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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림 Apr 09. 2023

리얼하게 그려볼게요

쿠르베와 19세기의 사실주의자들

사실적으로 잘 그렸다!


 보통 많은 분들이 ’잘 그렸다 ‘고 말하는 그림들을 보면 기술적으로 실사와 같이 표현한 그림인 경우가 많죠. 그런 그림을 사실적인 그림이라고도 말합니다.  저도 처음 19세기의 사실주의라는 단어를 들었을 땐 기술적으로 잘 그린 양식이겠거니 생각했습니다.


 저도 평소 많이 하는 고민입니다. 어떻게 하면 더 사실적으로 잘 그릴 수 있을까. 대신 사실적인 기술이 아닌 사실적인 주제에 대해서요. 그래서 오늘은 19세기의 현실과 일상을 담아낸 대표적인 사실주의자들을 소개하려 합니다.


 아, 그전에 미술사 왜 알아야 할까요. 글쎄요. 저도 막 알아가는 과정에 있지만 단순히 몇몇 미술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닌 것 같아요. 바로 지금, 현대인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라 생각됩니다. 그림은 인류가 글을 사용하기 이전부터 사용한 오랜 소통의 도구였고, 그만큼 사람의 관한 한 많은 정보와 이해를 담고 있습니다. 오늘 살펴볼 사실주의자들의 그림을 통해서도 한 조각 사람에 대한 이해를 얻을 수 있으리라 봅니다.


나는 천사를 그릴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19세기 사실주의의 대표 화가 쿠르베가 한 말로 사실주의에 대해 알 수 있는 명언입니다. 긴 세월 미술계는 신과 신화, 천사와 악마, 귀족과 영웅 등 이상을 그려왔습니다. 멋있지만 일반 대중들의 삶과는 동떨어진 주제입니다. 왜 그럴까요? 귀족이거나 종교 지도자쯤 되어야 작가에게 이런 그림을 요구할 수 있는 힘과 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림의 주제나 소재도 자연스럽게 현실과 멀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당대 사실주의자들이 말한 ‘사실적으로 잘 그린 그림’은 꾸미지 않은 현실을 담은 그림을 말합니다.


일상을 그린다는 것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별로 특별할 것도 없는 주제인데 말이에요. 보통의 사람을 주인공으로 삶의 현실을 과감하게 드러낸다는 것은 당대 질서에 대한 반항이었고, 개혁이었습니다. 보통 사람, 일상을 소재로 한 현대의 그림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습니다.


쿠르베<돌 깨는 사람들> 1849~1850년, 캔버스에 유채, 159X259cm


 쿠르베의 대표작인 <돌 깨는 사람들>입니다. 한 명은 돌을 깨고, 다른 한 명은 돌을 옮기고 있네요. 작품의 크기는 세로 1.6m에 가로 3m에 달해서 실제 인물의 크기로 그린 대형 작업입니다. 쿠르베는 이런 대형 작품에 평범한 사람들과 소외된 서민들의 삶을 가감 없이 그렸습니다. 당시 그림 감상 역시 주로 상류층이 했을 텐데요. 그들은 이 그림을 보고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아마 자주 접하고 수집하던 기존 그림과는 너무 달라서 이래도 되나, 의문을 제기하기 않았을까요? 사람은 낯선 것에 항상 의문을 가지죠. 물론 호기심도 있었을 테고요.


쿠르베<화가의 아틀리에> 1849~1850년, 캔버스에 유채, 315X663cm, 파리, 오르세 미술관


 다음은 <화가의 아틀리에>라는 작품입니다. 부제로 ‘화가로서 나의 생애 7년을 결산한 알레고리’인 만큼 작가의 가치관뿐 아니라 당시의 시대상을 엿보기에 좋습니다. 중앙에 자연을 그리는 쿠르베의 모습이 보이고, 우측에는 쿠르베의 후원자였던 브뤼야스, 무정부주의자 푸르동, 시인 보들레르 등 당대 파리 지식인들이 있습니다. 좌측에는 노동자, 상인, 창녀, 거리의 악사 등 하층민들이 보입니다.


 다시 그림을 살펴보면 쿠르베는 두 계층의 사이에서 어느 누구도 그리지 않고 자연을 그리고 있네요. 두 계층사이에서 중립을 지켜 객관성을 보여주려는 작가의 시각이 잘 나타나는 작품입니다. 오롯이 보이는 현실 그대로를 담는 ‘사실주의’의 정신이 드러나는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좌) 쿠르베 <세상의 기원> 1866년, 캔버스에 유채, 46X55cm, 파리, 오르세 미술관 / (우) 쿠르베 <파도와 여인> 1868년, 캔버스에 유채, 65.4X54cm,


 여성의 나체에 있어서도 쿠르베는 비너스와 그리스와 로마의 조각상같이 성스럽게 그리거나 가리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기원>이란 제목처럼 적나라하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그려서 당시도 논란이 되었습니다. <파도와 여인>에서도 튀어나온 살이나 근육, 털과 같은 부분 역시 사실 그대로 그린 것을 볼 수 있죠. 쿠르베를 첫 사실주의자라 하기는 어렵지만, 리얼리즘이라는 용어는 쿠르베에 의해 처음 사용되었습니다.

도미에<3등 열차> 1863~1865년, 캔버스에 유채, 65.4X90.2cm,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도미에는 사실주의 화가 중에서도 사회의 부조리한 모습을 잘 보여주는 작가라 생각됩니다. 대표작으로는 <3등 열차>가 있는데, 3등 칸 안에 앉아 집으로 귀가하는 서민들의 삶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두 손을 모은 노파와 젓을 주는 여인, 한 무리의 남자들이 보입니다. 각기 다른 표정과 행동에서 서민들의 삶의 애환이 느껴지네요.


도미에<무거운 보따리를 들고 가는 세탁부> 판화 연작, 1860년, 글래스고우


<무거운 보따리를 들고 가는 세탁부>입니다. 일감을 가지고 서두르는 세탁부와 아이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여인이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생동감 있게 전해집니다. 도미에는 정식으로 미술 교육을 받진 못했지만 파리 주간지에 정치적 풍자화를 기고하며 데뷔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형태의 생략과 과도한 변형을 통한 풍자가 돋보입니다. 보시는 것처럼 주로 도시 서민들의 삶을 소재로 그렸는데, 특히 중간 계급이나 노동자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녹여냈습니다. 고위층과 사회현실에 대해선 날카롭게 비판하고 풍자하는 그림을 주로 그렸고요.



밀레<이삭 줍기> 1855~1857년, 캔버스에 유채, 83.8X111.7cm, 파리, 루브르 박물관

도미에와 달리 농촌에서 살아가는 서민들의 삶을 중점적으로 그린 작가 밀레입니다. 너무 유명한 그림이어서 많이들 아실 것 같습니다. <이삭 줍기>를 보면 이삭을 줍기 위해 허리를 구부린 여인들의 모습에서 고된 생활을 알 수 있습니다. 일하는 여인들과 우측 저 멀리 말을 타고 감독하는 감독관의 모습과 대비되는 듯합니다.


밀레<만종> 1857년, 캔버스에 유채, 55X66cm, 파리, 루브르 박물관


 <만종>이란 작품입니다. 원래의 제목은 삼종기도이나 우리나라에선 늦은 종소리란 의미에서 만종이라 불립니다.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농부들의 현실이 밀레 그림의 주제였습니다. 쿠르베, 도미에, 밀레의 그림을 보니 각기 다른 개성과 매력이 있지만 역시 사실주의자란 생각이 드네요.




 사실주의는 산업혁명으로 노동문제, 빈부격차 같은 사회 문제들이 대두되며 나타난 사조입니다.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가 유행하던 가운데 내가 살고 있는 일상을 관찰하고 서민, 대중의 삶을 주제로 담은 것이 사실주의였습니다. 이들은 미술을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 쉽게 볼 수 있는 기법과 매체를 사용하려 노력하고, 예술 감상의 민주화를 이루는 것을 목표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예술을 위한 예술 따위 하찮은 목표를 추구하고 싶지 않다.
내가 사는 시대상을 스스로 주체적 판단에 따라 화면에 옮길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단순한 화가가 아니라 사람이 되는 것,  살아있는 예술을 창조하는 것, 이것이 나의 궁극적인 목표다.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은 모든 미술가들의 작품보다 우월하다 - 쿠르베


 멋지죠? 저 역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주체적으로 화면에 옮길 수 있는 사람, 단순한 화가가 아닌 사람이 되는 것, 살아있는 예술을 창조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예술의 대중화를 위해 보다 사실적인 주제와 사실적인(?) 재료와 사실적인(?) 매체로 다가가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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