 타고났다 학자들이 평생을 연구해도 그 나침반을 명확히 읽을까 말까하는데 소녀는 질문하는 방법도 읽는 방법도 그냥 안다
황금나침반은 인생의 모든 질문에 대한 답과 방향성을 직관적으로 제시한다 요즘으로 치면 영타로와 같은 걸까 하지만 훨씬 복잡하고 정교한 그런 물건이다
이 세계관에선 각 사람에게 영물이 있다 아이가 태어나 자라는 동안 영물은 아이의 가장 친한 친구로 늘 함께 다닌다 자유자재로 모습을 바꿀 수 있는 영물은 아이가 사춘기를 지나 어른이 되면서 한 가지 모습으로 굳어진다
세계관은 수많은 평행우주를 연결하는, 공간에 구멍을 내서 존재들이 넘나들 수 있게 하는 만단검을 다루는 소년의 등장 그리고 그 만단검이 초래하는 세계의 혼란과 귀물들의 존재 등으로 넓어진다 평행우주 간의 전쟁을 마치고 타고 태어난 삶의 큰 과제를 완수한 소녀는 더이상 황금나침반을 읽지 못하게 된다
내 내면으로 뛰어들어 거기서 마음껏 방황하던 몇 주 전 문득 구름이 걷히고 쨍한 해가 비추는 느낌과 함께 내가 누군지 깨달았다, 늘 거기 있었던 나의 본모습 그리고 내가 이번 생에 타고난 과제와 깨어야 하는 고리들 때마침 며칠 뒤 생애 두 번째 신점이 예약되어 있었는데 전화를 받자마자 생년월일도 다른 질문도 없이 우수수 쏟아진 나에 대한 신명의 말씀은 그때 내가 알아차린 것들과 완벽히 일치했다
'어디에도 밀리지 말고, 자기 기질대로 자기 갈 길을 가라'
'본인의 감, 그냥 믿어'
그렇다 나는 밀리고 있었다 누가 민 것도 아닌데 스스로 밀리는게 맞다고 생각했었다 보고 듣고 느껴지는게 너무 많아 버거워 모르는 척, 틀린 감이라고 스스로에게 얘기하며 무뎌지려 했다
나는 황금나침반 그 소설을 잊을 수가 없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친구가 1권을 빌려주어 읽기 시작했는데 책이 귀하던 시절 2편 3편을 찾을 수가 없어서 어렵게 구해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 소설이 보여준 세계관 속에서 나는 내가 경험하는 세상의 모습을 넓혀갔다
삶은 수행이란 걸 비로소 완전히 받아들이게 됐다 각자 자기 자리에서 자기 방법대로 그리고 내 방법은 내가 가장 잘 알기에 나를 믿고 발걸음을 내디딘다 나를 알아차리는 순간 늘 내 뒤에 서있는 영물의 존재를 느낄 수 있게 된다 나를 알아주면서부터 나는 혼자가 아니게 됐다
그래도 매 순간은 어렵고 여전히 정답은 없고 결정의 순간은 절대로 명확하지 않다 미래는 항상 현재에 달려있고 지금의 내 선택은 꽤나 중요하다 스스로와 충분히 대화하고 타협하는 과정을 거친 결정만이 앞을 똑바로 볼 수 있게 한다 아름다운 고양이가 내게 체중을 기대어 골골대며 사랑스런 녹색 눈을 나와 마주치는 이 순간 나는 또다시 우주를 경험한다 잠시 쉬어가는 언덕 위 바람부는,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친구의 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