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에세이
길 위에 길
너른하늘 신수경
장맛비가 그렇게 내리더니 오늘 아침은 검은 구름 사이사이로 햇빛이 엷게 스미듯 비친다. 훅- 훅- 불어오는 바람이 살갗에 닿는 느낌이 뜨거운 공기를 머금고 있는 것이, 이제 더위가 몰려올 모양이다. 너무 오래 비가 내려서 그런가... 비 그친 마른하늘이 반갑기도 하다.
내가 달리고 있는 이 길은 철원에 한 도로. 2박 3일 중 마지막 날 강의장으로 가는 길이다. 난 오래전부터 '강사'의 꿈을 가지고 있었다. 언뜻 생각하니 20대 후반부터 그랬던 것 같다. 사내 강사를 하고 싶어 여러 번 지원했지만, 기회는 나에게 오지 않았다. 누군가는 "네가 하는 일에서 일인자가 되면 강사가 될 기회가 오지 않겠니?"라는 매우 추상적인 조언을 힐뿐 구체적인 방법을 전해 주는 이도 없었고 나 조차도 알지 못했다. 한참이 지나 나이 마흔이 되어 공부를 시작하면서 마음속에 꽁꽁 감춰두었던 꿈이 되살아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현실 속에서 어떻게 실현해야 할지 고민하면서 한 걸음씩 강사가 되기 위한 수련 과정을 밟아 나갔다.
나이 마흔에 공부를 시작했으니 학부 4년 대학원 2반 반, 논문 과정 6개월까지 총 7년을 쉴 틈 없이 달렸다. 나에게는 시간이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너무 나이가 많았다. 학부를 마치고 대학원 진학하면서 나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제 학부를 졸업한, 경험도 없는 나이 45 세의 아줌마를 누가 강사로 부를 것인가!' 두 번째, '청소년 시장은 이미 대학을 갓 졸업한 파릇파릇한 지도사들이 청소년 수련관, 청소년 관련 재단 등으로 갈 것인데, 그렇다면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이 두 가지 질문을 나에게 던지다가 발견한 것이 '독서지도사'였다. '나의 삶의 경륜과 통찰을 <독서>에 접목해 보자. '독서'라는 지적 활동을 즐겁게 할 수 있다면, 청소년지도사로서 가지는 특, 장점을 교육 활동에 접목해 보자. 지금 당장 내가 강사가 될 수 없다고 해도 언젠가는 내가 터득한 노하우로 강의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희망을 가지고 시간당, 만 원도 안 되는 독서 지도사로 활동을 시작했다. 동시에 인성강의의 실습 강사로 1년을 꼬박 찾아다니며 베테랑 강사님들의 강의를 보고 배우기 시작했다. '강사비를 받을 실력이 안 되는데, 실습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이 감사하자!' 내가 가지는 기본자세였다. 이럴 때는 대기만성(大器晩成), '큰 사람이 되기 위해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 나의 신조인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몰랐다. 그러니 노력과 시간이 불충분하다고 느끼는 수련과정 동안 난 불평한마디 하지 않았다. 그저 모든 것이 감사할 뿐이었다. 2021년 코로나가 발생했을 때, 많은 강사들이 강의를 하지 못하고 어려움을 겪는 시기에도 줌과 구글 미트를 활용하여 쉬지 않고 강의를 지속할 수 있었던 것도 상황에 따른 '문제해결력'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마치 어둠을 뚫고 가 듯한 쾌감을 느낀 시기이기도 했다. 노트북에 부착된 카메라를 통해 피교육자를 만나는 일은 생소했지만 금세 적응됐고 피교육자의 반응을 살피고 표정을 읽어 내는 능력이 강화되면서 내가 가지고 있던 '관찰 능력'이 빛을 바바라게 되었다. 그렇게 우여곡절과 시절을 지나며 강사가 된 지 이제 6년이 되었다.
내가 오늘 만날 피교육자는 피 끓는 청춘, 대략 19세부터 20대가 주로 인 군인들이다. 독서지도사가 되면서 군 인성강의도 함께 시작했다. 그 시간에 들인 나의 노력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았다. 강의 현장 상황은 매번 달랐음에도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당황하지 않는 유연함도 생겼고, 강의 속에서 자유함까지 느끼게 되었다. 작게는 20여 명에서, 많게는 100여 명이 넘는 군인들과 아이컨택이 가능해졌다. 그들의 눈빛을 읽을 수 있게 되면서 상호작용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고 감동과 흥분을 동시에 느끼게 되었다. 올해 들어, '시간은 거짓말하지 않는다'라는 것을 강의 현장에서 느끼게 되었다.
아직도 내가 가야 할 길은 멀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나이’에 대한 조급함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하던 일을 꾸준히 하면서 안정감이 들기 시작했다 배워야 할 것이 보이면 당장 시작했고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을 '대기만성(大器晩成)'과 함께 번갈아 사용하면서 하던 일을 지속했다. 그 결과로 얻은 것이 유연함이고 자유함이었다. 결국 '행하지 않는 것'의 산물이 '조급함'이라는 결론을 얻기에 이르렀다.
여전히 내 앞에 보이는 길은 멀다. 그런데 변한 것이 있다면, 목적지가 명확하다는 것이다. 그 목적지에 도달함에 있어 그것이 자갈 길이든, 곧은 길이든, 갈래 길이든 그때그때 장해물을 치우고 건너고 길을 내면서 설정한 목표를 향해 매진한다는 것이 달라진 것이다. 그 길에 동료도 만나고 친구도 만나며 멘토도 만나고 멘티와 함께 외롭지 않게 걷는다는 사실이다.
답답한 느낌이 들어 에어컨을 켠 채로 창문을 열었다. 여전히 덥고 습한 바람이지만 시골 특유의 향긋함이 주는 편안함이 있었다. 현장에서 만날 군인들과 강의를 떠올리며 운전하는 그 느낌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멀게 보이는 하늘과 초록 옷을 잔뜩 입은 산을 마주 보며 가는 길이 그렇게 흥겨웁다. 공부를 다시 시작한 지 11년, 강의 현장으로 나온 지 6년 차, 이제 겨우 피교육자 앞에서 자유함을 느끼는, '강사'라는 말이 덜 부끄러운 존재가 된 것 같다. 이제 시작인 셈이다.
‘인생’이라는 길 위에 ‘강사’라는 길... 길 위에 길이 이제 낯설지 않다. 대기만성(大器晩成). 조급하지 않아서 참 좋다. 삶에서 조급함을 느끼고 있다면 "행하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가야 할 길을 분명히 하고 "걸어가라!"고 말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