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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야 Sep 17. 2015

그 가게에서 돈 벌고 쓰는 법

틈 넷, 벌고 쓰는 것의 사이의 틈

올해 1월부터 사직동 그 가게에서 카페지기로 일하고 있다. 카페지기가 되기 전에는 짜이, 향긋하고 담백한 카레, 달콤 바삭한 도사까지 세 개를 한 번에 시켜 먹는 먹성 좋은 손님이었다. 이런 맛은 대체 어떻게 나오는 건지 이런 아름다운 공간은 누가 어떻게 만든 건지 감탄했고 궁금했다. 바로 그 곳에서 아무 경력도 없이 일할 수 있는 사람을 구하니 내가 카페지기에 지원한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세 달쯤 일했을 때부터 조금씩 가게 음식의 맛을 낼 수 있게 됐다. 맛있는 음식을 세 달쯤이면 누구나 뚝딱 만들 수 있는 훌륭한 레시피를 만들어온 사람들 덕분이다. 한국에서 구하기 힘든 향신료와 인도에서 공수해 온 인도요리에 딱 맞는 도구들까지 모두 있다. 매니저들은 손님을 맞는 바쁜 와중에도 카페지기들에게 요리를 연습할 시간, 공간 그리고 다그치지 않는 마음의 여유까지 넉넉히 내준다. 내가 만든 음식이 맛이 있다면 바로 손님에게 나갈 수 있는 기회도 있다.


부콰부콰 끓어오르는 그 가게 짜이. 카페지기가 되면 배우는 첫 메뉴.


나는 요리를 좋아하지만 프로가 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좋아하는 모든 일에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나에게 그 가게는 완벽한 곳이다. 그 가게를 흠모하던 사람들과 함께 일하니 손발도 잘 맞는다. 실수는 품어주고 서로의 빈틈은 말없이 채워준다. 새로운 레시피를 개발할 때도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만든다. 손님에게 음식이 나가기 전 작은 숟가락에 담아 맛을 보면서 우리가 맛보았던 것 만큼 맛있는 음식을 내려는 노력이 모두에게 자연스레 배어있다.


내가 일이라고 표현한 그 가게 카페지기 활동은 자원활동이다. 돈도 안 주는데 뭐가 그리 좋다고 고생하냐는 걱정 반 잔소리 반 섞인 소리도 듣는다. 그런데 난 가게에서 일주일에 한 번 5시간밖에 일하지 않고 요리를 만들어 팔고 있으니 내가 한 일로 돈도 번다. 그 다음 그 돈을 나와 비슷한 마음의 사람들이 모여 즐겁게 일할 수 있는 공간을 유지하는데 쓴다. 티벳 난민들을 돕게 되는 건 행복한 덤이다. 내가 좋아하는 공간을 잔뜩 누리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배우고, 돈도 벌고, 내가 가치 있게 여기는 일에 쓰면 누군가를 돕는 기쁨까지 따라온다. 그 가게 안에서 내가 돈을 벌고 쓰는 방법이다.


그 가게에서 내가 돈을 벌고 쓰는 사이의 틈에는 누군가를 돕는 일을 자연스럽고, 아주 잘 할 수밖에 없는 공간으로 만들어 온 그 가게 사람들이 있다. 이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나는 그 가게에서 내가 돈을 벌고 쓰는 방법도 기쁨도 전혀 알지 못했을 것이다. 세상은 그 가게보다 훨씬 더 많은 이들이 촘촘하게 얽혀있다. 이 복잡한 세상의 틈 사이에 오늘도 더 나은 선택으로 돈을 벌고 쓰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그 가게 일을 하면서 좀 더 선명하게 볼 수 있게 됐다. 사직동 그 가게는 나에게 귀하고, 아름답고, 반짝이는 것들을 알게 해 준 소중한 공간이다.


다음 틈은 9월 19일에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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