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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야 Sep 30. 2015

다행히 끝

틈 열, 글쓰기의 틈

다행히 9월 30일이다. 열 개의 글로 매거진 <틈>을 채우는 일이 곧 끝난다. 하루를 마치고 밤늦게 혹은 새벽에 글을 썼다. 글만 써도 시간이 부족한데 다른 일을 미룰 수도 없으니 힘에 부칠 때도 많았다. 하지만 글쓰기의 틈 속 숨겨진 재미를 발견하는 일은 즐거웠고, 이 즐거움을 연료 삼아 열 번째 틈까지 왔다.


나는 사적인 글을 많이 써왔다. 2년 반 동안 매일 아침 써온 (요새는 잠 잘 시간이 부족해서 드문드문 쓴다.) 모닝페이지, 페이스 북 담벼락, tumblr, 네이버, 이글루스, 매일 들고 다니는 수첩에 글을 쌓아 두었다. 한 번도 이 글들이 다른 사람 앞에 꺼내 놓을 수 있는 글이 되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글쟁이 부부에게 자극을 받아 글을 썼고, 쌓아 두기만 했던 글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신비로움을 느꼈다. 글쓰기의 틈에는 이리저리 떠다니던 글의 조각들이 형태를 갖춘 결과물로 탄생하는 재미가 있다.


나에게 글쓰기는 내 안에 맴돌고 있는 뿌연 뭉치들을 하나씩 들춰보고 앞뒤를 맞추며 정리하는 일이다. 완성하면 어떤 그림일지 모르는 퍼즐을 맞추는 기분이다. 퍼즐을 맞추고 나면 내가 가고 싶은 다음 단계를 정하기가 좀 더 수월해진다. 나를 위한 것이든 다른 사람을 향한 것이든, 내가 쓰는 글은 사라지지 않고 내 안에 각인된다. 각인된 글은 나와의 약속이자 다짐이다. 그래서 글은 내 생각 속에만 존재하는 것들을 현실로 만드는 데 적절한 무게를 실어준다. 글쓰기의 틈에는 삶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나는 말을 많이 한다. 나에게는 글보다 말이 먼저다. 말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 아니라 글을 쓰기 전에 말로 많이 표현한다는 뜻이다. 나는 이것저것 읽고, 듣고 나서 나만의 말로 내 흐름에 맞추어 남에게 다시 말하는 일이 재밌다. 떠드는 와중에 이 말들이 내 안에 자리 잡으면, 말과 말 사이의 틈에서 글로 쓰고 싶은 것들이 고개를 쏙 내민다. 그동안 내 말을 잘 들어주고 풍성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남자친구와 친구 E에게 진심으로 고맙다. 글쓰기의 틈에는  좋은 말 상대가 있었다.


지금까지 내가 쓴 열 개의 틈을 연결하면 결국 <틈>은 내 삶을 사는 나만의 방식이다. 내가 살아가는 일을 멈추지 않으면, 내 삶에는 언제나 틈이 생길 것이고 나는 그 틈들을 잘 포착해 계속 글로 쓰고 싶다. 글쓰기의 틈에서 발견한 재미들을 이대로 놓기 아쉬우니, 조금 쉬면서 내 안의 새로운 틈들이 발견되는 대로 다시 하나씩 써 볼 참이다.



에필로그


1. 내가 <틈>이라는 제목을 지은 이유는 누군가를 설명하는 사실들 보다, 사실과 사실 사이의 틈에 이야기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예민해서 다른 사람의 틈도 의도치 않게 염탐하고 짐작하게 되는데, 남의 이야기로는 글이 잘 써지지 않았다. 누군가의 진실보다 나의 진심을 담은 온전한 내 이야기를 쓰기 위해 노력했다.


내가 틈을 잘 포착하고 싶다고 생각한 건 3년 전 이기호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부터다. 나는 그의 소설들이 틈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2. 내 글을 읽어준 고마운 사람들이 '나도 글을 쓰고 싶어.' '한동안 안 썼는데, 다시 써봐야겠다.'고 말할 때 무척 기뻤다. 읽는데 그치지 않고 쓰고 싶게 만드는 내 글의 틈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3. 내 멋대로 '조회수'와 '공유수' 사이의 틈 계산법.

내 글을 스쳐가는 횟수=조회수, 내 글과 사람들의 접점 개수=공유수라고 가정. 조회수 분에 공유수를 했을 때 비율=내 글과 사람들의 소통 지수. 사람들의 마음을 가장 많이 움직인 글='그 가게에서 돈 쓰고 버는 법'


4. 연재는 힘들지만 글을 꾸준히 쓸 수 있는 효율적인 방법이다. 많은 작가들이 연재로 책을 완성하는 이유를 조금 알 것 같다. 연재 방식을 고스란히 온라인으로 가져온 브런치 덕에 나는 쭉 글을 쓸 수 있었다.




지난 <틈> 보기
1. 틈 하나, 나도 못 믿는 나 : 나와 맺은 계약
2. 틈 둘, 지루할 틈 : 그만 그만두고 싶은 기타

3. 틈 셋, 백수가 방심한 틈 : 백수가 살 길

4. 틈 넷, 벌고 쓰는 것 사이의 틈: 그 가게에서 돈 벌고 쓰는 법

5. 틈 다섯, 모녀지간의 틈: 엄마와 나 사이에 기억할 것

6. 틈 여섯, 틈이 있어 행복한 사이: 느슨한 우리 사이

7. 틈 일곱, 하고 싶은 일과 잘 하는 일의 틈: 다시 일을 시작하는 마음

8. 틈 여덟, 일곱 살의 틈 : 일곱 살 어린 남자

9. 틈 아홉, 환상과 현실의 틈 : 지금을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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